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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존 볼턴 회고록 파장

정세현 "볼턴 회고록, 文의 분투 증명해줘..감사패 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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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워킹그룹이 패스트트랙? 사사건건 족쇄

군산복합체 대변 볼턴, 회고록 팩트와 달라

볼턴 회고록, 역설적으로 文 노력과 역할 증명

김정은의 보류, 文에 다시 기대를 가진 증거

한미군사훈련과 南 민심 역풍 등 우려한 北

40년 판문점 협상가 정세현의 아쉬웠던 순간?

"94년 남북정상회담 무산, 가장 아쉬웠다"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MHz (18:25~20:00)
■ 방송일 : 2020년 6월 25일 (목요일)
■ 진 행 : 정관용 (국민대 특임교수)
■ 출연자 :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노컷뉴스

(사진=연합뉴스 TV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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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용> 오늘이 한국전쟁 70년. 그런데 여전히 안갯속인 남북미 3국 정세 어떻게 풀어야 할지 지난주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말씀 나눴는데 지난주에 차마 못한 그 회고록 편지 이야기도 들어보려고 오늘 다시 불렀습니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맡고 계시죠? 정세현 전 장관 어서 오세요. 우선 김여정이 나서서 계속 으름장 놓고 협박하고 건물까지. 저는 꼭 그 표현을 쓰는데 왜 애꿎은 건물을 폭파시키느냐. ‘애꿎은’이라는 단어를 꼭 쓰는데. 그런데도 군사행동하겠다고 한 여러 가지 계획을 김정은이 딱 나타나서 보류하라, 이거 뭐예요?

◆ 정세현> 애꿎은 건물 폭파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삐라 살포 문제를 남쪽이 확실하게 그리고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해 달라고 그런 얘기를 하는데 우리 쪽에서 그렇게 적극적으로 처음에는 대응을 안 했어요.

◇ 정관용> 그래도 법까지 만들겠다.

◆ 정세현> 아니 법을 만들겠다고 했는데.

◇ 정관용> 적극적으로 만들겠다.

◆ 정세현> 처음에는 법을 만들겠다고 했다가 그게 법을 만드는 것이 쉽지가 않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래서 있는 법을 가지고 규제를 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하니까 북쪽이 듣기에는 뭐야, 우리는 지금 그야말로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행위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지금 이렇게 우리가 화를 내고 그러는데 거기다 대고 슬그머니 대충 있는 법을 가지고 대응한다? 그다음에 삐라 살포하는 것도 단속을 하겠다는 정도로 희미하게 나가니까 이거 어렵겠구만. 뭔가 좀 확실하게 충격을 줘서 우리가 지금 얼마나 그걸 절실히 원하는지 알게 해 주려면 뭔가 좀 충격적인 행동을 해야 되겠다.

◇ 정관용> 충격적인 행동을 하고 예고해 놓은 것들이 개성공단, 금강산에 군부대가 배치되고 대남방송도 다시 재개하고 이런 것들인데 일절 갑자기 보류했어요. 뭘 얻은 건가요?

◆ 정세현> 처음에는 충격적인 그야말로 애꿎은 건물을 폭파함으로 해서 우리 정부 쪽에서, 우리 쪽에서 무슨 뜻인지 알겠다. 그 삐라 살포를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빠른 시간 내 법을 만들고 그다음에 법이 만들어지기 전이라도 행정력을 총동원해서라도 그걸 막겠다. 의지를 보여주니까 그 정도면 됐다, 이제 그렇게 생각을 하고 그러면서도 우리 쪽에서 여러 가지 이제 논의가 많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이게 도대체가 삐라도 삐라지만 사실은 4.27 판문점선언과 9.19 평양선언이 이행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을 이렇게 에둘러서 건물 폭파 방식으로 지금 펴는 거니까, 차제에 미국과 긴밀한 협의를 통하든지 아니면 미국과 좀 각을 세워 싸워서라도 4.27 선언과 9.19 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재량권 같은 거를 좀 받아내야 된다는 논리가 많이 나왔습니다. 저도 그 얘기를 하고. 문정인 교수도 그런 얘기를 했는데. 그런 걸 보면서 잘하면 4.27 선언, 9.19 선언과 관련해서 그동안에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서,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견제를 하기 때문에 한미 관계를 생각해서 좀 주저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하게 하겠다하는 믿음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면.

