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립된 환경에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장기간 돌봄에 지친 일가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반복되면서 복지 안전망을 근본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적극적인 발굴 노력에도 불구하고 복지 신청을 하지 않으면 지원을 받지 못하는 현행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와 행정의 '돌봄 사각지대'에 가로놓여 죽어야만 보이는 '벼랑 끝 사람들'의 마지막 선택은 우리 사회에 엄중한 책임과 무거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러한 비극적 선택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2014년 엄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로도 위기 가구의 '참담한 비극'은 끊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2018년 '증평 모녀 사망 사건', 2019년 '봉천동 모자 사망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망 사건', 2022년 '창신동 모자 사망 사건', 같은 해 '수원 세 모녀 사건', 같은 해 '신촌 모녀 사건' 등 잊을 만하면 복지 사각지대의 아픔이 판박이처럼 반복됐지만, 위기가정을 발굴하는 시스템은 여전히 미흡했다.
최근에도 2023년 9월 8일 전북 전주시 한 빌라에서 생활고에 시달려 온 것으로 보이는 40대 여성이 숨진 채로 발견됐다. 그 옆에는 아들로 추정되는 4살 안팎 미등록 아이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이 아들은 병원에서 가까스로 의식은 회복했으나 출생신고가 돼 있지 않아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은 바 있었고, 지난해 7월 9일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집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라는 신고가 접수돼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60대 어머니와 40대 아들이 숨진 지 20여 일 만에 발견됐으며 지난해 5월 18일 전북 익산시에서 숨진 모녀의 참담한 극단적 비극이 발생한 지 두 달도 채 못 되어 또다시 발생한 '판박이 비극'에 가슴이 아려지고 먹먹해진다.
지난 3월 18일 울산 울주군 온산읍의 한 다가구 주택에서 30대 남성과 그의 어린 네 명의 자녀가 숨진 채 발견됐다.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인 7세 첫째를 비롯해 5세와 3세 아이, 그리고 태어난 지 5개월 된 막내였다. 모두 어린아이들 이어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사건 현장에는 "혼자 아이들을 키우는 게 너무 힘들다."라며 "미안하다."라고 적은 내용의 유서와 햄버거 봉투가 놓여 있었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참담한 일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경찰은 아내가 범죄에 연루돼 수감 된 이후 혼자 생계와 육아를 맡아 온 남성이 아이들을 숨지게 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울산 울주군 온산읍 일가족의 비극은 이들이 당국의 관리 대상이고, 4개 기관이 이상 징후와 위기 신호를 미리 감지하고도 비극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더한다. 큰 자녀의 초등학교 담임 교사는 아이가 학기 초 무단결석하자 두 차례나 신고했고, 경찰 및 울주군 공무원과 가정 방문을 했지만, 아동을 학대한 흔적이 없어 학교에 보내겠다는 약속을 받고 그냥 돌아왔다고 한다. 현행 매뉴얼이 학대 여부에 초점을 두다 보니, '생활고와 양육의 고통'을 심각한 위기로 보지 못한 것이다. 울주군은 건강보험료 체납액이 쌓이자 지난 2월부터 위기 가구로 지정해 긴급복지 지원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어느 기관이든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섰더라면 귀한 아이들을 넷씩이나 잃지는 않았으리란 생각에 경찰, 울주군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했더라면 하는 진한 아쉬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이번 가슴 아픈 비극은 '복지 신청주의'의 문제점을 극명하고도 여실히 드러낸다. 무엇보다도 울주군은 숨진 남성에게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권고했으나 그는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고 한다. 생활고에 건강까지 안 좋은 젊은 가장에겐 이런 절차가 때로 장벽이 되기도 한다.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될 때마다 단골 메뉴로 매번 지적되지만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이상 징후와 위험 신호가 중첩(重疊)되는 경우엔 신청 여부와 상관없이 고위험군으로 분류해 즉각적으로 지원하고 관리하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복지 행정체계가 필요하다. 울산 울주군 일가족의 경우처럼 반복적인 긴급 지원, 단독 양육, 다자녀, 소득 상실, 건강 악화 등은 하나하나 심각한 위기 징후다. 특히 아동이 포함된 가구의 경우에는 더 능동적이고 더욱 적극적인 개입이 절실히 요청된다. 어린 자녀들은 스스로 구조를 요청할 수도 없어서다. 최소한 돌봄 지원만이라도 빠르게 이뤄질 수 있었다면 울산 일가족의 비극은 피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죄의식이 크다.
