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 연애와 현실의 피로감 대비시켜 '관계의 본질' 정조준
상처받을 용기가 증명하는 불완전한 인간성의 미학
K로맨스 한계 속에서도 묵직한 성취 이뤄내
넷플릭스 '월간남친' 스틸 컷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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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을 분석하고 간파하는 시대다. 수많은 플랫폼이 클릭 몇 번이면 입맛에 맞는 정보와 상품을 대령한다. 이 무한한 편리함은 넷플릭스 시리즈 '월간남친'에서 인간의 가장 내밀한 영역까지 파고든다. 맞춤형 감정과 연애다. 사랑마저 서비스로 구독한다. 제작진은 이 서늘한 상상력을 앞세워 현대인의 결핍을 정조준한다. 상처받고 지친 현실의 피로감과 철저히 나를 위해 설계된 가상 세계의 도파민을 극명하게 대비시키며 관계의 본질을 묻는다.
서미래(지수), 이지연(하영), 윤송(공민정) 등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감정을 소비하고 선택하는 과정은 로맨스 장르의 진화라고 할 만하다. 기발한 소재 때문이 아니다. 타인과 주파수를 맞추기 위해 겪어야 하는 지난한 감정 노동을 생략하고, 오직 나만을 향해 무해한 애정을 쏟아내는 인공지능(AI)의 위로가 현대인의 숨겨진 갈증을 정확히 타격한다. 예측 불가능한 타인과의 마찰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상처 없는 안전한 도피처를 제공한다. 철저히 계산된 데이터가 오직 사용자의 욕망에 복무하며 연애의 주도권을 오롯이 쥐여준다.
완벽한 통제 속에서 여성들은 사회적 잣대나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한 해방감을 만끽한다. 스스로 욕망의 주체가 되어 정서적 구원과 자유를 쟁취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다르다. 타인과 얽히며 발생하는 예기치 못한 변수들이 수시로 일상을 뒤흔들며 상처를 준다. 김정식 감독은 이 간극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통제 가능한 도파민과 그렇지 못한 일상의 피로 사이를 오가며 서사의 깊이를 한 차원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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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극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전형적인 K로맨스의 갈등 구조와 안전한 해피엔딩으로 회귀한다. 자본이 감정의 주도권을 장악하며 초래하는 윤리적 딜레마나 구독료에 따른 감정의 차등 같은 디스토피아적 심연까지는 파고들지 못한다. 혁신적인 질문을 던지고도 익숙하고 가벼운 장르의 틀 안으로 도피해 서사의 폭을 스스로 좁힌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건져 올린 철학적 성취가 가볍진 않다. 무엇보다 AI를 인류를 위협하는 적대적 기술로 묘사하는 대신, 인간의 결핍을 비추는 거울이자 심리적 보철물로 치밀하게 활용한다. 서미래에게 AI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자신을 마주하게 하는 성찰의 도구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면서도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지연에게는 어떤 꼬리표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는 해방 공간이며, 타인의 판타지를 채우느라 자신을 착취하던 윤송에게는 유일한 구원의 안식처다. 하나같이 진짜 세상에서 채우지 못한 결핍을 가상의 데이터로 수혈받으며 일상을 지탱한다.
하지만 서미래는 타인의 시선을 두려워하며 AI 연애를 감춘다. 이 모순된 태도는 한국 사회의 폐쇄성을 넘어 디지털 시대가 품은 역설적 고독을 예리하게 들춰낸다. 특히 첨단 기술이 맞춤형 위로를 즉각적으로 제공할지언정, 현실의 연애에 실패했다는 내밀한 자괴감까지 지워주지는 못한다는 점이 그렇다. 무균 상태의 다정함은 역설적으로 타인과 부딪히며 온기를 나누고 싶은 인간 본연의 갈망을 더욱 선명하게 부각할 뿐이다. 서미래를 통제 불가능한 현실의 궤도로 다시 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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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치열한 현실로의 회귀야말로 남궁도영 작가가 서사 전체를 관통해 묻고자 했던 화두다. 그는 "사랑과 거리를 둔다는 건 위험 부담이 없는 삶을 산다는 의미"라는 영국 작가 데버라 리비의 문장을 인용하며, "인간과의 연애에서 생기는 리스크를 두려워하는 여자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완벽한 가상 연애는 결국 나 자신에게 갇혀 있는 거대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 닫힌 메아리의 굴레를 벗어나 현실을 향해 내딛는 결단은 단순한 로맨스의 실현이 아니다. 타인이라는 미지의 세계와 충돌하며 생채기를 입더라도, 그 마찰열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겠다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불완전함이야말로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므로.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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