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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3 (화)

이슈 고령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

[취재일기]상황 따라 변하는 재정준칙, '고무줄 기준' 걱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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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11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출범 2년반의 경제상황에 관한 소회를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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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준칙, '신중한 검토'에서 '도입 추진'으로 기류 변화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23일 국회 국정감사 당시 국가 재정 건전성 관리 기준인 '재정준칙'의 법제화 필요성을 묻는 말에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통상 국감에서 이런 정부 답변은 '검토하지 않겠다'는 말과 동의어다. 일부 의원들은 내년도 513조원 규모 '슈퍼예산'을 편성하고서도 곳간을 관리하는 기재부가 관리 기준조차 마련할 생각이 없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한 야당 의원은 "기재부가 정권 눈치 보느라 재정 건전성을 등한시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최근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됐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1일 문재인 정부 반환점을 맞아 기자간담회를 열고 "2023년 이후 급격히 국가채무가 는다면 엄격한 관리가 필요할 것"이라며 "재정준칙 설정도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13일 발표한 인구 대책 관련 정부 공식 보도자료에서도 '재정준칙 도입 검토'란 문구를 명시하며 "저출산·고령화로 세입은 줄고, 재정 지출은 늘게 되면 재정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단서는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 추진



불과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정부의 기류가 180도로 달라진 것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몇 가지 단서가 붙어 있다.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기재부 고위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유연한' 재정준칙이란 재정 관리 마지노선을 법으로 못 박는 게 아니라 하위 법령이나 '원칙' 정도로 정하는 것"이라며 "준칙 자체도 무조건 마지노선을 설정할 게 아니라 국가채무와 재정적자 증가율을 관리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국회 계류 중인 재정건전화법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45%로,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3%'로 관리하자는 게 핵심이지만, 이런 방식과는 다르게 운용하겠다는 의미다.

재정관리의 마지노선을 법으로 정하지 않는 것은 일견 타당한 측면이 있다. 재정 건전성 논쟁은 학자들 간에도 늘 평행선이었다. 이를 법으로 정하면 국회에선 소모적인 정쟁만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적 상황에 맞는 유연한' 재정준칙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재정준칙은 국민이 피땀 흘려 모은 '혈세' 관리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규칙인데,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만들겠다는 정책 아이디어는 그 자체가 '뜨거운 아이스크림'처럼 형용 모순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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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대비 관리재정수지·국가채무 비율 추이.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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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화 속도 가팔라…'고무줄 준칙' 우려



현재 재정과 관련한 '한국적 상황'이라면, 저출산·고령화로 재정 지출이 급증할 위험을 앞두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정부가 직접 설명한 것 그대로다. 여기에 남북통일 등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에도 대비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재정준칙'이란 단어 앞에 붙는 수식어는 '엄격한'과 '유연한' 중에 무엇이 어울릴까. 정권을 잡으면 '선거용 돈 풀기' 유혹에 빠지기 쉬운 상황이 '한국적 상황'은 아닐 것이다. 이를 위해 '유연한'이란 단어를 붙일 수는 없다.

앞으로 써야 할 돈은 많은데 벌이는 줄어드는 상황에서 재정준칙마저 유연하게 운영하겠다는 것은 애당초 '고무줄 기준'만 만들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동안에도 정부는 내부적으로 규정한 재정 관리 기준을 어겨왔다. 기재부는 2014년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 30%대 중반'을 관리 기준으로 정했다가 이듬해에 이 목표치가 '40%대 초반'으로 바뀌었다. 올해에는 '40%대 중반'으로 또 수정됐다. 왜 '40% 중반이냐'는 질문에는 홍 부총리조차 명쾌하게 답변하지 못한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1% 관리한 참여정부 본받아야"



기왕 재정준칙을 만들기로 했다면, 이번 기회에 중·장기 경제 성장률과 저출산·고령화 속도, 세대별 세금 부담액 등을 총망라해 '재정 포퓰리즘'에서 독립적인 거시 재정 분석 작업이 선행됐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가 참여정부를 계승한 것이 맞는다면, 재정준칙만큼은 그때처럼 하면 좋겠다. 재정 전문가인 옥동석 인천대 무역학과 교수는 "참여정부 때는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1% 이내에서 관리하겠다는 준칙을 세우고, 정부도 이를 지켰다"며 "엄격한 재정준칙과 함께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나라 곳간을 관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재정기구 마련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김도년 기자 kim.don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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