◇ 정관용> 한번 한국이 이제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 정세현> 두고 보자. 그러면 예고는 했지만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군사행동을 했다가는 오히려 남한 민심이 뒤집어지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했을 거예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정도껏 해야지 너무 심하지 않나. 요구사항을 우리가 들어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심하게 한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고 또 하나는 그 군사행동을 너무 과격하게 했다가는 잘못하면 8월달에.

◇ 정관용> 한미군사연습.

◆ 정세현> 대충 지금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는 걸로 좀 이야기가 되어 가고 있는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자초하는 결과가 될 거다.

◇ 정관용> 그렇죠.

◆ 정세현> 이걸 남쪽이 금년은 하지 말자는 식으로 미국한테 조금 요청을 하도록 만드려면 그러려면 뭔가 우리도 군사행동 또는 군사적 충돌을 유발할 수 있는 일을 좀 자제하는 게 좋겠다. 그래서 갑자기 23일날 김정은 위원장이 그걸.

◇ 정관용> 보류, 보류.

◆ 정세현> 위원장에 안건으로 상정하지 말라고 지시를 했고 그리고 그것이 무슨 뜻인지 해석하기 위해서 어제 밤에 그동안의 대남사업을 총관장했던 김영철이 다시 나와서.

◇ 정관용> 담화를 냈죠.

◆ 정세현> 우리가 남쪽에 앞으로의 태도를 지켜보고 다음 수순을 생각하겠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생각하면 일단 또 날짜를 계산해 보니까 김정은 위원장이 안 보이다가 20일 만에 나타났는데 김여정 부부장이 상당히 고약한 대남 비난 담화가 나온 뒤 20일 만에 또 상황이 반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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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용> 그것도 여동생 김여정이 악역을 맡고 김정은이 좋은 역할을 맡은 사전에 어떤 계획이 있었을까요?

◆ 정세현> 그렇게 보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전에도 3월달에도, 3월달에도 청와대를 상대로 해서 김여정 부부장이 아주 좀 고약한 단어를 써가면서 욕을 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다음 날 또 김정은 위원장이 친서를 보내고, 코로나19 관련 위로 친서를 보내고 이런 걸 보면 이번에 김정은 위원장이 다시 전면에 나선 것은 김여정 부부장을 통해서 확실한 메시지를 보냈기 때문에, 보내고 나니까 남쪽이 그들 표현으로는 정신을 차렸다. 그러면.

◇ 정관용> 기회를 줘보자.

◆ 정세현> 대화 가능성도 열어줘야 되는 거 아니냐. 그러려면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움직이는 모양새를 비추는 것도 좋을 것 같다라는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 정관용> 오늘 오전에 우리 장관님께서 국회에서 강연하셨는데 조금 아까도 표현하셨던 한미 워킹그룹. 이걸 남북 관계 개선의 족쇄다, 이렇게까지 표현하셨더라고요. 족쇄입니까, 정말?

◆ 정세현> 족쇄죠.

◇ 정관용> 사사건건 말리는.

◆ 정세현>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얘기를 안 하고 우리로 하여금 한미 워킹그룹을 만드는 데 동의하도록 유도했죠. 예를 들면 지금 한국이 앞으로 남북 관계 대북사업을 해 나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재무보고 직접 협상을 해야 되는 일도 있고 상무보고 해야 될 일도 있고.

◇ 정관용> 또 정상 절차를 밟으려면 몇 개월 걸릴 것을 속전속결로 해낼 수 있잖아요.

◆ 정세현> 그럴 수도 있는데. 한꺼번에 그걸 패스트트랙식으로 보는 게 어떠냐라고 그러니까 그럼 나쁘지 않겠다라고 생각을 해서 좋다라고 했더니 그렇게 해서 끌어들여놓고 그다음부터는 사사건건 4.27 선언이나 9.19 선언에서 합의한 사업을 이행해 나가려고 그러는데 그게 UN대북제재에 걸린다. 그다음에 미국의 독자적 대북 제재에도 저촉된다. 이건 하지 마라. 더구나 남북 관계 개선은 어디까지나 비핵화하고 병행해서 이루어져야지 남북 관계가 먼저 앞서가는 것은 북핵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하는 해괴한 원칙을 들이대면서 사사건건 막았어요. 그래서 사실 2019년에 문 대통령이 대북사업을 4.27, 9.19에 합의한 대북사업을 하나도 이행을 못했습니다.

