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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이슈 [연재] 경향신문 '베이스볼 라운지'

[베이스볼 라운지]2020년 감독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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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최지만(29·탬파베이)은 지난 시즌 OPS 0.822, 19홈런, 63타점을 기록했다. 한 방 능력이 있는 좌타 1루수에게 적당한 타순은 클린업 트리오다. 대부분 3번이나 5번에서 뛰었고, 가끔 4번 타자로도 나섰다. 그런데 7월부터 1번 타자로 종종 나오더니 7월29일부터 8월8일까지 7경기 연속 ‘1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다. 최지만은 “나도 신기해서 구단에 물어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실험정신’ 강한 탬파베이가 또 한 번 도전한 실험이었다. 선발 투수에게 1~2이닝만 맡기는 ‘오프너’에 이어 장타력 있는 타자를 1번 타자로 내세우는 ‘타선 오프너’ 실험이었다. 탬파베이 1번 타자는 가장 강한 타자가 나섰다. 경기 초반 장타력으로 선취점을 높이는 것이 승리 확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었다. 탬파베이는 투 트랙 ‘오프너’를 발판으로 가을야구 진출에 성공했다.

최지만이 “그래서 타선 짜는 사람에게 물었다”고 말했다. 타선 짜는 사람? 최지만은 “그런 사람이 있다. 코칭스태프 중에 타선 짜고, 마운드 운영 순서 정하는 인물”이라고 답했다. 최지만의 설명에 따르면, 상대 투수진과 탬파베이 타자 중 뛸 수 있는 선수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시뮬레이션을 해서 최적의 타순을 구성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감독 및 코칭스태프가 회의를 열어 최종 라인업을 결정한다. 최지만은 “에이, 요즘 감독이 타순 짜는 팀이 어디있어요. 다른 팀도 다 그렇게 해요”라며 웃었다. 그러니까, LA 다저스가 가을야구에서 자꾸 지는 것은 ‘돌버츠’ 때문이 절대 아니라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과거 야구 감독의 역할은 ‘모든 영역’에서 절대적인 지배력을 지녔다. 선수 육성과 스카우트, 신인 지명에 트레이드까지 모두 감독 손을 거쳐야 했다. 감독은 야구의 전지전능 절대자였고, 그 역할을 요구받았다.

시간이 흘렀고 야구가 바뀌었다. 감독의 역할도 달라졌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더 큰 힘을 얻는다. 트레이닝과 스카우트 등은 자기 영역이 확실해졌다. 선수단 구성은 감독 대신 단장이 맡고, 책임진다. 이제 심지어 타순도 감독이 짜지 않는다. 투수 운영의 밑그림도 컴퓨터가 대신한다. 경기 중 순간순간의 ‘결정’ 정도만 감독의 몫이다.

그렇다고 야구 감독이 모두 ‘허수아비’가 되는 것은 아니다. 감독에게는 더 중요한 역할이 주어진다. 최지만은 탬파베이 케빈 캐쉬 감독에 대해 “나를 둘러싼 감독과 팀의 모든 결정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고 말했다. 선발 라인업에서 빠지면, 왜 빠졌는지, 지금 빠지는 것이 최지만에게 앞으로 어떤 영향을 주는지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이어지는 식이다. 이를 통해 선수단 전체의 힘을 하나로 모은다. 2020년 감독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예지력도, 카리스마도 아닌 ‘설명’을 통해 이해시키는 능력이다. 토론토 찰리 몬토요 감독이 류현진 입단식 때 타악기 콩가를 직접 연주한 것도 설명과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한 노력이다.

2020시즌을 위한 KBO리그 스프링캠프가 시작됐다. KBO리그 감독들에게 캠프는 선택과 결정의 시간이다. 선발, 중간, 마무리, 각 포지션의 주전 등 수많은 일들을 결정해야 한다. ‘내가 보기에 좋았더라’는 식의 감상이 아니라, ‘왜 이렇게 했는지’의 설명이 기대된다. 2020년 감독의 역할이 바로 거기에 있고, 신임 감독들은 모두 그 역할에 능하다. 초반 성적이 흔들리더라도, 설명이 제대로라면 팬들도 납득하고 기다릴 수 있다. 야구가 더 재밌어지는 길이다.

이용균 기자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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