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은 2016년 5월 박용덕 대한조선 사장(59)이 취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박 사장은 대한조선의 지분 23.4%를 보유한 대우조선해양에서 파견된 30년 경력의 ‘뱃사람’이다.
박용덕 대한조선 사장이 4일 전남 해남군 대한조선 본사에서 인터뷰하고 있다./해남=한동희 기자 |
대한조선은 혹독한 구조조정으로 체질개선에 나섰고, 다른 중형 조선소들이 사경을 헤매는 사이 부활에 성공했다. 대한조선은 2017년과 지난해 각각 14척과 15척을 수주했다. 연간 생산량(12척)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선박 건조장인 독(dock)은 하루도 쉴틈이 없다. 대한조선은 주력 선종인 아프라막스(aframax·11만5000톤)급 원유운반선 세계 1위(2018년 기준 점유율 42%)를 달리고 있다.
박용덕 사장은 지난 4일 전남 해남군 대한조선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3년 전 구조조정의 아픔을 이야기했다. "직원들을 떠나보내던 날, 목포 무안군에 있는 한 식당에서 임원들과 한참을 울었습니다."
◇ "조선업, 낭만 살아 있어"…그리스 선사에 무상 서비스해주자 계약 이어져
대한조선은 살아남기 위해 사무직 직원 100여명(전체 직원의 20%)을 희망퇴직으로 떠나 보냈고, 노조도 ‘회사가 살아야 모두가 산다’면서 구조조정에 동참했다. 박 사장은 대한조선이 인적·기술 자원에 비해 과다한 선종을 만들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채산성이 가장 좋은 아프라막스급 원유운반선에 역량을 집중하는 대신 나머지 선종은 만들지 않기로 했다.
박 사장은 "비슷한 도면을 꾸준히 개선하고, 실수를 줄여가다보니 직원들의 숙련도와 생산성이 향상됐다"며 "2016년 아프라막스 1척을 건조하려면 32만시수(32만명이 1시간 작업)가 필요했는데, 지금은 26만시수로 생산성이 대폭 개선됐다"고 말했다.
박 사장은 조선업이 ‘아직 낭만이 살아 있는 곳’이라고 했다. 신뢰나 의리 같은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에네셀이라는 그리스 선사는 배를 인도해간 지 얼마 안돼 선원 실수로 방향타가 고장이 났다. 대한조선은 직원 3명을 긴급 파견해 무상으로 ‘애프터서비스(A/S)’를 해줬다. 대한조선 입장에선 손해였지만, 큰 보상이 이어졌다. 박 사장은 "(대한조선에) 감동한 에네셀이 원유선 2척을 우리와 계약하겠다는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대한조선은 올해 수주 상황이 좋지만, 국내 중형 조선소들은 대부분 채권단 관리를 받으며 새 주인 찾기에 나서고 있다. 박 사장은 "대형 조선소의 위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중형 조선소들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면서 "중소형 조선소가 문을 닫으면 중소형 선박 시장을 중국에 고스란히 뺏길 뿐 아니라 기술·인력·생산 등 한국 조선업 생태계가 무너진다"고 했다. 그는 이어 "빅3 업체 같은 거목만 살리다간 숲(생태계)이 죽는다"고 했다.
박용덕 대한조선 사장./해남=한동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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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 안돼 중국에 물량 뺏겨"
박 사장은 중형 조선소의 생존에 필요한 수주를 위해 채권단이 ‘RG(선수금환급보증)’ 발급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할 경우 은행이 선주사에 선수금을 대신 물어주는 지급 보증이다. RG 발급이 안되면 선박 수주 계약 자체가 불가능하다. 박 사장은 "국내 선사들이 발주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정부가 혜택을 주는 방법도 고려했으면 좋겠다"며 "현재는 중국에 물량을 뺏기고 있는 실정이다"고 했다.
대한조선은 형님인 대우조선해양이 현대중공업에 매각되는 딜(계약)에 빠졌다. 박 사장은 "홀로서기는 매각이 아니더라도 꼭 해야하는 것"이라며 "회사의 매력을 키워서 궁극적으로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자는 목표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30년 대우맨으로서 서운하긴 하지만, 기왕 매각이 결정됐으니 구성원과 지역사회에 상처를 남기지 않고 결합심사를 잘 넘겼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박 사장은 대한조선을 조선업계의 ‘메르세데스 벤츠’로 만드는게 목표다. "폴크스바겐처럼 판매대수로 압도하지 못하더라도, 품질을 믿고 고객들이 찾아주는 브랜드가 되고 싶습니다. 호황이 끝나도, 불황에 견디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박용덕 사장은 부산대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고, 미국 미시간대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대우 망갈리아조선소 관리본부장, 대우조선해양 협력사지원담당, 오만 드라이도크 컴퍼니 최고경영자(CEO)를 역임했다.
해남=한동희 기자(dwis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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