◇ 정관용> 그럼 이제 앞으로는 워킹그룹을 가동, 제껴놓고 해야 됩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 정세현> 그러니까 그걸 이제 정부가 규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그건 고민을 하겠죠. 그러나 기본적으로 워킹그룹이 없을 때도 한미 간에 공조는 얼마든지 할 수 있었어요. 오히려 그걸 만들어서 한국의 대북 행보가 사사건건 발목이 잡힌다면 뭔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해서 이런 일이 없었다면 이거 뜯어고쳐야지, 없애자는 얘기를 할 수 없지만 북한이 다행히 이런 일을 지금 저질렀는데 4.27, 9.19 선언을 이행하려면 이건 남북관계와 비핵화를 연계시키는 것은 적어도 미국이 좀 접어줬으면 좋겠다.

◇ 정관용> 양해를 해야죠.

◆ 정세현> 그럼요. 아니, 비핵화가 지금 몇 년된 문제인데 그걸 남북 관계에다 건단 말입니까?

◇ 정관용> 독자적인 남북 관계의 진전을 미국으로 하여금 양해를 얻어내야 되는 것이고.

◆ 정세현> 그렇죠.

◇ 정관용> 그리고 우리가 특사제안 했다가 김여정한테 공개적으로 반박당하고 그랬었는데 김정은은 이런 보류 지시 이후에는 다시 좀 특사제안 같은 것도 하고 이럴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 정세현> 글쎄요. 그러니까 지금 김영철 당 부위원장의 어젯밤 담화를 제가 아침에 일어나서 보고는 이건 굳이 나서서 이렇게까지 부연설명을 하는 거 보면 우리가 남측의 태도를 좀 지켜보겠다는 식으로 이제 얘기를 했는데 그건 지난번에는 특사를 거절했는데 이번에는 너무 그렇게 큰 거창한 소위 높은 사람 말고 실무적으로 좀...

◇ 정관용> 뭔가 얘기 좀 하자.

◆ 정세현> 물밑대화를 한번 좀 할 수도 있다는 메시지가 그 밑에 잠겨 있지 않나라는 생각으로 뭐라고 그럴까. 희망적 관측일지 모르지만.

◇ 정관용> 어떻게든 대화를 해야죠.

◆ 정세현> 글쎄요. 그리고 북쪽도 그렇게 해서 확실하게 남쪽과 물밑대화를 하든지 이렇게 해서 8월달에 지금 예정, 그냥 그대로 가면 8월달에 실시하게 되어 있는 한미연합훈련을 확실하게 좀 금년에 또 다시 중단시켜야만 금년에 지금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인데 10월달에 75주년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려면 한미연합훈련을 자초해서 그것 때문에 없는 살림에 대응하느라고 기름 다 쓰고 또.

◇ 정관용> 한미연합훈련을 옛날에 하던 방식으로 미국의 전략자산까지 하게 되면 그 북한군도 맞대응 안 할 수가 없어서.

◆ 정세현> 안 할 수 없죠.

◇ 정관용>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간다면서요?

◆ 정세현>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가고 어마어마한 물자가 들어가고 어마어마한 병력이 그야말로 시간적으로 지금 들판에 나가서 일해야 될 북한의 군인들은 공사장이나 노동현장에 많이 나갑니다, 도와주러. 그런 인력이 전부 지금 전선으로 동원이 돼야 되기 때문에 경제에 미치는 타격이 굉장히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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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이 10일 오전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회고록 '판문점의 협상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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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관용> 그렇죠. 알겠습니다. 뭔가 이제 남북 간의 물밑 대화 시작이 돼야 될 것 같아요. 볼턴의 회고록 또 우리 일부 언론들이 볼턴의 회고록 내용을 집중적으로 보도하면서 정부를 공격하고 심지어 미래통합당은 볼턴의 회고록 내용을 근거로 청와대에 질문까지 지금 보내고 있는데 그거 어떻게 보세요?

◆ 정세현> 볼턴이 자기 철학을 가지고 그 철학에 입각해서 글을 쓰니까 그야말로 국민들이 확실히 알아야 될 것을 사실은 이제 폭로를 한 셈이에요.

◇ 정관용> 어떤 점이죠?

◆ 정세현> 자기는 지금 북핵 협상을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든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잘 연결시켜서 핵 문제가 해결되도록 해야 되고 그것이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볼턴은 그 핵 문제가 해결되는 걸 반대하는 소위 군산복합체적 이익을 대변하는 사람이에요. 핵 문제가 해결되면 무기시장이 없어진다는 생각을 하죠.

◇ 정관용> 이번에 회고록을 통해 자기 정체를 드러낸 거죠.

