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1일 이란에 48시간 이내에 호르무즈해협(Strait of Hormuz)을 개방하지 않으면 발전소를 '초토화'하겠다고 경고하면서 확전 우려를 키웠던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이 불과 이틀만인 지난 3월 23일(현지 시각) 자신의 소셜미디어(Social media │ SNS) '트루스 소셜(Truth Social)'을 통해 "지난 이틀간 미국과 이란 양국이 중동지역의 적대행위를 완전하고 전면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매우 유익하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라고 밝히고 "심도 있고 건설적인 대화를 바탕으로 이란의 발전소 및 에너지시설에 대한 모든 군사적 공격을 '5일간 유예'하도록 국방부에 지시했다."라고 설명했다.
미국과 이란 간 '5일간 공격 유예' 후 종전 협상이 모색되면서 중동전쟁은 새로운 분수령을 맞고 있다. 양측이 타협점을 찾길 고대하지만, 서로 요구하는 조건이 만만찮아 낙관할 수 없다. 이런 와중에 중동 발(發) 고유가·고환율·고물가 등 '3고(高)' 복합위기(Complex crisis)가 갈수록 증폭되는 가운데 중동 사태가 4월까지 지속하게 되는 경우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2%에서 1%대로 회귀할 것이란 비관적 관측이 나오고 있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고물가에 고환율까지 겹치며 극심한 내수 침체로 경제 전반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경기 하방' 위험이 고조되고 있는 등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Uncertainty)이 한층 고조되는 양상이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 선을 넘나들며 금융시장 불안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최근 상승을 중동전쟁 같은 단기 변수보다 이미 형성된 '구조적 고환율 흐름' 위에 지정학적 리스크가 덧씌워진 결과로 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초토화' 발언에 어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인'1517.3원까지 치솟았다가 '공격 유예' 방침을 밝히면서 지난 3월 24일 서울외환시장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22.1원 하락 주간 종가 기준으로 1495.2원에 마감하는 등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탔다. 문제는 전쟁 상황에 따라 언제든 다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처럼 큰 환율 변동성(Volatility)은 수출 기업들의 대응력을 떨어뜨려 수익성 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 원자재 수입가는 오르는 데 수출 단가를 정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은행과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 2월 말 기준 한국의 '실질실효환율(REER │ 2020년=100)'은 86.72로 집계됐다. 한 달 전(86.89)보다 0.17 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실질실효환율'이란 교역 상대국과의 환율과 물가 수준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통화의 실질 구매력을 나타내는 지표로 기준선인 100을 밑돌면 기준연도보다 통화 가치가 저평가된 상태로 해석된다. '실질실효환율'은 지난해 6월 92.49에서 12월 86.36까지 6개월 연속 떨어진 뒤 지난 1월 잠시 반등했지만, 다시 약세 흐름으로 돌아섰다. 국가별 비교에서도 원화의 실질 가치는 부진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난달 한국의 실질실효환율 순위는 64개국 가운데 63위로 집계됐다. 최하위인 일본(67.03)만 제쳤을 뿐 중국(90.23), 미국(105.88), 유로존(103.77)과는 큰 격차를 보였다. 원화 가치가 주요국 통화 가운데서도 유독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라 충격을 가중하고 있다.
