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실망, 우려" 표현 이례적
日 경제보복 언급 자제와 대비
한미 갈등 도화선 되나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22일 오후 춘추관 대브리핑룸에서 "정부는 한일 간 '군사비밀정보의 보호에 관한 협정'(GSOMIA)을 종료하기로 결정했으며 협정의 근거에 따라 연장 통보시한 내에 외교 경로를 통하여 일본 정부에 이를 통보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아시아경제 백종민 선임기자] 미국 당국자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에 대한 청와대의 설명을 부인하고 나서며 한일 갈등의 불똥이 한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현실로 확인됐다. 청와대가 GSOMIA 유지에 대한 미국 측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받고도 종료를 결정한 만큼 이제는 대미 관계를 관리해야 하는 더욱 중대한 과제를 안게 됐다. 향후 한미 관계를 관리하지 못한다면 우리 외교가 고립되는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커지고 있다.
22일 내려진 정부의 GSOMIA 종료 결정에 대한 미국의 반응은 점차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 측의 반응은 지난 2일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안보상 수출심사 우대국)에서 배제한다고 각의에서 결정한 직후와 큰 차이가 난다. 당시 한ㆍ미ㆍ일 외교장관은 태국 방콕에서 회담도 했다. 당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은 일본에 대해 실망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폼페이오 장관은 22일(현지시간) "오늘 아침 한국 외교부 장관과 통화했다"면서 "실망했다"고 노골적으로 언급했다. 외교부는 한미 외교장관 전화 통화 여부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한일) 두 나라 각각이 관여와 대화를 계속하기를 촉구한다"면서 "두 나라 각각이 관계를 정확히 옳은 곳으로 되돌리기 시작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향후 갈등 조정의 과정에서 우리 측의 입장보다는 일본 측의 입장으로 기울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은 표면적으로 안보를 빌미로 경제 문제를 들고 나왔지만 우리 정부는 안보라는 금단의 영역에 진입한 탓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22일(현지시간) 캐나다 오타와에서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공동기자회견에서 얘기하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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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도 논평을 내고 "미국은 문재인 정부가 GSOMIA를 연장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우려와 실망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국무부는 이어 "GSOMIA 종료 결정이 이뤄지면 동북아시아에서 우리가 직면한 심각한 안보적 도전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의 심각한 오해를 나타낸다는 의사를 거듭 분명히 해왔다"고 했다. 미국의 반대에도 한국 정부가 GSOMIA 종료를 결정했음을 밝히고 책임이 한국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 국방부도 당초 "정보 공유는 공동의 안보 정책과 전략을 발전시키는 데 핵심"이라는 논평을 냈다가 '강한 우려와 실망감'으로 돌아섰다. 미 국무부와 국방부의 반응은 미 정부가 우리 정부의 결정에 강경하게 대응하기로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빈센트 브룩스 전 한미연합사령관도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우려하며 "한국 정부의 이번 결정은 한ㆍ미ㆍ일 3각 공조 체제라는 상징성을 훼손했다"고 지적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은 23일 새벽 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통화하고 강한 우려와 실망감을 표명하면서 한ㆍ미ㆍ일 3국 안보 협력 유지를 위한 소통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강경한 입장을 보이자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부처 장관들과 비공개 회의를 열고 GSOMIA 종료에 따른 정부 후속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강한 우려'와 '실망' 같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동맹에 대한 표현으로는 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종료 결정을 미국이 이해하고 있다'라는 청와대 관계자 발언에 대한 미 정부 소식통의 반박이다. 미국 측이 이번 조치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만큼 신속한 대응이 없을 경우 한일 갈등이 한미 갈등을 촉발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소식통은 "여기(주미 한국 대사관)와 서울에서 (항의)했다"고까지 언급했다.
현 상황을 관리하지 못한다면 향후 한미 관계는 물론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미국의 협조를 구하는 데서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지난 6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가닥을 잡아가던 미국의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 여부도 연계해 볼 수 있다.
GSOMIA가 종료된 상황에서 일본과 미국이 주축이 된 인도ㆍ태평양 전략 참여를 맞바꾸는 셈이다. 주한 미 대사 대리를 역임한 에번스 리비너 전 미 국무부 동아시아ㆍ태평양 담당 수석부차관보는 "한국이 일본과의 군사 정보 교류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트럼프 미 행정부에 대해 고의적으로 면박을 주기 위한 결정으로 여겨질 것이고 한미동맹 관리도 매우 복잡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보 면에서 한미 관계가 흔들린다면 경제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마침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관세를 내지 않는다며 불만을 제기한 데다 한국 등 부자 나라들이 개발도상국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강구하라고 지시한 상황도 향후 대미 관계 악화 시 한국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 압박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백종민 선임기자 cinq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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