이보다 하루 앞선 지난 3월 17일에는 전북 군산 경암동의 한 아파트에서 70대 노모와 30대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집주인은 올해 초부터 월세가 몇 달씩 체납되고 세입자와 연락이 닿지 않자 확인차 방문했다가 현장을 목격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전기료와 수도료를 3개월 이상 체납하면 현장 확인에 나서는데 숨진 모자는 올 1월부터 체납해 불과 한 달 차이로 이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시신은 부패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였으며 현장에서 외부 침입 흔적이나 범죄 혐의점은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3월 10일에도 전북 임실군 관촌면에서 90대 노모와 그의 아들에 손자까지 3명이 숨지는 일도 있었다. 장기간의 돌봄에 지친 아들이 벌인 일이라고 한다. 집 안에는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라는 내용이 담긴 종이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안부 확인차 해당 집을 찾은 경찰관이 발견한 것으로 파악됐다.
고물가와 고금리가 장기화(長期化)하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특히 최근 발생한 울산과 군산 두 가정의 비극은 산업 위기를 겪고 있는 도시에서 발생했다. 울산은 석유화학 산업 불황을 겪고 있고, 군산도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후 이를 대체할 만한 산업이 자리 잡지 못한 상태여서 중산층 바로 아래의 가구들까지 취약계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내 1인 가구가 계속 늘어 지난해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1인 가구 비중이 역대 최대치인 36%를 넘어섰고, 65세 이상 노인 인구도 처음으로 1,000만 명을 돌파하며 명실상부한 초고령 사회에 진입했으며, 혼자 사는 독거노인 가구 비율도 늘어 노인 가구 세 집 가운데 한 집은 혼자 사는 노인 가구인 것으로 나타났다. 위기에 처한 이들이 보내는 구조의 신호를 놓치지 않도록 촘촘한 감지망을 서둘러 가동하고, 기다리기보다 먼저 찾아가는 복지 체계로 조속히 전환해야 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27일 발표한 '2024년도 고독사 발생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고독사 사망자 수는 3,924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 3,661명에 비해 263명(7.2%) 늘었다. 2020년 3,279명에서 5년 사이 매해 고독사 사망자가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전체인구 10만 명당 고독사 사망자 수도 2023년 7.2명에서 지난해 7.7명으로 0.5명 늘어났다. 전체 사망자 100명 중 1.09명이 고독사로 생을 마감했다. 성별로는 전체 고독사 중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82%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지난해 11월 26일 국민연금연구원 오유진 주임연구원이 내놓은 '국민연금과 고령자 노동 공급'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65세 이상 고용률은 37.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로 가장 높았다. OECD 평균인 13.6%의 약 2.7배에 달하며, 고령화 정도가 높은 일본(25.3%)보다 훨씬 높다. 한국인이 오래 일하는 이유는 연금과 생활비 간에 간극이 크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나라는 경제적 궁핍에 시달리며 혼자 늙어가다 고독사에 직면할 확률이 매우 높은 국가라 할 수 있다. 연금을 받는 나이임에도 일자리를 찾는 원인이 더 충격적이다. '생활비에 보탬'이 54.4%로 절반을 넘었다. 더는 노인 빈곤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준엄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노인빈곤율도 OECD 1위다. 노후 대비가 안 돼 있어 오래도록 일을 하고는 있지만, 저임금 일자리가 대부분이다 보니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연금 소득대체율을 유의미하게 높인다면 좋겠지만 현재 인구구조 변화 추세를 고려하면 감당하기 어렵다. 실업 등으로 한계 상황에 봉착한 청·장년 구제책은 따로 필요하다. 역시 쉬운 일이 결단코 아니다. 가구 구조와 인구 분포 변화 중심의 정책 재설계가 필요하다. 고립 방지를 위한 지역 커뮤니티 강화, 고령층 자원봉사 기회 확대, 맞춤형 보육 서비스 도입 등이 필요하다.
같은 잘못에 대하여 '가난한 이들은 환경의 영향이 상당 부분 고려되는 반면, 부유한 사람에 대하여선 개인의 도덕적 성격 탓으로 치부되곤 한다'라는 경향성이 드러난다지만, '가난하다는 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란 토로처럼 극심한 가난 속에선 기본적 존엄성조차 지키기 어렵다. 국가와 공동체의 보살핌이 없다면 참담한 가족의 비극은 앞으로도 여전히 반복될 것이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울산 울주군 온산읍의 경우처럼 사실상 1명이 복지지원 전체를 담당해선 위기 신호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매우 힘들다. 정부와 정치권은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복지가 현장에 작동할 수 있도록 법령과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 천수답 행정의 전형인 '복지 신청주의'와 부족한 예산·인력의 한계 속에 '돌봄 사각지대'에 갇혀 있어선 결단코 안 된다. 제도의 사각 속에서 고립된 채 삶의 희망을 잃어가는 이들이 적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고 결단코 잊지 말고 실행으로 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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