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석 한국석유공사 사장이 6일 울산 석유비축기지 현장을 방문해 석유수급 위기상황에 대비한 비축유 방출 대비 태세를 점검하고 있다. 석유공사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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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으로 글로벌 원유 물동량의 핵심 동맥인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서, 정부가 지난 18일 원유 자원안보 위기경보를 '관심'에서 '주의'로 전격 격상했다. 물가 폭등을 막고자 13년 만에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라는 초강수까지 빼 들었다. 온 나라가 원유 수급 방어에 사활을 거는 전시 상황이다.
그런데 최전선에서 국가 경제의 '혈관'을 지켜야 할 한국석유공사가 도덕적 해이를 넘어선 '총체적 무능'을 또 다시 드러냈다.
국제 유가가 천정부지로 솟구치고 원유 수급에 비상이 걸리자 산업통상부는 국내에 보관된 국제공동비축 원유에 대한 우선구매권 행사에 나섰다. 하지만 석유공사가 제때 권리를 행사하지 않으면서 울산 비축기지에 보관 중이던 90만배럴은 해외기업에 의해 팔려나갔다. 피 말리는 수급전 속에서 공기업의 늑장 대응으로 원유를 허공에 날린 셈이다. 이는 단순한 행정 착오가 아니라, 국가의 경제안보를 다루는 기관의 치명적인 무능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하루 이틀 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일주일여 전인 지난 11일 손주석 석유공사 사장이 대국민 사과를 한 적이 있다. 그것도 취임 6일 만에 말이다. 이란 사태가 확전 기로에 있던 지난 5일 석유공사가 관리하는 한 자영 알뜰주유소가 경유값을 하루 만에 606원이나 기습 인상했다. 서민 가계 부담을 덜겠다며 도입된 알뜰주유소가 국가적 위기를 틈타 폭리의 앞잡이 노릇을 한 것이다.
소매 가격 단속에 호들갑을 떨며 사과문을 쓰는 그 시간에도 정작 국가 안보의 최후 보루인 '비축유'까지 허무하게 뚫려버린 셈이다.
공사의 재무 상태도 이미 곪아 터진 수준이다. 2025년 상반기 기준 석유공사가 진행 중인 16개 해외 사업의 총 누적 투자액은 27조8600억원에 달하지만, 회수액은 15조5200억원에 그치며 누적 손실만 12조8000억원이다. 특히 9조원을 쏟아붓고도 고작 517억 원을 건지는 데 그친 캐나다 하베스트 프로젝트는 천문학적인 혈세를 공중분해 시킨 무능의 결정판이다.
13조원의 누적 손실 속에도 석유공사는 내부 잇속 챙기기에는 누구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속칭 '대왕고래' 시추사업 의혹과 관련해 논란의 핵심 인사들이 버젓이 승진하고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해외 지사에선 직원이 거액의 자금을 빼돌려 사적으로 유용한 횡령 사건이 발각되며 도덕적 해이의 극치를 보여줬다. 피 같은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와중에도 공사의 기본 관리·감독 시스템마저 철저히 망가져 있었다. 산업통상부가 '제 식구 감싸기' 논란을 차단하고자 이례적으로 감사원 공익감사까지 넘겼지만, 내부 기강은 여전히 통제 불능 상태다.
위기 상황에서 폭리를 방치하고 정작 본업인 국가 에너지 안보망에는 구멍을 내는 공기업을 품고 갈 수는 없다. 산업통상부는 즉각적인 감사 착수와 엄중 문책을 예고했지만, 꼬리 자르기식 처벌로 끝날 일이 아니다. 천문학적 손실을 내는 해외 사업 구조조정부터 비축유 관리와 국내 유통망까지, 석유공사를 밑바닥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국가적 위기 상황에 국민의 방패가 되지 못하고 도리어 무능한 짐이 되는 공기업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안영국 기자 ang@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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