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박길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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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일 오후 11시 정부와 통신 3사가 손잡고 5세대 이동통신(5G) 상용화를 이뤄낸 지 2년이 흘렀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보다 한발 앞서기 위해 간밤의 소동까지 치른 한국은 ‘세계 최초’ 타이틀은 얻었지만, 소비자 신뢰는 잃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자들은 ‘20배 빠르다’던 통신사와 정부의 공언에 속아 비싼 스마트폰, 비싼 요금제를 쓰면서도 불편을 감수하고 있다며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5G 상용화로 당장 열릴 것 같았던 스마트팩토리, 자율주행, 드론, 원격의료 같은 산업도 실제 체감하기까진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5G 상용화 2년의 현실은 생각보다 냉혹했다.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조선비즈는 통신전문가로 꼽히는 신민수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통신서비스 제도개선자문위원회 위원장), 박동주 5G 포럼 생태계전략위원장(에릭슨엘지 테크니컬 디렉터), 김진욱 변호사(법무법인 주원, 5G 집단소송 담당)와 함께 앞으로 한국에서 5G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한국이 ‘준비 안 된 세계 최초’였다는 점을 지적했다. 소비자에게는 통신요금 인하가, 산업적으로는 정부의 구체적인 5G 활용 계획이 각각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두 돌 맞은 5G, 뭐가 문제인가.
신민수 "5G를 처음 국민에게 인식시키는 과정에서 눈높이에 맞지 않는 설명을 한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5G로 가는 것을 마치 3세대 이동통신(3G)에서 4세대 이동통신(LTE)으로 넘어가는 수준에 빗댄 것이다. 3G에서 LTE로 넘어갈 때는 스마트폰이란 새로운 기기가 등장했다. 굉장히 큰 변화였다. LTE에서 5G로 넘어가는 것은 그 정도는 아니다. 특히 (통신3사와 정부가) 네트워크 속도에 엄청난 변화(LTE보다 20배 빠르고 지연속도는 10분의 1로 줄어든다)가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이를 체감하는 소비자는 드물었다."
김진욱 "통신사가 LTE 대비 고가의 스마트폰, 요금제를 팔면서 그에 상응하는 5G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서비스가 부족한 이유도 소비자들에게 충분히 고지되지 않았다. 소비자들은 뒤늦게 통신사 기지국 구축 등 인프라 미비가 문제 원인이었다는 점을 인지했다. 일부 소비자들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나 방송통신위원회 등 관계부처를 통해 민원을 제기하고 분쟁조정 신청을 했으나 강제력이 없다 보니 통신 3사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도 이런 상황을 뻔히 알지만 뒷짐 지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다."
―통신사는 절대적인 5G 기지국 수가 3G나 LTE 초기와 비교해 적지 않다고 주장하는데.
김진욱 "인프라 구축은 서비스 제공에 앞선 선결과제다. 인프라가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통신사들은 5G 요금제를 내놓고 서비스를 출시했다. 비유하자면, 집을 짓고 있는데 세입자를 받아 월세를 내라고 하는 꼴이다. ‘집 열심히 짓고 있으니 불편 감수해달라,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월세는 계속 내 달라’라고 하는 것이다. 기지국이 LTE 수준으로 충분히 구축되기 전까지는 통신사가 대대적으로 5G 요금을 감면해야 한다. 그동안 지급했던 요금에 대해서도 기지국 구축률 등 기준을 두고 환수 내지는 환급해주는 방향으로 정책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애초 정부는 5G를 상용화하면서 전략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장밋빛 전망을 내놨지만, 이 역시 아직 실체가 없는 것 같다.
신민수 "5G에서 ‘기술 결정론’이 우세했던 것이 패착이었다. 기술이 들어오면 알아서 사회가 변화하고 수요가 생길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가 기술을 선택해줘야 한다(사회 결정론). LTE와 다를 바 없는 속도에, 5G에서만 즐길 수 있는 새로운 콘텐츠가 없으니 소비자들의 니즈는 생기지 않는다. 기업용(B2B)으로 쓸 수 있는 5G 네트워크 슬라이싱(Network Slicing, 네트워크를 다수의 가상 네트워크로 쪼개 기업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5G의 핵심 기술) 표준화 작업도 너무 늦게 시작됐다. 이에 대한 표준이 빨리 완성돼야 B2B, 나아가 5G의 최종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기업·소비자를 동시에 공략하는 B2B2C가 가능해질 것이다. 정부는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 때문에 5G를 어떻게 도입, 활용해 수익을 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 없이 일단 소비자용으로 5G를 상용화했다. 사업자가 투자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정부 정책도 작동하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구체적인 활용 시나리오를 짜야 한다."
