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 / 박정훈 / 생각의힘 |
[파이낸셜뉴스] 전 SBS 대표이사 박정훈이 자신의 삶을 '확률'로 풀어낸 인생 탐구 에세이를 펴냈다.
신간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은 MBC PD로 출발해 만 39년 방송 인생을 걸어온 저자가 환갑을 맞아 지나온 점(dot)들을 되짚으며 삶의 본질을 묻는 책이다.
제목은 저자가 직접 계산한 자신의 출생 확률에서 비롯됐다. 부모의 만남부터 수정·착상·출생까지 모든 확률을 곱한 수치는 '0.0000000000000000000633'. 소수점 뒤로 0이 19개나 붙는, 사실상 0에 수렴하는 숫자다. 저자는 여기에 어머니로부터 직접 들은 고백, 즉 낙태약을 먹고도 세상에 나온 아이가 바로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더하며 존재 자체를 경외의 언어로 바꾼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의 '점을 잇는 인생(Connecting the dots)'을 빌려 삶의 비선형성을 설명한다. 친구를 따라 아무 준비 없이 응시한 언론고시 합격, 그 기회를 열어준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선배의 한마디에 사표를 던지고 신생 방송사로 옮긴 결정까지. 당시엔 즉흥적으로 보였던 파편들이 지나고 보니 하나의 정교한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고 행동한 그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외부 변수들이 영향을 준다"는 것이 저자의 시각이다.
리더십의 이면도 솔직하게 담겼다. 역사 왜곡 논란으로 국민적 비난을 받은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결정 과정이 대표적이다. 수십억의 손실과 내외부의 반발 속에서도 저자는 "시청자가 원치 않는 방송은 폐지한다"고 선언했다. 그 배경엔 아내로부터 미리 받아둔 '사표 면허', 즉 언제든 자리를 내놓을 수 있다는 내면의 준비가 있었다. 저자는 "권한은 누리되 책임은 지지 않는 리더와는 다른 길을 걷고자 했다"고 밝힌다.
콘텐츠 기획 철학도 눈길을 끈다. 대표작 〈생명의 기적〉과 〈환경의 역습〉은 모두 거창한 대의가 아닌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제왕절개로 태어난 딸아이의 아토피에서 느낀 죄책감이 출산 문화를 바꾼 다큐멘터리로 이어졌고, 새집으로 이사 후 가족의 잇단 병치레가 '새집 증후군'이라는 말을 사회에 퍼뜨린 프로그램의 씨앗이 됐다.
저자가 환갑날 혼자 산책하며 도달한 에피파니(epiphany·깨달음)는 명료하다. "세상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고,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 그는 20대의 자신에게 딱 한마디를 건넬 수 있다면 이렇게 말하겠다고 적었다. "네가 무슨 일을 겪더라도 그다음 행동이 너의 인생을 만들어 줄 거야."
1986년 MBC PD로 입사해 다큐멘터리·시사·교양·예능·드라마 책임자를 두루 거친 저자는 지상파 방송사 사장 가운데 최장수 재임 기록을 세웠다. 한국방송대상 대상 등 국내외 30여 개 상을 수상했으며, 고려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호주 시드니 UTS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pompom@fnnews.com 정명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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