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바꾼 갓"…사비 털어 넣은 투자가 만든 흥행
외국인 반응 보며 영감…'갓 쓴 발레리노' 탄생
태국·프랑스 등 해외 무대로…"대중화 선례 남길 것"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안무가 박소연(왼쪽), 윤별 예술감독이 17일 서울 서초구의 윤별발레컴퍼니 연습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3.17. jini@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서울=뉴시스] 최희정 기자 = "진짜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제일 바쁜데, 제일 행복한 시기입니다."
오는 28~29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창작발레 '갓' 공연 준비로 한창인 윤별 윤별발레컴퍼니 대표(예술감독)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연습실에서 기자와 만나 이같이 말했다.
윤 대표는 "창작자나 제작자 입장에서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들이 거의 매년 '갓'을 통해 오고 있다"며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오스카상(미국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한번 바이럴(빠르게 확산)이 되고 있다. 악조건 속에서 만들었던 저희 작품이 이렇게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되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밝혔다.
2022년 창단한 신생 민간 발레단 윤별발레컴퍼니는 창작 발레 '갓'을 2024년 초연했다. 이후 '케데헌'의 사자 보이즈 실사판으로 불리며 SNS(소셜미디어)에서도 화제가 된 이 작품은 2024년 초연과 2025년 전국투어 연속 전석 매진을 기록한데 이어, 이달 말 마포아트센터 공연까지 흥행 돌풍을 이어가며 민간 발레단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단기간에 일궈낸 흥행 이면에는 억대에 가까운 개인 사비를 털어 넣은 윤 대표의 과감한 '베팅'과,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에서 착안한 박소연 안무가의 독창적인 기획력이 자리 잡고 있다.
"결혼과 바꾼 갓"…사비 털어 넣은 투자가 만든 흥행
첫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윤 대표는 2024년 '갓' 초연을 준비하며 정부의 '청년도약지원사업' 창작지원금을 받았지만 충분치 않아 필요한 제작비를 모두 자신의 사비로 충당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윤별 예술감독(왼쪽), 안무가 박소연이 17일 서울 서초구의 윤별발레컴퍼니 연습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3.17. jini@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그는 당시를 회상하며 "사실 '갓'을 만들 때는 재정적으로 너무 휘청거릴 정도로 모아뒀던 돈을 다 썼다. 지인들에게 우스갯소리로 '결혼과 바꾼 갓'이라고 말했을 정도"라고 털어놨다.
소품 투입 비용부터 만만치 않다. 공연에 흑립(검은 갓), 주립(붉은 갓), 정자관, 삿갓 등 다양한 갓들이 나온다. 국내에 갓을 만드는 장인이 4명밖에 남지 않아 수작업으로 만든 갓은 수천만 원을 호가한다. 이에 무대에 오르는 갓은 기계 공정으로 제작된 제품을 사용하지만, 이 역시 개당 단가가 28만 원에 달한다. 한 작품당 주역부터 군무까지 약 50개의 갓이 투입되는 점을 감안하면 소품에만 상당한 투자가 이뤄진 셈이다.
제작에 1억 원에 가까운 뭉칫돈이 투입됐지만, 윤 대표는 "돈을 아끼겠다고 영상이나 마케팅에 소홀했다면 지금의 효과가 났을까 싶다"며 "무용수들에게도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는 큰 교훈을 얻었다"고 강조했다.
결과적으로 이 투자는 적중했다. '갓'은 초연 이후 무서운 입소문을 타며 티켓 파워를 입증했고, 발레단에 확실한 수익 창출 기반을 안겨줬다.
윤 대표는 "지금은 단원들과 다시 '결혼을 시켜줄 갓'이라고 부른다"며 웃었다.
