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정부 로드맵대로 최저임금위원회를 구성하고, 2020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려면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합니다.
최저임금 결정기준을 보완키로 한 것은 일단 환영할만합니다. 현재 기준은 근로자 생계비와 유사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는데요.
여기에 고용수준, 경제 상황, 사회보장급여 현황 등을 명시적으로 추가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입니다. 다만 어떤 경제지표를 얼마나, 어떻게 반영할지를 놓고 일정 부분 진통이 불가피할 전망입니다.
현재 국회에도 경제성장률, 물가인상률, 고용에 미치는 영향 등을 결정기준에 추가한 법안이 다수 제출되어 있는데요.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전 국회에서 서둘러 논의되어야 혼란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최저임금이 정치적 변수의 영향을 덜 받으면서 근로자 생활을 안정시키고 경제 여건에 맞게 결정되게 하는 것이 결정체계 개편의 핵심이라며 이를 통해 해마다 반복되는 소모적인 갈등을 줄여나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최저임금 제도 개편의 본래 목적인 '저임금 근로자 보호'는 그저 헛된 구호에 그치는 것일까요? 정부가 노동계와 재계의 반발을 극복하고 소모적인 논쟁을 잠재워 본래 취지에 맞는 최저임금 개편을 단행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정부가 7일 최저임금 결정 과정의 '객관성'과 '공정성' 강화를 명분으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울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날 발표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은 최저임금위원회에 전문가들로만 구성된 '구간설정위원회'를 둬 최저임금 인상 구간을 먼저 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요.
구간설정위원회가 정한 최저임금 인상 상·하한선은 노·사·공익위원이 참여하는 '결정위원회'에 제출되고, 최저임금은 그 범위 안에서 정해집니다.
구간설정위원회가 노·사 양측의 협상을 사실상 제한하도록 해 전문가의 개입 범위를 확대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노·사 교섭 중심의 현행 방식이 논란의 원인이라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됩니다.
◆정부 '객관성' '공정성' 강화, 최저임금 개편의 명분?
현행 최저임금 결정체계는 노동계를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9명, 경영계를 대표하는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 등 27명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최저임금을 의결하는 방식인데 노·사간 극심한 대립으로 파행이 잦았던 게 사실입니다.
노동부에 따르면 최저임금제도 도입 후 32번에 걸친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표결 없이 노·사·공익위원 합의로 결정한 경우는 7번에 불과했는데요.
표결로 결정한 25번 중에서도 노·사 모두 표결에 참석한 것은 8번밖에 안 됐습니다. 노·사 중 한쪽이 퇴장한 가운데 표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는 얘기입니다.
이는 노·사 입장 차가 매우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2016년 적용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는 근로자위원이 최초 요구안으로 79.2% 인상을 제시한 반면, 사용자위원은 0% 인상(동결)을 제시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노·사 대립 구도 속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것은 다름 아닌 공익위원이었습니다. 공익위원은 대부분 대학교수와 연구기관 연구원 등 전문가들이지만, 9명 모두 노동부 장관이 추천하게 돼 있어 정부 입김에 휘둘린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는데요.
구간설정위원회 신설로 이같은 잡음을 잠재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게 중론입니다. 구간설정위원회 구성 과정부터 노·사 첨예한 대립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간설정위원회는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되는데 노·사 양측과 정부가 각각 5명씩 모두 15명을 추천하고, 노·사가 순차적으로 3명씩 배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순차 배제는 노동위원회 공익위원 위촉에도 사용되는 방식인데요. 노동위원회와 노·사 양측의 추천자 명단에서 노·사가 순차적으로 배제하고, 남는 사람을 공익위원으로 위촉합니다.
노·사 양측이 보기에 편향된 인사를 제외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인사로 위원회를 구성해 논란의 여지를 없애는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방식 둘러싼 쟁점 여전…노사 갈등 불씨되나?
노·사가 상대편 추천 인사를 배제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노·사가 눈에 띄는 이력을 지닌 인사를 순차적으로 배제할 경우 별다른 이력이 없고 전문성이 떨어지는 인사만 남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는데요.
노·사 순차 배제에서 남은 인사에 대해서도 이력 등을 토대로 성향 분석이 이뤄져 공정한 경쟁이 불가능한 상황을 뜻하는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이 재연될 여지도 있습니다.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 추천 권한을 정부가 독점하지 않고, 국회나 노·사 양측이 추천권을 나눠 갖도록 하는 방안도 공정성 논란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공익위원 추천에 국회가 개입할 경우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7년 활동한 최저임금 제도 개선 태스크포스(TF)도 국회의 공익위원 추천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었습니다.
다만 2년 전과 지금은 상황이 다르고, 현재 공익위원 공정성이 훨씬 중요한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는 반론도 나오고 있습니다.
결정위원회의 공익위원을 노·사·정이 추천하고 노·사 순차 배제 방식을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으나, 이 역시 구간설정위원회 구성과 같은 논란을 야기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정부의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방안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화하는 결과로 이어지려면, 논란을 줄일 세부적인 장치를 더 고민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위원회에 주요 노·사 단체뿐 아니라 청년, 여성, 비정규직, 중소기업, 소상공인 대표도 포함하기로 한 것은 주요 노·사 단체 대표성 논란에 대한 대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현행 법규상 노동계를 대표하는 양대 노총과 경영계를 대표하는 대한상공회의소와 중소기업중앙회 등이 최저임금위원회 위원 추천권을 갖는데요. 이들 단체가 최저임금의 영향을 받는 저임금 노동자와 소상공인 등을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느냐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최저임금 결정 방식을 둘러싼 쟁점은 결정구조 외에도 1~2개가 아닙니다.
노동계는 최저임금 결정 기준에 가구생계비를 포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요. 현재 방식은 비혼 단신 노동자의 생계비를 반영하는데, 이는 노동자 생계비 지표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입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경영계는 최저임금을 업종별·지역별로 차등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최저임금 차등 적용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한 입장입니다.
◆기업 10곳 중 9곳 "최저임금 인상 경영활동에 부정적"…근로자들은?
그렇다면 최저임금 개편안을 놓고 이토록 논란이 이는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선 전문가들은 법 개정으로 인한 후유증 등을 다수의 이해관계자로부터 듣고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달리 말해 이번 개편안 역시 현실과 동떨어지거나 현실의 문제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인데요.
특히 최저임금법은 국민생계와 직결되는 이슈라 법 개정에 있어 신중을 기했어야 한다는 게 중론입니다.
업계 한 전문가는 "우리나라는 임금체계가 통상임금, 평균임금, 각종 수당, 보조금 등으로 얽히고 섥혀 있어 갑자기 임금체계를 개편할 경우 취약계층은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논의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실제 기업 10곳 중 9곳은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습니다.
올해 기업들의 경영변수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는데요. 올해 성장률이 2% 초반까지 내려 갈 것으로 보는 곳도 절반에 달했습니다.
8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2019년 기업 경영환경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연구원은 지난달 10일부터 24일까지 국내 주요 110개 기업을 설문조사했습니다. 조사 결과 기업 77.8%는 올해 경제가 작년보다 나빠질 것이라고 응답했는데요.
올해 성장률은 '2%대 초반'이라고 본 기업이 46.8%로 가장 많았습니다.
응답 기업 대부분(89.8%)은 최저임금 인상이 경영 활동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올해 기업들의 경영변수에서도 가장 많은 35.2%의 선택을 받았는데요.
이 분야에선 '글로벌 보호무역주의의 기승'(25.9%), '미국 및 국내 금리 인상'(19.4%)도 제친 것으로 집계돼 그만큼 경영계에서 최저임금 인상을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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