◆ 정세현> 드러냈죠. 드러냈지만 자기 정체를 분명히 드러내는 과정에서 문 대통령이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가 다리를 놨고 쉽게 얘기해서 문 대통령이 할 일을 제대로 했다는 것을 볼턴이 확인해 준 거예요.

◇ 정관용> 확인시켜준 거죠.

◆ 정세현> 그거 하나는 감사장 하나 줄 필요 있어요. 다른 것은 팩트 자체가 틀리니까. 예를 들면 정의용 실장이 무슨 트럼프 대통령한테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라고 제안을 했다는 것은 그게 3월 8일날 얘기입니다. 3월 5일날 평양 가서 김정은 위원장 만나고 왔다가 바로 이제 미국 가서 트럼프 대통령이 있고 그 자리에 그 당시에 안보보좌관 맥 마스터, 매티스 국방장관, 틸러슨 국무장관 다 있는 자리에서 그 얘기를 김정은 위원장의 메시지를 전달하니까 바로 만나겠다고 그랬어요. 일은 그렇게 됐는데 그때 안보보좌관도 아니었던 볼턴이 마치 자기가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정의용 실장이 김정은을 만나라고 소위 북미 정상회담을 주선했다. 그건 팩트 자체가 틀린데. 그런 데서 사실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의 얘기가 다른 데서 뭐 진실이 담기겠습니까? 문 대통령이 북미 간에 중재를 잘해서 북핵 문제를 풀어보려고 했다고 하는 거 그건 진실이에요.

◇ 정관용> 그런데 이제 그걸 볼턴식 시각을 동원해서 북한은 북핵을 절대 포기할 생각이 없고 미국 트럼프는 그저 자기 대통령 재선에만 써먹을 생각밖에 없고. 그런데 우리 한국 정부가 모든 걸 이렇게 다 그냥 되지도 않을 일을 했다는 식의 논조잖아요.

◆ 정세현> 그런데 미국 내에는 북한은 북한과 협상을 통해서 핵 문제를 풀어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비둘기파도 많습니다. 그러나 미국 내에는 북한 핵을 포기하면 아니, 북한 핵은 없애면 안 된다. 그런데 없애면 안 되는데 그리고 협상으로 해결이 안 된다라는 것을 국민들 사이에 그것을 전파하고 그걸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수법을 쓰느냐 하면 절대로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 정관용> 그러니까요.

◆ 정세현> 그렇게 전제를 하고.

◇ 정관용> 그게 네오콘들의 시각이죠.

◆ 정세현> 그렇죠. 네오콘들은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거기 때문에 자체가 의미가 없다. 그렇게 몰아가요.

◇ 정관용> 그런데 그걸 볼턴적 시각의 그 내용을 계속 인용하고 보도하면서 우리 정부는 쓸데없다는 식으로 공격하는 그 논조는 어떻게 보세요?

◆ 정세현> 그러면 자기네들이 집권을 했다고 칩시다, 통합당이. 그러면 어떻게 할 거예요? 북한의 핵을 인정하고 그 밑에서 살 겁니까? 그러면 압박 제재를 풀자고 군사적으로 치고 올라가자고 할 겁니까? 군사적으로 치고 올라가자고 그러면 미국이 동의를 안 해요. 그건 또 중국과의 전쟁으로 번지기 때문에 사실상 3차 대전이 되는데 그건 대체... 그러니까 핵을 포기하지 않을 북한과 협상하는 거에 의미가 없다는 얘기까지 하는 건 볼턴 말대로 따라가는 건 그런 대로 이해를 하겠는데 그럼 어쩌자는 거냐.

◇ 정관용> 대안이 있느냐.

◆ 정세현> 북을 치자는 것밖에 얘기가 안 되는데 쳐서 해결이 안 된다는 말이죠. 말하자면 자가당착적인 지금 얘기를 하는 겁니다.

◇ 정관용> 그렇죠. 볼턴 회고록 얘기는 그만하고요. 우리 장관님 회고록 얘기 좀.

◆ 정세현> 그렇죠.

◇ 정관용> 한 문제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이게 2018년부터 준비하신 책이라고요?

◆ 정세현> 18년, 아니 19년.