원화 약세는 물가에도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3월 24일 발표한 '2026년 2월 생산자물가지수(잠정)'에 따르면 올해 2월 생산자물가지수는 123.25(2020년=100)로 1월(122.56)보다 0.6% 상승했다. 지난해 9월 이후 6개월 연속 상승세다. 1년 전과 비교한 상승률도 2.4%로 2024년 7월 이후 가장 높았다. 공산품 가운데서는 석탄·석유제품이 4.0%, 서비스 가운데서는 금융·보험이 5.2% 오르며 생산자물가 상승을 이끌었다. 지난달에는 미국과 이란 간 긴장 고조에 따른 중동정세 불안으로 국제유가까지 뛰면서 원화 약세 압력이 한층 커졌다. 두바이유 기준 국제유가는 2월 전월 대비 10.4% 상승했고, 이 영향으로 나프타와 경유 등 석유 관련 품목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원화의 실질 가치가 낮은 상태에서 국제유가까지 오르면 수입 원자재와 에너지 가격 부담이 국내 생산 단계에 더 빠르게 전가될 수 있다. 미국과 이란 간 협상 진전 가능성에 의구심이 커지면서 지난 3월 24일(현지 시각) 브렌트유(Brent Crude Oil) 가격이 다시 배럴당 100달러선 위로 반등했다. 이날 5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종가는 배럴당 104.49달러로 전장보다 4.6% 올랐다. 5월 인도분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 종가는 배럴당 92.35달러로 전장보다 4.8% 상승했다.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것이란 우려가 커지면서 널뛰기 장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지금을 분할매수 기회로 삼으라는 의견이 나온다. 3월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KOSPI) 지수는 전날 대비 148.17포인트(2.74%) 오른 5,553.92로 장을 마감했지만, 코스피 지수의 변동성(Volatility)은 커졌다. 코스피 시장에서는 이날 외국인이 1조 9,792억 원 규모를 순매도했다. 이에 반해 개인과 기관은 각각 7,230억 원, 9,674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개인과 기관이 지수를 끌어올리고 외국인은 국내 주식시장을 이탈하는 모양새다. 외국인의 이탈은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오르고 '사모 대출' 시장의 부실 우려가 확산하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날 코스닥(KOSDAQ)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4.55포인트(2.24%) 오른 1,121.44로 장을 마감했다. 개인이 1,591억 원 규모를 순매도했고 외국인과 기관은 각각 1,670억 원, 219억 원어치를 순매수했다. 이처럼 도널드 트럼프 한마디에 유가·환율·주가 급등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널뛰는 시장'이 목도(目睹)되고 있다.
코스피는 이달 들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큰 변동성(Volatility)을 보이고 있다.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s │ 주식매매 일시 중단)'가 2회 발동됐고, '매수 사이드카(Sidecar │ 프로그램 호가 일시 효력 정지)'는 매도와 매수를 합쳐 7회 발동됐다. 올해 누적으론 사이드카가 10회 발동됐는데 이는 연간 기준으로 2008년(26회) 다음으로 많다. 올해가 3개월이 채 지나기도 전에 역대 두 번째 기록을 세운 셈이다. 미국이 이란에 대한 공습을 예고하고 이란이 강경하게 맞서면 증시가 급락했다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조기 종전을 시사하면 증시가 반등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시장은 재차 '타코(TACO │ 트럼프는 항상 겁먹고 물러난다)' 행보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고유가에 고환율이 더해지면 저성장과 고물가 재앙을 피할 길이 없다. 발등의 불은 고삐 풀린 환율을 다잡는 일이다. 이달 들어 20일까지 환율은 평균 1488.19원으로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환율 1,500원대가 '뉴노멀(New Normal │ 새로운 표준)'로 고착(固着)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온다. 사정이 이런데도 국회에서 해외투자 자금의 국내 유입을 촉진하는 '환율안정 3법' 처리가 소모적인 정쟁 탓에 연기됐다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풍부한 글로벌 네트워크를 토대로 '외환 보유액' 확충은 물론 미국 등 주요국과 '통화스와프(Currency swap)' 확대와 같은 환율 안전판을 서둘러 마련해야 함은 물론 가용 수단을 총동원해 환율안정을 위한 총력전에 나서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3월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중동전쟁의 확대와 장기화로 원유와 천연가스 등의 수급 불안이 커지고 있다."라며 "정부 차원의 비상 대응체계를 선제적으로 가동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제에너지기구들도 역사상 최악의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며 세계 경제에 미칠 충격을 경고하고 있다."라며 "최악의 상황까지 가정한 대비책을 철저히 수립해달라."라고 관계부처에 지시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특히 "배달 용기부터 의료 도구까지 일상에서 석유화학 제품이 쓰이지 않는 곳이 없어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가 벌어질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각 부처는 수급 우려 품목을 포괄적이고 꼼꼼하게 점검하고 대체 공급선 등을 세밀히 파악해달라"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전시 추경 편성 처리는 빠르면 빠를수록 효과가 배가된다."라며 "국민 체감의 원칙 아래 고유가 부담 완화, 민생 안정, 사회 피해 최소화, 공급망 안정, 지방경기 활성화 등을 목표로 꼼꼼하게 세부 내용을 설계해 달라"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전체 규모를 정해놓고 사업을 억지로 꿰 맞추기 보다는 어렵고 필요한 곳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정부와 여당은 그제 25조 원의 '전쟁 대응 추가경정예산'에 합의했지만, 더욱 신중하고 치밀한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추경 규모가 애초 10조∼15조 원에서 크게 불어나면서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선심성 퍼주기로 변질되거나 곡해(曲解)만 받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럽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3·4분기 말 국가 총부채가 사상 처음으로 6,500조 원을 넘어섰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80조원(4.5%)이나 불어난 수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비율은 작년 말 48.6%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정팽창은 나랏빚 급증과 국가신인도 하락으로 이어진다. 경제는 저성장 터널에 갇혔는데 정부·가계·기업 전체가 빚 폭탄에 짓눌린 상황이 계속 방치돼선 안 될 것이다.
