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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이슈 이건희 삼성 회장 별세

[이건희 별세] "車와 전자제품 구분 모호해질 것" 예견하고 뛰어든 삼성자동차... 못 이룬 꿈으로 남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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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자동차, ‘자동차광’ 이건희 회장의 아픈 손가락
IMF 위기에 2000년 프랑스 르노에 매각

삼성을 세계 일류 기업으로 일궈낸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에게 자동차 사업은 못다 이룬 꿈으로 남은 아픈 기억이다. 이건희 회장에게 자동차 사업은 꿈이자 필생의 도전이었지만, 삼성자동차는 삼성이 진출했다가 가장 크게 실패한 사업으로 꼽힌다.

이건희 회장은 1990년대 초부터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자동차사업에 진출하기 위한 준비를 해왔다. 유년시절부터 자동차에 심취해 있던 이 회장은 자동차를 직접 분해하고 조립하는 과정을 되풀이하면서 자동차 ‘마니아’로 거듭났다. 삼성그룹은 1995년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자동차 시장에 출사표를 던졌고, 1998년부터 승용차 'SM5' 판매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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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이 1997년 5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 설비가동식에 참가해 개발 중인 자동차 시제품(KPQ)을 시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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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은 1997년 에세이에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며 자동차 산업에 대한 깊은 애착을 드러냈다.

그러나 결과는 초라했다. 당시 삼성자동차는 차 한 대를 팔 때마다 150만원의 손실을 내는 사업이었다. 여기에 기아차 도산 사태와 IMF 외환위기까지 닥치면서 이 회장은 결국 삼성자동차를 포기하기에 이른다. 삼성자동차는 차량 생산 11개월 만인 1999년 6월 30일 법정관리를 신청했고, 2000년 4월 프랑스 르노에 인수됐다.

◇ "자동차는 전자제품"…23년 전 선견지명

그러나 이건희 회장이 자동차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자동차 사업에 진출한 것은 아니다. 이 회장이 이미 23년 전 전기차 시대의 도래를 예고하고, 자동차를 삼성의 장기 성장계획의 큰 축 중 하나로 봤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 회장은 1995년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제가 자동차를 잘 안다고 자동차사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자동차는 10년 후 20년 후에도 삼성이 먹고 살 사업이라는 판단이었다. 앞으로 5∼6년 동안 10조원을 자동차에 투자해도 이익은 거의 안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자동차사업 발전을 위해 10조원을 기부한다는 자세로 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1997년 출간한 에세이에서는 앞으로 자동차와 전자제품간의 경계가 모호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회장은 에세이에서 "오늘날 자동차는 부품 가격으로 볼 때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전망이다"라고 썼다.

이어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 가면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자동차가 스마트폰과 같은 하나의 전자제품이라는 발상이 보편화된 시점이 2014~2015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20년을 앞서는 선견지명을 보여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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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 부산공장. /르노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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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첫차 ‘SM5’ 선보였지만…11개월 만에 법정관리

삼성은 '죽어가는 부산 경제를 살리자'는 명분 아래 부산 신호공단을 근거지로 1993년 상용차(트럭) 진출을 선언했고, 1995년 3월 삼성자동차를 설립해 승용차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회장은 1996년 11월 부산공장 1차 건설공사 기념식에 참가해 "명차 생산의 첫걸음을 축하합니다"는 휘호를 남기기도 했다.

삼성자동차의 첫 승용차 ‘SM5’는 1998년 2월 생산됐다. 닛산의 맥시마 구형모델을 거의 그대로 들여온 모델이었다. 총 4조3000억원을 투입해 만들어진 SM5는 품질과 성능 면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 회장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 때 평소 타던 벤츠 대신 SM5 525V를 타고 갔을 정도로 삼성자동차에 애착을 보였다. 현재 르노삼성을 상징하는 '태풍의 눈' 엠블럼은 삼성자동차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이 회장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는 IMF 외환위기로 얼어붙은 내수의 벽을 넘지 못했다. 삼성은 첫 승용차 생산 11개월 만에 자동차 사업에서 철수하게 된다. 불과 5만대를 생산한 시점이었다. 1999년 삼성자동차는 4조3000억원의 막대한 부채를 안은 채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당시 이 회장은 삼성생명 보유주식 400만주(지분율 21.4%)를 채권단에 증여해 부채의 상당 부분을 해결했다. 삼성자동차는 2000년 르노에 매각된 뒤 르노삼성자동차가 됐다.

◇삼성, 전기차 배터리·전장 사업으로 자동차 관련 사업 이어가

이건희 회장은 21년 전 자동차 사업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결국 손을 뗐지만,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전기차 배터리와 전장부품 사업에 진출해 자동차 관련 사업을 삼성그룹 미래 성장동력의 한 축으로 키우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은 지난 2016년 미국 전장 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하면서 전장사업에서 새 성장동력을 확보했다.

삼성SDI는 전기차 배터리(2차전지)를 생산하는 대표 기업으로, 다가올 전기차 시대를 맞이할 채비를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삼성SDI(006400)는 올해 1~8월 세계에서 판매된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순위에서 4위를 기록했다.

이재은 기자(jaeeunle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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