◇ 정관용> 작년에? 작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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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사진=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유튜브 라이브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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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세현> 19년. 창비에서, 다른 데서도 몇 군데서 회고록을 한번 내자고 했는데 제가 이제 에이 뭐, 내가 좀 나이도 있고 활동 중에 있는데 무슨 회고록이냐 하는 식으로 거절했었는데 창비에서 아주 진지하게 얘기를 하길래 한번 생각해 보자 했더니 바로 그냥 덤비더군요. 그런데 이제 내가 타자 칠 실력이 안 되니까 독수리 타자기 때문에.

◇ 정관용> 대담하는 형식으로.

◆ 정세현> 대담하는 식으로 하자고 했더니 프레시안의 박인규 대표가 저하고 정세토크를 2008년부터 지금 해 왔죠, 2주에 한 번씩. 그래서 그 사람을 대담조로 해서 쭉 얘기를 하고 그걸 녹취록을 풀어서 제가 손을 보고 해서 한 열댓 번 했죠. 그게 분량으로는 그대로 놔두니까 한 1400페이지. 그걸 반으로 줄인 겁니다, 그거. 그런데 부제에 이렇게 돼 있어요. 북한과 마주한 40년이라는 부제가 책 밑에 붙어 있습니다. 제가 사실은 북한을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부터입니다. 그리고 통일론에 들어간 것은 77년이고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북한 공부를 했는데 그러니까 그때부터 시작하면 지금까지 북한을 공부하고 북한과 일선에서 마주친 부대낀 세월을 전부 합치면 45년이에요. 그런데 그걸 또 그냥 45년을 반올림해서 50년이라고 하자니 좀 과장인 것 같고 깎아서 40년이라고 했는데. 40년 동안 자료로 본 북한 그리고 남북회담 일선에서 그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알게 된 북한. 그리고 70년대 북한, 80년대 북한, 90년대 북한에 대해서 한 얘기를 쭉 했습니다. 진짜 회고론적으로. 저는 볼턴처럼 어떤 자기의 편견이라고 할까 이런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실 자체를 왜곡해 가면서 스토리를 만드는 식은 아닙니다. 저는 있는 대로. 그런데 몇 사람이...

◇ 정관용> 사십몇 년 북한하고 쭉 그런 일들을 해 오신 과정에서 제일 좀 기억에 남는 장면이랄까? 뭐를 떠올리세요?

◆ 정세현> 글쎄요. 회담하는 그 협상에서 직접 협상한 것은 아니지만 40년 동안 북한을 상대하는 과정에서 제일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94년 7월 25일부터 27일까지 김영삼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이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했다가 그것이.

◇ 정관용>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사망하는 바람에.

◆ 정세현> 그래서 판이 깨진 그 사건. 그때 저는 통일비서관으로 김영삼 대통령의 통일비서관으로 일을 하면서 회담을 준비를 했었는데. 그 회담이 원래 계획대로, 일정대로 성사가 됐더라면 우리가 경제지원을 해 주고 북한이 군사적인 대남 적대행위를 원천적으로 하지 않는 틀을 짜는 거였었습니다.

◇ 정관용> 그렇죠, 그렇죠.

◆ 정세현> 김영삼 대통령 그렇게 공부를 시켜드렸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그래, 뭐 돈 좀 안 되겠나 하는 반응도 보였었고 그런데 그렇게 됐으면 그때부터 남북 간의 경제협력과 군사긴장완화 그게 이제 대표적인 사례는 개성공단으로 드러났지만 그런 것이 일찍 시작될 수 있었어요.

◇ 정관용> 그랬다면 북핵 문제도 여기까지 안 왔을 것 같고.

◆ 정세현> 그렇죠. 그리고 김영삼 대통령이 그렇게 틀을 짜놓고 김대중 대통령이 그걸 이어받아서 햇볕정책을 계속하고 노무현 대통령이 또 그걸 이어 받았더라면 한 13~14년 시간 안에 남북 관계가 현저하게 심화 발전되면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전에 동서독 관계쯤은 됐을 겁니다.

◇ 정관용> 그렇군요.

◆ 정세현> 그 기회를 놓친 것이 아까워요.

◇ 정관용> 김일성 전 주석이 정상회담 스트레스 때문에 사망한 걸까요?

◆ 정세현> 그건 맞아요.

◇ 정관용> 그런 게 있죠, 분명히?

