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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3.24 (화)

    이슈 책에서 세상의 지혜를

    81살 현암사 '법전', 60살 민음사 '전집'…색깔 뚜렷한 출판사가 오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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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수출판사 비결]①

    출판 불황 극복 키워드

    작가 중심 철학·탄탄한 기획력 바탕

    자신만의 강점 쌓으며 정체성 지켜와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오는 5월이면 창립 60주년을 맞는 국내 대표적인 장수출판사 민음사. 이 회사 하면 떠오르는 책은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다. 지난 1996년 민음사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시작한 ‘세계문학전집’은 현재 481권 ‘명심보감’까지 출간했다. 민음사는 5월 19일 창립기념일에 맞춰 이 시리즈의 500번째 책을 발간하려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단일 시리즈의 500권 출간은 국내 최초다. 민음사 관계자는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서 인구 감소로 출판 불황이 이어지고 있지만, 장수 출판사들은 여전히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이들 장수 출판사들은 작가 중심 철학과 축적된 기획력을 바탕으로 한국 출판의 흐름을 이끌어오고 있다.

    23일 이데일리가 자산·매출·인력 규모 등 외부감사 대상 요건을 충족한 출판사 71곳(교육·단행본·만화 출판사)을 전수 조사한 결과, 전체 평균 업력은 32년으로 집계됐다. 50년 이상 된 출판사도 금성출판사(61년)·동아출판(81년)·미래엔(78년)·삼성출판사(62년)·김영사(50년)·민음사(60년)·박영사(74년)·성안당(53년)·와이엘씨(52년)·이퍼블릭코리아(71년)·창비(60년) 등 11곳이나 됐다.

    이들 장수 출판사들은 발행 물량과 매출이 동반 감소하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콘텐츠를 축적하며 시장을 지켜왔다. 실제로 최근 10년새 국내 도서 발행 부수는 2015년 8502만 부에서 2024년 7213만 부로, 같은 기간 주요 출판사 매출액도 5조2184억 원에서 4조8911억 원으로 각각 15%, 6% 가량 줄었다.

    장은수 출판평론가는 “장수 출판사들은 기업의 평균 수명이 짧아지는 시대에도 자신만의 강점을 꾸준히 쌓으면 수십 년 업력을 이어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며 “출판사 이름만 들어도 대표하는 책이나 기획이 떠오를 만큼 고유한 존재감을 가져야 장기적으로 업력을 이어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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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이데일리 김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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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하는 책·기획으로 존재감 있어야 장수”

    올해로 창립 81주년을 맞은 현암사는 장수 출판사의 대표 격이다. 현암사는 법전과 국어사전 등 참고서를 통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창업자인 고(故) 조상원 씨는 일본식 표현이 남아 있던 법령집 대신 처음으로 ‘법전’이라는 이름을 붙였고, 이는 이후 국가의 성문 법규집을 뜻하는 보통명사로 굳어졌다.

    문학 출판 분야에서는 민음사와 창비가 대표적인 장수 출판사다. 창비의 대표 콘텐츠는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시리즈다. 1993년 출간 이후 인문서 최초의 밀리언셀러로 자리 잡으며 누적 500만 부 이상 판매됐다.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도 각각 230만 부가 팔렸다. 이지영 창비 출판본부 이사는 “‘한결같되 날로 새롭게’라는 기치 아래 콘텐츠를 새로운 방식으로 확장해 온 전략이 주효했다”고 설명했다.

    을유문화사는 1995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하며 대표 시리즈로 키워왔다. 2008년부터는 ‘을유세계문학전집’을 새롭게 선보였고, 토마스 만의 ‘마의 산’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147권을 펴냈다. 을유문화사 관계자는 “창업주 정진숙 회장은 ‘남들이 내지 않는 책이라도 반드시 필요한 책이라면 출판해야 한다’는 철학을 강조했다”며 “그런 사명감이 80여 년을 버티게 한 힘이었다”고 말했다.

    ‘81살’ 을유문화사가 세계문학전집의 원조라면, ‘60살’ 민음사는 현대적 디자인의 세계문학전집으로 시장을 넓힌 주역이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400권이 넘는 고전을 꾸준히 소개하며 국내 번역 문학의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조남주 작가의 ‘82년생 김지영’은 누적 130만 부가 팔리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2011년 출범한 ‘민음북클럽’은 누적 회원 4만 명을 돌파한 대표적인 독서 플랫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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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암사의 법전(사진=현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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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쏘공’부터 ‘먼나라 이웃나라’까지

    김영사는 문학·인문·사회·경제·실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5500여 종의 책을 펴내며 종합 출판사로 성장해 왔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비롯해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 허영만의 ‘식객’ 시리즈 등 인기 서적을 다수 펴냈다.

    문학과지성사는 계간 ‘문학과지성’을 기반으로 성장한 출판사로, 1970~80년대 창작과비평과 함께 한국 문학계를 이끌었다. 1978년 시작된 ‘문학과지성사 시인선’은 600권이 넘는 시집을 펴내며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흐름을 만들어왔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8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된 이후 200쇄를 넘기며 한국 문학사에 중요한 작품으로 남았다.

    문학동네는 한국문학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교유서가, 이콘 등 20여 개 출판 브랜드를 거느린 출판그룹으로 성장했다. 작가 출신인 강태형 회장이 창업한 출판사답게 자체 문학상을 통해 새로운 작가를 꾸준히 발굴하며 입지를 다져왔다. 김영하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등이 문학동네 문학상을 통해 발굴됐다.

    전문가들은 장수 출판사가 되려면 시대의 변화에 맞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출판사는 기본적으로 책을 만드는 곳이지만 이제는 지식재산권(IP)을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는 역량이 중요해졌다”며 “전자책과 오디오북, 구독 서비스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독자를 유입하고 콘텐츠를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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