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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8 (월)

수주랠리에도 ‘어닝쇼크’ 조선업계… 공사손실충당금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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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부터 이어진 수주랠리에 올해 수주 목표를 대부분 달성한 조선업계가 2분기 ‘어닝 쇼크’(전망치보다 부진한 실적)를 기록했다. 조선업계는 후판(두께 6㎜ 이상의 철판) 등 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원가 손실을 공사손실충당금 명목으로 회계에 반영하면서 나타난 결과라고 밝혔다. 내년 상반기에 후판 가격이 하락할 경우 충당금이 실적에 환입돼 영업이익이 대폭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국조선해양(009540)은 올해 2분기 897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929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작년 2분기와 비교하면 적자로 전환했다. 같은 기간 삼성중공업(010140)도 4379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달 초 실적 발표를 앞둔 대우조선해양(042660) 역시 수천억원대 영업손실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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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삼호중공업이 세계 최대로 건조한 LNG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 /한국조선해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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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계는 공사손실충당금을 회계 장부에 반영하면서 실적 부진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손실충당금이란 미래에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손실을 미리 잡아놓은 것을 말한다. 공사손실충당금을 회계에 반영하면 잠재 부실을 일시에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 목욕을 통해 더러운 것을 씻어낸다는 의미에서 ‘빅 배스(Big bath)’라고도 불린다. 경영진 교체 과정에서 새로 부임한 최고경영자(CEO)가 전임자 재임 기간에 누적됐던 손실을 한꺼번에 제거할 때도 이러한 회계 기법을 활용한다.

조선업계는 과거에도 대규모 손실이 예상될 때마다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했다. 2016년 4분기 당시 현대중공업과 현대삼호중공업은 수주 공사 환손실에 따라 각각 1020억원, 180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설정했다. 삼성중공업도 2014년 1분기 이치스(Ichyth)와 에지나(Egina) 해양플랜트 프로젝트 2곳에서 후속 공정 사양 변경 및 생산 비용 증가로 5000억원을 공사손실충당금을 실적에 반영했다. 과거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 사건 때처럼 고의로 손실을 숨기면서 충당금을 쌓지 않는 경우도 있다.

조선업계가 올해 2분기 수천억원에 달하는 공사손실충당금을 회계에 반영한 이유는 후판 가격이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후판 가격은 선박 건조 비용의 20%를 차지해 조선사의 수익과 직결된다. 매년 반기마다 조선사와 철강사들이 두 차례에 걸쳐 후판 가격을 두고 치열한 협상을 벌이는 이유다.

조선업계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후판 가격은 직전 반기 대비 톤(t)당 10만원 오른 70만~80만원이었다. 문제는 철강사들이 올해 하반기에 100만~110만원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대표 철강사 포스코(POSCO(005490))는 t당 115만원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증권가에선 후판 가격이 철강업계 주장대로 인상될 경우 조선 3사가 부담하게 될 비용이 1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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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제철 당진 일관제철소 '조선용 후판'이 생산되고 있다. /조선DB



조선업계는 하반기 후판 가격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후판 수입 물량이 마땅치 않은 만큼 철강사들이 가격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조선해양은 후판 가격을 최고 115만원선으로 가정하고 8960억원의 공사손실충당금을 2분기 실적에 선반영했다. 삼성중공업도 3720억원을 공사손실충당금으로 실적에 반영했다. 대우조선해양 역시 3000억원 이상을 올해 2분기 회계에 공사손실충당금으로 반영할 전망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리스크 해소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면서 “특히 원가 인상분을 선제적으로 회계에 반영하면 향후 선박 발주처와의 가격 협상 과정에서도 이를 활용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선업계가 미래에 대한 가정을 바탕으로 회계에 손실을 선반영한 만큼, 나중에 예상보다 손실이 적을 경우 그 차액만큼 이익은 커지게 된다. 과거 기아(000270)는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패소한 직후 2017년 3분기에 9777억원의 충당금을 쌓았지만, 이후 노사 합의로 분쟁을 해소하며 이중 2800억원을 2019년 1분기 영업이익에 반영한 바 있다.

한국조선해양 관계자는 “이번 충당금은 후판 가격 인상 전망을 보수적으로 반영한 것인 만큼, 향후 후판 가격이 내려가면 충당금을 다시 영업이익으로 환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영 기자(youn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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