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화·가족 해체로 늘어나는 ‘영 케어러’
복지 사각지대에서 지쳐가는 청춘들
개인의 희생 대신 국가 차원의 돌봄 체계 절실
김연서(가명)씨는 아픈 할머니를 홀로 돌보는 25살 청년이다. 우리 사회는 이처럼 장애, 질병, 고령 등으로 돌봄이 필요한 가족을 도맡아 보살피는 청년(13~34세)을 ‘가족돌봄청년(영 케어러)’이라 부른다.
202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족돌봄청년은 약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해당 연령대 인구의 1.3%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 중 절반 이상(55.1%)이 연서씨와 같은 25~34세이며, 13~18세의 학령기 청소년도 16%나 포함되어 있다.
통계는 영 케어러의 삶이 얼마나 가혹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 10명 중 6명(61.5%)은 우울 증상을 겪고 있으며, 주 15시간 이상 돌봄을 수행하는 경우 우울 점수는 위험 수준인 23.8점에 달한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청년들이 오히려 ‘돌봄의 굴레’에 놓인 지금, 서울신문은 가족돌봄청년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효도’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가족돌봄청년의 가혹한 현실을 조명한다.
2020년 인구총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가족돌봄청년은 약 15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해당 연령대 인구의 1.3%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 중 절반 이상(55.1%)이 연서씨와 같은 25~34세이며, 13~18세의 학령기 청소년도 16%나 포함되어 있다.
통계는 영 케어러의 삶이 얼마나 가혹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이들 10명 중 6명(61.5%)은 우울 증상을 겪고 있으며, 주 15시간 이상 돌봄을 수행하는 경우 우울 점수는 위험 수준인 23.8점에 달한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청년들이 오히려 ‘돌봄의 굴레’에 놓인 지금, 서울신문은 가족돌봄청년과 전문가의 인터뷰를 통해 ‘효도’라는 이름 아래 방치된 가족돌봄청년의 가혹한 현실을 조명한다.
14살에 시작된 간병, ‘당연한 일’이라 믿었던 11년의 세월
김씨가 ‘돌봄의 굴레’에 들어선 건 중학교 1학년, 겨우 14살 때였다. 지난 2014년 오토바이 사고로 뇌졸중을 앓게 된 할아버지를 6년간 간병했고, 2020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에는 수술 후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할머니가 그의 몫이 됐다.
그는 “부모님이 안 계신 상황에서 조부모님 손에 컸기에 내가 돌보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며 “내가 ‘가족돌봄청년’이라는 사실조차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11년째 가족돌봄청년으로 조부모를 돌봐 온 김연서(가명·25)씨가 지난달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도중 “(힘든 시간을 보낸) 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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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그는 “남들이 ‘기특하다’, ‘대견하다’ 말해줄 때도 그저 할머니를 모시는 게 당연하다고만 여겼다”며 “하지만 최근에서야 나 같은 처지의 친구들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고, 남들이 자기계발하고 취업 준비할 시간에 나는 돌봄에만 매몰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왕복 5시간 통학길, 유일한 ‘재충전’이자 ‘현타’의 시간
현재 대학생인 김씨의 하루는 전쟁과 같다. 집에서 나와 기차를 탄 뒤,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며 왕복 5시간을 길 위에서 보낸다. 그는 “1교시 수업이라도 있는 날엔 새벽 7시 전에 집을 나서야 한다”며 “흔히 말해 ‘현타’가 오는 시간도 많았지만, 한편으론 숨을 돌리는 재충전의 시간이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특히 그는 학교와 집을 기계적으로 오가야만 하는 ‘학교생활의 단절’을 토로했다. 그는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와야 하니 친구들과 밥 한 끼, 카페 한 번 가는 것도 어렵다”며 “과제라도 있는 날이면 하루를 온전히 할애해 겨우 마쳐두고서야 숨 돌릴 틈 없이 다시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다.
집으로 향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김씨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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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김씨는 “동생과 동시에 대학에 합격했지만 누군가는 할머니를 케어해야 했기에 동생은 자취를 하게 하고 나는 왕복 5시간 통학을 선택한 것”이라며 “그런 결정을 내린 내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해서 마음이 아프다”고 눈물을 보였다.
“정서적 지원? 받으러 갈 시간조차 아깝다” 각박한 가족돌봄의 현실
최근 들어 정부가 돌봄청년을 위한 여러 정서적 지원과 상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지만, 정작 김씨에게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는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는 건 알지만, 상담받으러 가는 시간조차 아깝다”며 “그 시간에 집에서 눈을 붙이거나 할머니를 한 번 더 살피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상담 센터를 오가는 서너 시간조차 김씨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기회비용인 셈이다.
특히 김씨는 “정서적 지원 제도가 당사자들의 현실을 제대로 짚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서적 지원이 있다는 건 좋지만, (상담을) 받으러 가는 친구들도 분명 많지 않을 것”이라며 “누구한테 털어놓고 하면 좋겠지만, 그럴 바엔 집에서 차라리 울고 마는 게 시간을 더 잘 쓰는 것 같이 느껴진다”고 고백했다.
내 이름으로 된 수당조차 ‘할머니 병원비’로… 경제적 악순환
김씨의 경제적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도 할머니를 혼자 둘 수 없어 고정적인 수입을 얻기 힘들다. 그는 “보호연장아동으로서 받는 수당(자립정착금)이 할머니 계좌로 들어가는데, 그 돈이 할머니 병원비와 약값으로 쓰이는 게 당연시되고 있다”며 “누군가를 보호하는 보호자 역할을 하는 청년들에게는 ‘돌봄 수당’이나 ‘간병 바우처’ 같은 실질적인 현금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육아 수당이나 아동 수당처럼 돌봄의 책임을 지는 청년들을 위한 특화된 수당의 필요성도 주장했다. 그는 “우리도 누군가를 보호하는 보호자인데, 정작 우리를 위한 수당은 다시 돌봄 대상자에게 흡수된다”며 “경제적 결핍은 결국 자기계발 시간의 부족으로 이어지고, 이는 돌봄청년의 취업을 가로막는 문제로 작용한다”고 지적했다.
멈춰버린 미래 설계…“할머니와 함께 결혼식장에 서고 싶어”
취업 준비를 해야 할 시기지만 김씨의 시계는 멈춰 있다. 타지로 취업하게 될 경우 할머니의 거취 문제 때문에 지원조차 망설여지기 때문이다. 그는 “취업은 내 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할머니를 혼자 두어야 한다는 죄책감과 직결되는 고민”이라며 “취업을 하면 집을 비워야 하는데, 그럼 ‘할머니는 어떡하나’하는 생각에 자꾸만 미래 설계를 뒤로 미루게 된다”고 토로했다.
“할머니랑 꽃구경 가고 싶어요.” 김 씨가 지난달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할머니와의 소박한 소망을 이야기하며 미소를 짓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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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김씨는 할머니를 향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할머니랑 수다 떨고 노는 매 순간순간이 재밌고 즐겁다”며 “할머니가 ‘젊었을 때 나보다 (본인이) 예뻤다’고 우기시는 대화를 나눌 때면 육체적인 고단함도 잊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할머니가 내 결혼식 때 혼주석에 앉아 계시는 게 소원”이라며 “나 스스로 단단하게 설 수 있도록 조금만 더 힘내고 싶다”고 다짐했다.
글 임승범 기자
영상 임승범·김종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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