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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0 (월)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별세]한국 재계 이끈 '거목' 이건희 회장 별세…향년 7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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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근경색으로 쓰러진지 6년5개월 만

1987년 이후 삼성 2대회장

가전·반도체·스마트폰 세계 1위 이끌어

헤럴드경제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만이다.2003년 10월10일 경기도 화성 삼성전자 메모리 연구동 전시관에서 황창규 사장으로부터 차세대 메모리에 관해 설명을 듣는 이건희 회장.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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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원호연 기자]한국 경제 선장을 앞장서 이끌어 온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향년 78세로 서울 일원동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

삼성은 이날 이 회장의 별세 소식을 알리면서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고인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후 6년5개월 간 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 등 치료를 이어왔다. 이후 자가호흡을 하며 재활치료를 받아왔으나 끝내 병상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고인은 선친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별세한 1987년 이후 삼성그룹 2대 회장으로서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이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어릴적부터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다. 이후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명에 따라 일본 유학을 떠났다.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어린시절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에 심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와세다대학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그는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 중이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을 모델로 삼성의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이끌었다.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당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 고(故)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밀려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된 것이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회장에 취임한 뒤 1993년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 회장 취임 이후 1987년 1조원이던 삼성전자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총자산 500조원의 외형을 만들었다.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이 회장은 각종 수사의 대상에 오르기도 했다.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았다. 이후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한 재계·체육계 건의로 단독사면된 이 회장은 2년 뒤 경영일선에 복귀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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