박동주 "독일에 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첨단 생산기지인 ‘팩토리56’에서는 5G가 실제 적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S클래스·전기차가 생산되는데, 5G는 고객 니즈에 따라 유연하게 공장을 운영할 수 있게 해준다. 어떤 공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불량이 많이 발생하는지 등의 데이터도 모두 5G 무선으로 취합, 분석된다. 최고의 생산성을 낼 수 있는 직원과 공장 자동화 조합을 가능하게 한다. 한국에서도 실제 제품을 생산 중인 공장에 5G가 적용됐다. 상용화도 적극적으로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5G는 자율주행의 핵심 인프라로도 꼽히는데.
박동주 "자율주행차에서는 대용량 데이터가 초고속·초저지연으로 처리돼야 한다. 5G가 적극적으로 도입돼야 하는 이유다. 이를 적용한 게 ‘3차원(3D) HD맵(고정밀지도)’이다. 테슬라 자율주행차가 쓰러져 있는 트럭을 인식하지 못하고 들이받는 사고가 있었다. 테슬라는 레이더·라이다 같은 센서에만 의존하는데, 당시 주행 중인 차 각도에서 센서가 트럭을 인식하지 못했다. 테슬라는 트럭 앞유리에 비쳐있는 하늘을 보고, 하늘이라고 생각하고 들이받았다. 3D HD맵은 내 차가 인지하지 못하는 취약한 부분을 옆 차에서 5G로 받은 데이터를 통해 보완하는 것이다. 주변 차들이 각각 센서로 인지한 주변 정보를 클라우드로 올리고 이를 취합해 실시간으로 지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내차 각도에서 보지 못하는 돌맹이, 무단횡단하는 사람까지 다 나타난다.
다만, 이를 실제 적용해 상용화하기까지는 몇 가지 단계가 필요하다. 우선 각 차가 클라우드에 올리는 데이터 형식을 표준화해야 한다. 데이터를 각 차가 1차 처리한 후 클라우드에 올릴지, 일단 클라우드에서 다 받아 지도를 구성할지도 정해야 한다. 후자의 경우 데이터 양이 몇 테라바이트쯤 될 것이다. 또 HD맵은 전체 지역에 대한 정적인 지도 위에 동적인 정보를 쌓는 구조로 형성되는데 이 구조에 대해서도 표준이 필요한 상황이다. 자율주행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에서는 5G가 적용 안 된 지역이 많기 때문에 센서 중심으로 자율주행을 발전시켜나가고 있다. 한국은 자율주행 센서 등에서는 밀리지만, 5G 도움을 받아 얼마든지 추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표준화를 서둘러야 향후 진행될 국제 표준도 이끌 수 있을 것이다."
신민수 "준비가 잘 안 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100점 만점에 80점도 안 될 것이다. 미국, 독일, 일본, 심지어 중국과 비교해서도 뒤처지고 있다. 한국이 교통 인프라에서는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소프트웨어, 인적자원까지 합친다면 수준이 떨어진다. 원격 관제를 위한 법적 문제도 많다. 법 체계상 사고 책임은 누가 질 것인지, 자율주행차를 당장 일반 자동차로 볼 것인지 등도 문제다. 진전 사항이 눈에 띄게 보이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사업 추진하기가 어렵다."
―5G 활성화가 시급할 것 같다. 통신사가 손대지 않고 있는 초고주파 대역(28㎓) 주파수를 기업 등 다른 민간사업자에 배정하는 것을 골자로 한 ‘5G 특화망’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박동주 "독일·일본 등에서는 5G 특화망으로 기업이 공장을 구축하는 사례가 하나둘 생기고 있다. 이는 국내 산업 활성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공공망에서도 기대가 크다. 이를테면 강원도 산간오지의 교통 취약 지역에 버스를 운영하는 것을 생각해보라. 엄청난 비용이 들고 있다. 통신사가 여기에 5G망을 까는 것은 수지가 맞지 않아 어렵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가 주파수를 할당받아 5G 특화망을 구축한다면, 버스를 자율주행차로 대체해 공공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민수 "통신사가 깔고 있는 5G가 전국망이 되면, 추후 통신요금은 떨어질 것이다. 이에 따른 사회후생과 특화망 사업자가 자가망을 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예산효율의 합이 얼마만큼 변할지 면밀히 살펴야 한다. 사업자들은 단순히 주파수, 구축 비용만 드는 게 아니라 유지보수, 운영, 업그레이드 등에 비용이 들어간다. 이를 고려했을 때도 경제적인지 점검해야 한다. 통신사로선 특화망을 깐 지역에서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비용을 소비자 등 다른 쪽으로 전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전체적인 사회후생은 떨어질 수 있다. 어떻게 균형점을 맞출지가 관건이다. 한국처럼 작은 나라에서 5G 특화망이 필요한지도 고민해봐야 한다."
장우정 기자(woo@chosunbiz.com);이경탁 기자(kt87@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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