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치킨집, 오늘은 빵집…저 집은 어떻게 된게 매일 주인이 바뀌지” “얼마나 장사가 안됐으면…또”
으레 한 번 쯤은 내뱉었을 법한 말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손 바뀜이 일어난다. 인테리어 공사를 마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시 가게 내부가 휑하게 비워진다. 가게 앞에 놓인 축하 화환은 이름만 달리해 같은 자리를 지킨다. 그러기를 수 십번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폐업 전문 용달차만 들락날락한다. 용달차는 누군가에겐 마지막 희망이었을 법한 각종 집기를 내다 나른다. 보는 이들의 가슴마저 짠하다.
어쩔 수 없이 ‘사장놈’으로 밀려난 ‘을’(乙)들의 눈물겨운 생존기다. 실패한 을들은 이름만 달리할 뿐, 생존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것은 똑같다. 그런데 어느새 우리 사회는 을들마저 줄을 세우고 있다. ‘발전’과 ‘보호’라는 허울아래 제일 ‘허우대 좋은’(?) 을에게 일정부분 희생할 것을 강요한다. 대기업 규제라는 명분아래.
대형마트에 이어 복합쇼핑몰도 한 달에 두 번은 강제로 쉬게하자는 발상은 우리 사회가 을의 생존전쟁을 너무 쉽게 본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이 동네에서 장을 보거나, 옷을 사지 않고 밖으로만 나간다고 이를 막자는 논리다. 그런데 그 밖에서 장사하는 이들도 똑같은 을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나 쉽게 간과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지난해 국내 복합쇼핑몰 임차인 구성을 전수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복합쇼핑몰의 1295개 매장 중 중소기업ㆍ자영업자가 운영하는 곳은 총 833곳에 달했다. 전체 입점업체 매장의 68%에 달한다. 롯데월드타워몰의 경우 입점업체 209곳 중 156곳(74.6%)이 중소기업기본법 시행령에서 정한 중소기업이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겠다는 의도(?)와 달리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다. 스타필드 하남은 월 2회 휴일 의무휴업을 적용하면 월 방문객이 약 20만명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복합쇼핑몰이 휴일 장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자영업자들의 몫이다. 한경연은 복합쇼핑몰 규제로 입점 소상공인 매출은 5.0%, 고용은 3.9%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한경연이 잠실 롯데월드몰, 스타필드 하남, 현대백화점 판교점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도 복합쇼핑몰 규제 강화에 반대한다는 응답자가 81.7%로 압도적이었다.
복합쇼핑몰을 규제한다고 또 다른 을들이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다. 대형마트 의무 휴업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대형마트의 매출액은 지난 5년 동안(2012~2016년) 연평균 2.4%씩 줄었으며, 규제 이전 21조8000억원을 기록했던 전통시장 매출액도 20조6000억원으로 감소했다.
20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에서 “공정하게 정의의 원칙을 세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 뒤에 서는 것”이라고 했다. 복합쇼핑몰 규제의 ‘유리한 점’(표심 자극)을 앞세워 ‘불리한 점’(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권 및 또 다른 자영업자 피해)을 애써 외면한 것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정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한석희 소비자경제부 컨슈머팀장 hanimomo@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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