'갓'의 흥행은 발레단의 열악한 인프라도 바꿨다. 윤 대표는 "2022년부터 작년까지 3년 정도 머물렀던 서초동 교대 쪽 연습실은 여름이면 물이 엄청 새는 허름한 곳이었다"며 "하지만 공연이 흥행하면서 지금의 깨끗한 스튜디오로 이사 올 수 있었다. 단원들도 여긴 '갓으로 만든 스튜디오'라고 얘기한다"고 전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윤별 예술감독이 17일 서울 서초구의 윤별발레컴퍼니 연습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6.03.17. jini@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외국인들 반응 보며 영감…'갓 쓴 발레리노'의 탄생
'갓'의 안무를 총괄한 박소연 안무가는 2019~2020년 독일 체류 당시 넷플릭스 시리즈 '킹덤'을 본 외국인들의 반응에서 영감을 얻었다. 다양한 형태의 '갓'이 서양인들에게 신선한 시각적 충격을 주는 것을 목격하고, 이를 컨템포러리 발레의 오브제(상징물)로 접목하기로 구상했다.
박 안무가는 "독일에서 현지인들이 '킹덤'을 보고 '모자가 나올 때마다 모양이 바뀐다' '이 사람들은 왜 이런 모자를 쓰지?' 등등 신선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해외 아마존 사이트 같은 데에서 갓이 비싸게 팔리고 심지어 재고가 없다는 얘기도 들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 외국인한테는 새로운 시각으로 '멋있다' 볼 수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고 떠올렸다.
이어 "저는 컨템포러리 발레나 창작 발레에 신선하거나 시각적으로 재미있어 보이는 것들을 찾아보는데, 우리나라 옛날 것을 발레 오브제로 접목시키면 새롭게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한국에 돌아가 안무하면 갓 쓴 발레 무용수가 나오면 좋을 것 같아서 처음으로 만들게 됐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 박 안무가는 획일적인 동작을 맞추는 군무에서 탈피해, 무용수 개개인의 개성과 해석을 강조한다. 그는 "똑같이 발맞추고 기계적으로 하는 느낌보다는, 자기만의 색깔과 느낌을 표현하도록 깊이 연구한다"고 말했다.
무대 위 '갓 쓴 발레리노'를 구현하는 것은 철저한 계산과 연구의 결과물이다. 갓의 넓은 챙 때문에 발생하는 움직임의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 팔을 옆으로 쓰는 동작을 고안했고, 역동적인 춤으로 갓이 벗겨지지 않도록 방충망 소재를 덧대어 수많은 실핀으로 고정하는 방식을 택했다.
[서울=뉴시스] 김혜진 기자 = 윤별 예술감독(왼쪽), 안무가 박소연이 17일 서울 서초구의 윤별발레컴퍼니 연습실에서 뉴시스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6.03.17. jini@newsis.com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윤 대표는 "갓을 쓰고 '격렬한 춤을 어떻게 출 수 있을까?' 연구를 많이 했다"며 "갓이 떨어지면 안되니까 두피가 뜯겨져 나갈 정도로 핀을 많이 꽂는다. 갓 끈도 엄청 꽉 매어서 (얼굴에) 자국이 많이 남는다"고 했다.
태국·프랑스 등 해외 무대로…"대중화 선례 남길 것"
'갓'의 무대는 국내를 넘어 해외로 향하고 있다. 윤별발레컴퍼니는 오는 5월 태국과 베트남을 시작으로, 9월 홍콩, 11월 프랑스 파리에서 공연을 할 예정이다.
윤 대표는 "현지 문화원 초청 및 정부 지원 형태의 해외 투어 공연"이라며 "서양의 고전 발레인 '백조의 호수' 대신 한국적 소재인 '갓'을 들고나가는 전략이 해외 무대에서 훨씬 강력한 차별성과 무기가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흥행과 비평의 경계에서 이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무용의 '대중화'다.
윤 대표는 "성악이나 클래식 음악이 대중화의 단계에 진입했듯, 발레나 무용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고, 다른 사람을 소개해서 데리고 올 수 있는 공연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창작 발레 '갓'은 2월 말 화성을 시작으로 3월 대전·부산·서울, 4월 하남·전주 등 6개 도시에서 투어를 진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dazzling@newsis.com
▶ 네이버에서 뉴시스 구독하기
▶ K-Artprice, 유명 미술작품 가격 공개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