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전으로 한반도도 군사적 긴장감
전쟁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가는 과정
평화 유지, 가장 현실적인 책임·약속
천상병 시인이 지은 시, '귀천'은 삶을 '아름다운 소풍'에 비유하며 죽음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이 구절은 삶에 대한 감사와 평온한 이별을 보여준다. 이 작품이 시대와 상관없이 감동적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 결국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마지막 믿음 때문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전쟁의 공포가 일상이 된 사회에서는 이런 말조차 사치가 된다. 최근 중동 분쟁과 더불어 한반도를 둘러싼 군사적 긴장은 다시 높아지고 있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전쟁은 여전히 먼 이야기다. 중동의 전쟁도 누군가에게는 생존의 문제지만, 우리에게는 주식시장 변동의 뉴스로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이 현실이 된다면, 우리는 과연 천상병 시인처럼 삶을 아름다운 소풍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전쟁은 거창한 전투의 기록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가장 평범한 것들을 빼앗아 가는 과정이다.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 퇴근길에 바라보는 노을, 비 온 뒤 풀잎에 맺힌 이슬 같은 것들. 평소에는 너무 흔해서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던 순간들이 전쟁에서는 가장 사치스러워진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지역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도 보면, 사람들은 거대한 정치적 명분보다 "일상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더 크게 이야기한다. 친구와 웃던 시간, 가족과 함께하던 저녁, 아무 걱정 없이 계획하던 내일이 사라지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가장 큰 비극이다.
여기에 더해, 우리 사회가 직면한 또 다른 긴장은 경제적 불평등에서 비롯된 갈등이다. 극심해지는 빈부격차는 세대 간 좌절을 키우고 안정된 일자리와 자산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의 거리도 점점 벌린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지만, 다른 이에게는 도달하기 어려운 삶이 되는 현실에서 같은 사회를 살아도 '소풍'을 경험한다고 말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사람과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사람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사회의 불안 역시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여러 갈등과 격차에도 과거의 희생과 사회적 투쟁을 통해 지금의 안정된 제도와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러한 과정은 잊히고 대신 갈등, 반목의 목소리는 커진다. 천상병 시인이 시대의 아픔 속에서도 삶의 아름다움을 말했듯, 우리가 누리는 평범한 하루 역시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바쁜 하루를 막걸리 한 잔으로 정리할 수 있는 사소한 여유조차 어쩌면 어렵게 지켜온 사회적 유산 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전쟁이 없는 사회란 단순히 총성이 들리지 않는 상태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사람들이 내일을 계획할 수 있고 석양을 보며 감탄할 여유가 있으며, 삶을 돌아보며 감사할 수 있는 안전을 의미한다. 동시에 최소한의 안정된 삶이 보장돼 누구나 자신의 삶을 존엄하게 느낄 수 있는 사회이기도 하다.
만약 누군가가 죽음을 앞두고도 자신의 삶이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없다면, 그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실패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평화를 지키는 일은 단순한 외교, 군사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삶을 후회 없이 돌아볼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약속이기도 하다. 언젠가 우리 모두 삶의 마지막 순간 천상병 시인처럼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러한 말을 할 수 없는 시대가 오지 않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을 사는 우리가 가져야 할 가장 현실적인 책임이다.
김규일 미국 미시간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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