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 시중은행 ATM 기기가 놓여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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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란 전쟁으로 인한 고유가 충격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는 가운데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자산 건전성 지표가 불과 한 분기 만에 급격히 하락해 대출 포트폴리오 부실화 징후를 드러냈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5대 은행의 원화 대출 연체율 평균은 0.46%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말 기록한 0.36%에서 불과 두 달 사이 0.10%포인트나 급등한 수치다. 특히 자영업자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한 부실 채권 발생 속도가 가팔라지면서 고정이하여신(NPL) 비율 역시 지난해 말 0.34%에서 0.40%로 상승했다. 고금리 장기화로 인해 한계에 다다른 차주들이 이자 상환 능력을 상실하면서 은행권의 기초 체력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여기에 환율과 증시를 동시에 압박하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심화되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선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치솟았고, 이는 곧바로 국내 수입 물가 상승과 경상수지 악화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긴축 기조가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되자 국내 증시에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20일까지 코스피 시장에서 외국인은 최근 5주 연속 순매도를 기록하며 하락장을 주도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 총 29조9688억원어치를 순매도했으며, 이는 과거의 금융 위기 때보다도 상당히 큰 규모다. 외국인들의 ‘셀 코리아’ 행렬은 원화 가치 하락을 부채질하며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은 이미 위험 수준을 넘어섰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외국인 자금 이탈과 달러 강세의 영향으로 1500원 선을 돌파한 상황이다. 특히 시중은행 창구에서 일반 고객이 현찰을 살 때 적용되는 환율은 1530원대를 기록하며 실물 경제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환율 급등은 에너지 및 원자재 수입 비용을 상승시켜 제조 기업들의 영업이익을 악화시키고, 이는 다시 해당 기업들에 대출해 준 은행들의 자산 건전성을 위협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수입 물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은 한국은행의 금리 인하 시점을 더욱 뒤로 미루게 만들어 가계와 기업의 이자 부담을 한계치까지 가중시키는 중이다.
이는 구조적인 부실이 가시화되는 단계라는 점에서 심각성이 크다. 5대 은행은 대손충당금 적립을 확대하며 방어하고 있으나, 연체율 상승 속도가 예상을 뛰어넘으면서 건전성 관리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여전한 가운데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대출마저 동시다발적으로 무너질 경우 금융 시스템 전체의 리스크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유동성 공급과 취약 차주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지만, 글로벌 고유가와 외국인 매도세라는 거대한 파고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은행권은 보수적인 여신 심사를 통해 추가 부실을 막는 데 주력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 국면에서 대출 회수가 본격화될 경우 실물 경제의 위축이 가속화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정민 기자 mine0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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