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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1 (토)

    한국형 프로파일링의 진화… 부딪치며 쌓은 20년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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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의 이유를 찾는 사람들/나경희/에스판다스/1만6800원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오른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로 시작하는 성서의 구절은 악을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하는 질문을 남긴다. 악은 피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악의 피해가 지나간 후에도 피해자를 사로잡는 “왜 그랬니?”라는 질문이다. 이유를 묻는 일은 때로 악의 지배를 지속시키는 장치가 된다. 악의 영향력 아래 머물며, 끝내 그것을 삶의 중심주제로 삼게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의 이유를 끝까지 추적해야 하는 이들이 있다. 나경희 시사IN 기자가 쓴 이 책은 한국 경찰 공개채용 프로파일러 1기 4인(김윤희·백승경·최대호·추창우)의 20년의 기억을 풀어냈다. 채용 과정부터 현장 수사까지, 한국형 프로파일링의 탄생과 진화를 기록했다. 전·현직 수사관과 연구자들의 증언도 더했다.

    세계일보

    나경희/에스판다스/1만6800원


    출발점은 위기였다. 2004년, 연쇄살인범 유영철과 정남규가 사회를 흔들었다. 경찰은 새로운 대응체계를 요구받았다. 2005년 7월, 민간 인력 16명이 특채로 선발된다. 전직 리서치 회사 직원·군인, 순경·심리학 연구자 등 서로 다른 이력을 가진 이들이 경찰학교를 거쳐 이듬해 1월 일선에 배치됐다. 한국 1호 프로파일러로 알려진 권일용 동국대 교수가 ‘개척자’라면, 이들은 제도화된 1기의 시작이었다.

    프로파일러는 흔히 ‘범인을 잡는 사람’으로 오해되지만, 이들은 형사가 범인에게 더 빠르게 접근하도록 돕는 분석가다. 형사가 법적 죄명을 다룬다면 프로파일러는 동기까지 파고든다.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이 작업의 의미를 드러낸다. 강간살인 미수로 붙잡힌 범인의 동기가 실은 여성의 팬티스타킹에 집착하는 물품음란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죄명만으로는 보이지 않던 동기가 밝혀지면서, 향후 유사 사건 수사를 위한 데이터가 축적된다.

    초기 프로파일러들은 미국 FBI의 범죄 분류 체계를 번역하며 공부했지만, 곧 한계를 체감했다. 사회구조와 범죄 양상이 다른 한국 현실에 맞는 기준이 필요했다. 피의자·재소자 면담과 사례 축적을 통해 데이터를 쌓은 끝에 2017년 한국형 범죄 분류 매뉴얼이 완성됐다.

    그러나 오늘날 범죄 환경은 다시 변하고 있다. 악은 진화하고, 범죄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피해를 줄일 수는 있다는 믿음으로 프로파일러들은 오늘도 헌신한다.

    이규희 기자 lk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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