대내외 위기에 정부 재정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정교한 핀셋 지원에 집중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어려울수록 비상한 각오로 지출 구조조정과 합리적 소비를 실천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이재명 대통령의 "전체 규모를 정해놓고 사업을 억지로 꿰맞추려고 하기 보다는 어렵고 필요한 곳에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재정을) 투입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대목에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자칫 별다른 효과 없이 물가를 자극하고 나라 곳간만 축낼 수 있다. 추경 재원은 국채 발행 대신 초과 세수로 충당하겠다고 하지만 초과 세수도 허투루 활용돼선 곤란하다. 반드시 필요한 곳에만 특별히 한정해 세금을 쓰겠다는 결연한 의지와 각오가 있어야만 고삐 풀린 빚도 줄여나갈 수 있다.
외신들은 종전이 된다 해도 국제 석유·가스 시장은 최소 4개월간 공급 부족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고유가·고환율·고물가의 '3고 고통'은 올해 내내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부·정치권·기업·가계가 모두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비상계획 실행에 힘을 모아야 한다. 당장 지난 3월 23일부터 여수 국가산업단지 내 석유화학 기업들이 시설 가동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나프타(Naphtha) 수급이 차질을 빚자, LG 화학이 여수 2공장을 멈추기로 했고 여천NCC는 올레핀 전환 공정 가동을 중단했다고 한다. '셧다운(Shut down │ 일시적 업무정지)'이 확산하면 자동차·조선·전자·건설 등 관련 산업이 대거 영향을 받게 된다. 제조업 전반에서 물량 대란을 겪게 된다는 건데, 물가는 치솟고 기업들은 고용을 줄일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지금은 재정·통화정책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 금융과 실물경제의 안정에 최우선을 두고 실행에 총력 경주하고 성과 거양(擧揚)에 최선을 다해야만 할 때다. 과도한 돈 풀기는 경기도 물가도 다 놓치는 치둔(癡鈍)의 우(愚)를 범하기 십상이다. 추경은 꼭 필요한 긴급·필수 사업과 서민·취약계층 보호에 집중하고 규모도 합리적으로 조정해야 한다. 산업연구원의 '석유 최고가격제 시행의 정책적 함의와 향후 방향' 제하의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시행으로 휘발유와 경유 주유소 판매가가 고점보다 ℓ당 약 70~120원 떨어졌다. 정부의 직접적 가격 개입이 없는 미국은 같은 기간 약 32% 상승한 이후로도 꾸준히 상승 압력이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연구원의 지적처럼 석유제품 최고가격제는 중·장기적으로 시장 왜곡과 공급축소를 초래하는 만큼 적절한 시기에 철회하는 게 옳다. 대신 중동정세와 유가 상황에 맞춰 비축유(備蓄油) 방출 등 비상 대응 체제를 단계별로 가동하고 공공부문 에너지절약과 민간 수요감축 같은 고통 분담도 병행돼야만 한다. 의당 호르무즈해협 항행 확보에 외교·정책역량을 모으고 원유 공급망 다변화도 동시에 서둘러 추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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