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부품업체 KH바텍의 한 직원은 "일할 맛이 난다"며 이렇게 말했다. KH바텍은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갤럭시 폴드'에 들어가는 힌지(hinge)를 생산한다. 힌지는 화면이 접힐 수 있게 경첩 역할을 하는 부품이다.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이 회사는 당시 세계 최대 휴대폰 제조사인 노키아에 힌지를 납품했다. 위아래가 겹치는 폴더형 휴대폰엔 힌지가 꼭 필요한 부품이었다. 하지만 직사각형의 바(bar) 형태인 스마트폰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영 위기의 시간을 보냈다. 폴더블폰 등장은 이 회사에 회생의 기회를 줬다. 증권가에서는 KH바텍이 올해 소폭 흑자 전환한 뒤, 내년엔 매출 3430억원에 흑자 462억원을 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교보증권은 이 회사를 "힌지 분야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로 표현했다.
화면이 접히는 폴더블폰 시장이 개화하면서 주요 부품업체들이 속속 흑자 전환에 성공하고 있다. 신개념 디자인의 폴더블폰 판매가 급증하자, 전용 부품 시장도 수혜를 입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내부 회의에서 내년 폴더블폰 판매 목표를 500만대 이상으로 확정했다. 올 9월 내놓은 갤럭시폴드가 4개월 만에 50만대 팔리자, 내년에는 본격적인 물량전에 나설 채비다. 증권가에선 삼성의 목표보다 폴더블폰 판매량을 더 많게 보고 있다. DB금융투자는 갤럭시 폴드가 내년 600만대, 2021년 1600만대, 2023년 3500만대로 수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내년 폴더블폰 시장 개화
올해는 폴더블폰의 원년이다. 삼성전자에 이어 중국의 화웨이도 지난달 아웃폴딩(화면이 밖으로 접히는) 방식의 '메이트X'를 출시했다. 진짜 경쟁은 내년부터다. 모토롤라가 내년 1월 위아래로 접는 '레이저'를 출시할 계획이고, 삼성전자는 내년 1분기 레이저와 같이 위아래로 접는 '크램셸(조개형)' 형태의 '갤럭시 폴드 2'를 출시할 예정이다. 또 내년 8~9월에 대화면 폴더블폰인 갤럭시 폴드3도 내놓을 계획이다. 화웨이는 메이트X의 후속작인 '메이트Xs'를 내년 상반기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웨이보에 유출된 삼성전자 갤럭시 폴드2 추정 사진.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내년 등장할 폴더블폰은 지금보다 한 단계 진화할 전망이다. 지금은 휘어지는 화면 소재로 플라스틱을 쓰지만, 내년부터는 얇은 유리를 쓸 것으로 보인다. 유리는 플라스틱 필름보다 충격과 스크래치에 강하다. 삼성전자가 당장 갤럭시폴드2부터 투명 폴리이미드 필름(CPI) 대신, 얇은 초박형 강화 유리(UTG·Ultra thin glass)를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한 번만 접는 1세대 폴더블폰에 이어, 'Z'자(字) 형태로 두 번 접히는 신제품도 조만간 등장한다. 스마트폰을 병풍 접듯이 세 겹으로 차곡차곡 겹쳐놓는 방식이다. 중국 TCL이 최근 이런 디자인의 견본품을 공개했다. 두 번 접는 만큼, 힌지와 같은 부품 사용량은 훨씬 많아진다.
◇흑자 전환하는 부품업체들
KH바텍·파인테크닉스·켐트로닉스와 같은 주요 폴더블용 부품 업체들은 벌써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다. 3개 부품 회사의 주가는 최근 6개월 동안 평균 92% 올랐다. 실적도 수직 상승하고 있다. 내장 힌지를 만드는 파인테크닉스는 작년 매출 1297억원, 영업적자 188억원을 기록했지만 올해는 흑자 전환할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한다. 내년엔 본격적인 폴더블폰 수혜로 매출이 올해보다 76% 늘어난 2332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겹치는 2개의 화면을 보호하는 초박형 강화유리 제조업체인 켐트로닉스는 내년 영업이익이 올해(297억원)보다 53% 증가한 455억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폴더블폰은 펼쳤을 때 기존 스마트폰보다 훨씬 크다. 이 때문에 스마트폰 뒷면을 덮는 외부 보호 필름을 생산하는 세경하이테크 같은 업체도 폴더블폰과 함께 몸집을 키우고 있다. 최보영 교보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스마트폰 제조업체들이 10년 만에 열리는 새로운 모바일 카테고리 영역에서 시장 우위를 차지하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그 뒤편에선 관련 부품 업체들이 지속적인 수혜를 볼 것"이라고 했다.
<저작권자 ⓒ ChosunBiz.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