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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盤浦)’의 옛 지명은 ‘서릿개’이다. ‘서초(瑞草)’의 옛 지명은 ‘서리풀’이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두 단어가 ‘서리-’라는 단어를 매개로 이어져 있는 말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반포(盤浦)-서릿개’와 ‘서초(瑞草)-서리풀’의 지명은 중세 한국어의 명사 ‘서리’(혹은 동사 ‘서리-’)라는 단어와 상관이 있다. ‘서리’는 ‘서리서리’의 그 ‘서리’로 “물길이 구불구불 서리어 이어진 지형”을 가리키는 말이다. ‘서리풀’은 ‘서릿개벌’이 줄어든 말로 ‘서릿벌>서리펄’이 ‘서리풀’로 바뀌었다가 ‘서초(瑞草)’로 기록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한강의 옛 이름 ‘사리진(沙里津)’과 ‘사평도(沙平渡)’를 각각 ‘서리나루’, ‘서릿벌나루’의 차자표기였던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사리진(沙里津)’은 이미 ‘용비어천가’(1447)에 ‘사평도(沙平渡)’의 옛 이름으로 기록되어 나오고 ‘사평도(沙平渡)’는 정약용의 한시 ‘사평별(沙平別)’이나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1981, 중앙일보 신춘문예),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1983) 등을 거쳐 지하철 9호선의 ‘사평역(砂平驛)’에 그 이름을 남겨두었다. 곽재구의 시 ‘사평역에서’(1981), 임철우의 소설 ‘사평역’(1983)에 나오는 ‘사평역(沙平驛)’은 필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가상의 간이역 이름이라 하니 한강의 옛 이름이었던 ‘사평(沙平)’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사평(沙平/砂平)’이 인근의 ‘신촌(新村, 새말)’과 합쳐져서 ‘신사동(新沙洞)’이 된 것은 1914년 지명 개정 때의 일이다. 새말(즉 新村) 북쪽 한강변에 있던 새말나루터가 있었는데, 이는 고려 때부터 있었던 사평도(沙平渡, 서릿벌나루)와는 달리 근세에 만들어진 것으로, 한바탕 큰 비가 내리고 나면 지금의 반포 앞에서 서초동 방배동 정금마을에 이르기까지 온통 한강이 넘쳐 서리서리 물길이 남겨져 있던 곳이다.
이 지역의 이름을 ‘서릴 반(蟠)’의 ‘반포(蟠浦-서릿개)’에서 ‘기반 반(盤)’의 ‘반포(盤浦)’로 쓰게 된 것은, 이 지역의 둑이 비에 무너져 일상의 삶이 무너지지 않게 되기를 바라는 소망을 담은 것이고, ‘서릿벌’의 ‘사평(沙平)’을 ‘상서로운 풀’이라는 뜻의 ‘서초(瑞草)’로 쓴 것은 그야말로 이 살기 힘든 땅이 언젠가는 상서로운 희망으로 가득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소망대로 현재 이 지역은 나라 사람들이 가장 살고 싶어 하는 지역의 하나가 되었으니, 단어에 심은 소망의 마음이 어떻게 현실화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지명이라 하겠다.
김양진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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