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시카고 컵스의 앤서니 리조가 타석에 들어섰다. 에인절스와의 경기였다. 볼카운트 2-2, 타석에서 준비자세에 들어간 리조의 목소리가 들렸다.
“음, 저는 지금, 어떤 공이 들어올지를 두고 머릿속으로 아주 복잡한 수학 계산을 하고 있죠”라더니 “누가 쓰레기통 좀 두드려줬으면 좋겠네요”라며 웃었다. 휴스턴 사인 훔치기에 대한 풍자에 중계진도 폭소가 터졌다.
이틀 뒤, ‘사건’이 더 커졌다. 뉴욕 메츠 선수들은 세인트루이스와의 경기에서 ‘만담’을 펼쳤다. 선수 5명의 목소리가 경기 중 방송을 탔다. 신인왕 피트 알론소는 ‘방송인’ 수준의 입담을 자랑했다. 적시타를 때린 뒤 “아까 첫번째 슬라이더에 헛스윙했을 때 내 모습이 진짜 웃기게 보였을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키우는 강아지 이름을 ‘브래디’에서 ‘브로디’로 바꿔야겠다고도 했다. 브로디는 뉴욕 메츠 단장의 이름이다.
2020시즌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서 선수들이 ‘마이크’를 달고 있다. ESPN과 함께하는 ‘최선의 소통(All access)’ 캠페인이다. 스프링캠프 경기 중 생생한 목소리가 중계를 통해 들린다. 브로디 반 와그넨 메츠 단장도 경기 중 마이크를 차고 스프링캠프 성과를 설명했다. 알론소는 “허락되면 시즌 중에도 마이크 찰 수 있다”고 했다. 물론 경기 중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욕설’은 주의사항이다.
선수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메이저리그와 팬들을 더욱 가깝게 연결한다. TV의 ‘관찰 예능’ 프로그램보다 더 가깝다. 편집이 없는 생방송이다. 선수와 팬만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야구’ 자체가 가까워진다. 8일에는 디노 에벨 LA 다저스 3루코치가 마이크를 달았다. 가빈 럭스 3루주자에게 “투구가 뒤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적극적으로 뛰어들어가”라고 설명했다. 곧장 폭투가 나왔고 득점에 성공했다. 숨기고 가려졌던 야구의 디테일이 마이크를 통해 살아났다.
야구 관심 회복을 위한 메이저리그의 노력이다. 사무국과 구단, 선수 노조가 뜻을 모았다. 선수들은 적극적으로 마이크를 찼고,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야구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위축됐다. 시범경기는 취소됐고, 연습경기도 여의치 않다. 개막 일정도 불투명한 상태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사회적 거리 두기’가 권고사항이다. 캠프에서 돌아온 구단들은 비공개 훈련을 추진 중이다. LG는 선수단 전체가 이천 챔피언스 파크에 입소해 격리 훈련을 진행한다. 나머지 구단들도 집과 야구장만 오가는 방식을 택했다. KBO도 ‘사회적 거리 두기’를 위해 선수와의 대면 만남, 사인 및 사진 요청, 선물 전달, 선수단 동선 근거리 접촉 등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사회적(혹은 물리적) 거리 두기는 어쩔 수 없지만, 정서적 거리 줄이기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 야구에 목마른, 답답한 팬들을 위해 야구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설 때다. 소통의 면을 넓히고, 보다 생생한 모습을 전할 때다. 연습경기가 안된다면 청백전 인터넷 중계는 물론, ‘훈련 캠’과 ‘점심 먹방’도 가능하다. 싱싱한 전력투구의 미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팬들의 가슴은 뛴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오히려 정서적 거리 줄이기의 기회다.
메이저리그는 마이크를 찼다. KBO리그도 찰 수 있다.
이용균 nod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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