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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이슈 무병장수 꿈꾸는 백세시대 건강 관리법

"엄마 혹시 치매?" 딸이 의심한 나의 이상한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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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66)
요즘은 손녀를 등교시키고 출근하느라 일찍이 딸네 집으로 간다. 집에 들어서서 얼마 되지 않아 내 휴대폰이 울렸다. 받으니 책 모임 남자 동료다.

어제 수업시간에 나온 얘기다. 도청에서 하는 음악회에 갈 수 있으면 몇 명이 같이 가기로 했다. 나이가 드니 무슨 음악회인지는 모르고 노래가 유명하다는 것과 가격이 거의 공짜라는 데 관심이 높다. 도청에서 특별히 안동시민에게 무료로 보여주는 거라 가기로 했다. 음악에 일가견이 있는 갑장 동료에게 물으니 본인도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지만 보험 세일즈를 하던 무명인에서 성악가로 변신한 케이스로 유명한 사람이라고 말하다가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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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포츠는 영국의 TV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통해 휴대전화 판매원에서 세계적인 성악가이자 가수로 주목받았다. 사진은 폴 포츠의 서울 공연 사진.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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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에 전화해서는 어제 말한 주인공이 폴 포츠라고 검색해서 찾아보란다. 그 한마디를 주고받고 통화를 끊고 나니 딸이 눈을 흘기며 말한다.

“아침부터 엄마에게 남자 전화가 오다니 수상해 수상해. 엄마 남자친구 생기면 나한테 먼저 소개해주셔야 해요. 내가 만나보고 결정할 거야. 요즘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데…. 아무튼 아무나 만나고 그러지 말아요.”

이건 무신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내가 미성년자도 아니고 젊은 여자도 아니고 60 넘은 손자 다섯인 할머니인데 남자 친구고 여자 친구고 무슨 결정을 해도 내가 하지, 제가 뭔데 감 놔라 대추 놔라야. 하하하….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왔다. 대화를 더 하면 긍정하는 것 같아 그냥 웃고 말았다.

저번 주말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딸 부대가 다녀가고 나서부터 딸아이의 전화가 잦았다.

“엄마, 아프면 아프다고 바로 말을 해야 해요. 혼자서 끙끙 앓고 있지 말고.”

내가 30~40대에 60대 어른들을 보며 느끼던 감정이 생각나서 그러려니 하고 대꾸도 안 하고 있으려니 몇 번이고 전화해서는 걱정을 늘어놓는다.

“멀리 이사를 하든가 해야지, 누가 누구 시집살이를 하는 건지 원” 하며 투덜거렸다.

왜 그러는지 말해보랬더니 “그, 그, 그게 아니고”라며 말을 더듬기까지 한다. 엄마가 정말 아무 기억도 없는 건지, 아니면 초기 치매 증상일지도 모르니 기억을 해보라고 한다. 빨리 알고 치료를 하면 낫는다나 하며….

헉! 치매? 치매라면 당연히 기억이 없는 게 맞지. 내가 치매라고? 혼자서 이런저런 상상을 하고 마음을 다스리는데 딸이 말했다.

“저, 저기, 주방에… 어른 기저귀가 있잖아…. 그거… 뭐야? 엄마가 정신 차려 보니 오줌을 쌌던 거야? 괜찮아, 괜찮아, 말해 봐, 엄마….” 이러며 애 다루듯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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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쓰고 남은 패드가 아까워 청소하는데 쓰고 있었는데 딸이 보고 엄마가 치매인 줄 안 모양이다. [사진 px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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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나는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 딸은 눈물까지 글썽거리며 나를 쳐다본다. 며칠 전 청소를 하다 보니 남편이 쓰던 패드(어른 기저귀)가 두 통이나 남았길래 누굴 주기도 그렇고 버리기도 아까워서 인터넷에 재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보니 청소하는 데 사용하면 좋다고 세세하게 나와 있었다. 창틀에 쓸 때는 결 따라 잘라서 락스나 세제를 묻혀 끼워 넣었다가 빼면 감쪽같이 곰팡이가 없어지고 싹 거두어 버리니 편하고 좋았다.

시간 날 때 그것을 가위로 쭉쭉 잘라서 한 봉지 만들어 놓고 또 마루를 닦기 위해 몇 개를 주방 한쪽에 놓아두었는데 모르고 보면 누가 봐도 치매 할머니의 행동이 아니던가. 하하하. 내가 해명을 해도 딸은 오랫동안 멍하게 있었다. 엄청 놀랐나 보다.

나도 그 나이 때 부모님이 떠난다는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나고 자식도 남편도 필요 없고 따라 죽을 거라고 말하던 게 생각나서 애잔한 마음으로 이해가 되었다. 그래도 40대가 되어서는 내 가족이 우선이 되어 그분들이 큰 병 없이 편안하게 돌아가시길 기도하곤 했다. 내 아이들도 40대가 되면 자기 가족을 일 순위에 놓고 부모님은 사는 날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가기를 기도하는 자세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 마음은 아직 젊은데 자식들은 자신들이 보호해야 하는 노인인 양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계륵 같은 존재가 되고 있다는 걸 느낀다. 젊은이들이 그런 짓거리를 했으면 뭔 발명을 했나 하고 생각할 건데 나이 들어서는 사람을 만나도, 신기한 것을 발명·발견해도 아이들에게 먼저 보고하고 실행해야 치매 노인 취급을 안 받는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sesu3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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