◆ 정세현> 왜냐하면 나중에 우리가 확인했고 또 사후에 나온 김일성 전집을 마지막 권을 보니까 남쪽에서 여러 가지 예를 들면 남쪽에서 중국, 소련하고 수교를 하더니 소위 철도를, 남북 철도를 연결해서 소련, 중국으로 가고 싶다고 그러는데 그걸 연결을 하자고 그러는데 내가 지금 계산을 시켜보니까 가만히 앉아서 1년에 15억 달러씩 들어온다. 그걸 내가 마다할 이유가 없다는 얘기도 하고 그다음에 묘향산 특각에서. 그 사람들 특각이라고 그럽니다만 거기서 이제 대책회의를 했어요. 간부들 데려다놓고 정상회담을 앞두고. 그런데 이제 남쪽 대통령이 틀림없이 경제 협력이라는 보따리를 들고 올 것을 예견했습니다.

◇ 정관용> 당연하죠.

◆ 정세현> 북쪽에서도. 자기네들은 경제가 내리막길이기 때문에 뭔가 좀 받아내야 되고 그런 상황에서 이게 제대로 좀 받아내려면 소위 식량 사정이라든지 공업에 있어서 부족한 원자재라든지 이런 것을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 정관용> 그렇죠.

◆ 정세현> 그런데 그동안 보고서에 올라온 것을 보면 모자란 것이 없는데 막상 이제 대책을 세우려고 하다 보니까 간부들이 그때서야 사실은 그게 아니고 조금 제가 과장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매번 그게 나오니까.

◇ 정관용> 그게 김일성 전집 마지막에 나와요?

◆ 정세현> 터지죠. 결국은 원래 가지고 있던 지병이 심혈관 계통. 혹 때문은 아니고 심혈관 계통 때문으로 결국은 이제 갑자기.

◇ 정관용> 가장 아쉬운 순간 그 순간이 지금 제일 먼저 떠오르시는군요.

◆ 정세현> 그때 저는 그렇게 끝나는 걸 보고 이 회담이 성사됐더라면 김영삼 정부 중반부터 남북 경제협력과 군사긴장완화가 틀이 짜이고 그렇게 되면 교류협력이 그야말로 일상화되고 그러면 그 이후에 평화가 앉을 수 있는데 우리 민족의 운명이 여기까지인가 하고 한탄을 했었죠.

◇ 정관용> 또 사실 사망 이후에는 조문 파동 등등 거치면서 김영삼 정부가 오히려 대북 강경으로 확 되돌아버리는 바람에 아무것도 진전이 안 됐었잖아요.

◆ 정세현> 그렇죠. 그런데 이제 95년에 조문 파동이 한참 94년을 흔들었고 94년 초까지도 조문 파동이 남북 관계를 막고 있었는데 95년 여름이 되면서 북한이 UN에다가 식량지원을 요청을 했어요. 그 소식을 듣고 김영삼 대통령이 맨 먼저 식량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15만 톤을. 그 15만 톤을 우리가 먼저 줬죠. 그랬더니 이제 15만 톤을 주는 과정에서 또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원래 인공기를 안 달고 들어가기로 했는데 북쪽의 군인들이 그걸 모르고 강제로 우리 선장한테 총부리를 겨누고 인공기를 달라고 해서 이른바 청진항 인공기 계양 사건인데. 그것 때문에 이제 당시 조선일보에서 퍼주고 뺨맞기라는 사설을 쓰고 그러면서 대북지원에 대한 소위 비판이 이르고 그러면서 애를 먹었지만 그래도 그때 이제 그 이후에 후속 회담을 또 베이징에서 열었어요. 저는 그 회담에 또 대표로 갔었습니다만. 그때 만나본 북한 사람들도 그렇고 그 쌀이 간 이후에, 쌀이 가는 동안에 북쪽 사람들이 했다는 말들이 들려오는데 이게 남조선에서 쌀이 다 오는구나. 이거 뭐 그동안에는 남쪽은 우리한테 못된 짓만 하는 줄 알았더니, 조문도 못 가게하고. 이렇게 우리 어려울 때 돕는다는 말인가. 이런 정서가 여론이 돈다는 것은 그건 참.

◇ 정관용> 획기적인 거죠.

◆ 정세현> 굉장히 중요한 일이에요. 그러니까 사람이 도와주는 사람을 상대로 해서는 나쁜 짓을 못 하는 것 아닙니까?

◇ 정관용> 알겠습니다. 90넌대를 다시 좀 잠깐 회고해 보고 있는데 앞으로가 더 중요하니까요. 이번 길을 계기로 남북 간의 새로운 대화의 물꼬가 딱 트이는 그런 상황이 만들어지기를 좀 기대해 보겠습니다. 정세현 전 장관 함께 만났습니다. 고맙습니다.

◆ 정세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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