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SKT “화웨이 이야기 못들어”.."크라크 차관 대화에서 없었다"
LG U+임원은 선약으로 불참..초청명단은 대사관이 작성
60여명 모인 자리, 다른 대화에서 얼핏 나왔어도 심각한 수준 아닌 듯
언론들은 앞다퉈 정치인이나 업계 발로 ‘방한 중인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KT와 SK텔레콤에 ‘반(反)화웨이’ 대열에 동참할 것을 압박했다’고 보도했다.
사실 여부가 궁금했다. 미국이 공개적으로 화웨이 장비의 기밀 유출 우려를 제기해 온 적은 많지만, 한국의 민간기업에 직접 압박한 사례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방한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과의 회동에서 “한국 대기업 투자에 감사한다”고 했을 뿐, 화웨이 압박 발언을 하지는 않았다.
보도들이 사실이라면 화웨이 장비의 보안성 논란이나 미래 기술 전쟁에서 이기려는 미·중 갈등과는 별개로, 대단히 부적절한 일이다. 외국의 고위 관료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을 침해했다고 볼 수도 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①크라크 차관은 이날 리셉션 자리에서 황창규 KT 회장과 SK텔레콤 A임원(전무급)을 만났지만 화웨이 자체를 언급한 바 없고 ②크라크 차관이 외교부 공무원 등 다른 누구와 화웨이를 주제로 대화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순 없지만, 사실이라 해도 이슈화되지 않을 정도의 미미한 수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크라크 차관의 국내 통신사에 대한 ‘화웨이 압박’ 보도는 팩트(fact·사실)와 다른 셈이다.
▲이태호 외교부 2차관과 키스 크라크 미국 국무부 경제차관이 7일 오전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3차 한미 민관합동 경제포럼 개회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스1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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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SKT “화웨이 이야기 못 들어”
6일 미대사관저에서 열린 리셉션에는 황창규 KT 회장과 SK텔레콤 A 임원이 참석했다. KT 고위 관계자는 “기업인 출신인 크라크 차관은 황 회장과 7분여 동안 독대를 했지만 화웨이 얘기는 나온 적 없다”고 확인했다.
황 회장과 크라크 차관은 이날 처음 만났지만, 둘의 대화는 상당히 오래 진행됐다. 삼성 근무 시절, 2002년 ‘국제반도체회로 학술회의(ISSCC)’에서 ‘매년 반도체 집적도는 2배 성장한다’라는 ‘황의 법칙(Hwang’s Law)’을 발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황 회장은 KT 회장으로 있으면서도 다보스포럼에서 통신 빅데이터를 활용한 ‘글로벌 감염병 확산방지 플랫폼(GEPP, Global Epidemic Prevention Platform)’을 제안하는 등 글로벌 협력에 열심이다. 크라크 차관과의 대화 주제는 5G를 비롯한 여러 이야기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SK텔레콤 A 임원도 “장소 자체가 통신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어떻게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겠냐”면서 “그런 보도가 나온 것이 이상하다. 기사가 이런 식으로 나오는구나 하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A임원에 따르면 이날 리셉션 초청자 명단은 미 대사관이 만들었으며 “미국에서 손님이 왔으니 지인들이 모여 소셜하는(social·관계맺는) 자리”였다고 한다. 크라크 차관은 A임원이 미국의 영화배우를 닮았다고 농담하면서 허깅(hugging·껴안는)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켄 후 화웨이 순환 회장이 6월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MWC 상하이 2019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화웨이는 창업자인 런정페이 회장 외에 궈핑, 켄후, 쉬즈쥔 등 3명의 순환회장(Rotating Chairman)이 돌아가며 의사결정위원회 의장(CEO 역할)을 맡는 독특한 제도를 갖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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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U+임원은 선약으로 불참..60여명 모인 정신 없는 자리
보도에는 화웨이 장비를 쓰는 LG유플러스는 부르지 않았거나 일부러 피한 것처럼 나와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 온도 차가 난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대사관에서 리셉션에 초청했는데 관련 임원(전무급)이 다른 일정이 있어 못 갔다”고 말했다. 대사관에서 초청받은 임원은 네트워크부문과 무관한 서비스 개발 부서 임원이었다.
해당 리셉션에는 여야 국회의원, 외교부 공무원, 국내 기업인들, 한국에 진출한 미국 기업 대표 등 60여 명이 참가해 북적거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크라크 차관 등이 국내 통신사가 아닌 정치인이나 공무원 등에게 화웨이 압박 발언을 했을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사실이라 해도 리셉션에 참석한 통신사 임원들을 콕 찍어 화웨이 압박을 한 것은 아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주제로 대화하는 자리여서 심각한 내용이 오갔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사람이 워낙 많아 크라크 차관이 통신사가 아닌 다른 이에게 화웨이 압박 발언을 했는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공식적으로 높은 사람이 이야기한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데일리는 미대사관 공보보좌관에게 크라크 차관의 발언 진위를 물었지만 “지금까지 온더레코드(on-the-record·보도해도 좋다는 전제의)이벤트가 아닌 리셉션 등의 내용을 보도용으로 확인해 드린 바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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