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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의 심플라이프]황당한 건강보험료 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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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11월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보험료 299,980원! 보험료 산정 안내문에는 소득 전월 281점, 당월 923점이 적혀 있고, 재산세 과표금액 (386점에서 412점으로) 증가를 변동 사유로 적어놓았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 소득이 줄었는데.... 책도 덜 팔리고, 강의도 거의 못하고, 원고료도 얼마 못 받았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인 나는 지난 십여년간 한 달에 10만~15만원의 건강보험료를 냈다. 그것도 내 수준엔 때로 부담스러웠다. 작가라는 직업 특성상 수입이 일정치 않아 수입이 1000만원 안 되는 해도 있었다.

1인 가구에, 3억 미만의 집 하나가 재산의 전부인 내가, 자동차도 없고 월급 나올 데도 없는 1인 출판사 대표가, 사업소득과 원고료 강연료를 합해 지난해 소득이 2000만원 안팎인 내가 건강보험료 30만원? 말도 안 돼! 아픈 곳도 없어, 치과에서 스케일링을 받거나 잇몸치료 빼고는 딱히 병원비를 낼 일도 없는데 건강보험료를 매달 30만원씩 내야 한다는 게 억울했다.

차라리 건강보험을 탈퇴해야겠다, 인터넷 검색창에 ‘건강보험 탈퇴’를 치고 밑에 올라온 글들을 읽어 봤다. 건강보험은 탈퇴가 불가하다. 대한민국 국민 누구나 납부해야 하는, 일종의 세금 같은 것이다. 탈퇴하려면 외국으로 이민 가는 방법밖에 없다.

‘건강보험공단에 어떻게 된 일인지 따져봐야지.’ 오래 기다려 통화가 됐다. “작년도 신고소득이 늘었어요. 집 파셨죠? 그거 아직 반영 안 돼 고지서 나간 건데, 다음달부터는 좀 더 오를 겁니다.” 아이고, 이건 혹을 떼려다 혹을 붙인 꼴이 되었네. 다음달부터 31만 몇 천원을 내야 한다는 말에 기가 막히지도 않았다. “소득세 신고가 잘못 됐을 수도 있으니 세무서에 가서 확인해보라”는 말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최근에 경기도 고양시에서 서울로 이사했지만 내가 구입한 서울의 14평 아파트값은 (내가 매도한) 고양시의 22평 아파트보다 몇 천만원 싸다. ‘부동산 재산이 줄었는데 왜 더 내야 하는데?’

관할 세무서에 갔다. 내 차례가 돼 건강보험료 고지서를 손에 들고 짧게 요점만 말했다. 매출계산서는 얼마를 발행했지만 실제 소득은 적다. 지난해 인터파크 송인서적이 부도나기 전에 발행한 계산서 중에 몇 백만원은 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바쁜 세무서 직원에게 시시콜콜 다 말하면 안 된다는 정도의 상식은 내게도 있다.

“수입과 소득은 다르다. 신고가 그렇게 돼서 어쩔 수 없다. 신고소득이 늘어 보험료가 높게 나온 것이다. 시정하려면 신고한 세무사에게 연락해라. 수정하려면 증빙자료가 필요하다”는 말을 하고 세무서 직원이 프린터로 뽑아준 서류들의 부피가 엄청났다.

뭔 말인지 모르겠는 제목의 서류들을 쓱쓱 넘기다 ‘총수입금액 및 필요경비 명세서’를 봤다. 매출액 3505만7000원, 당기매입액 1372만5057원, 필요경비의 일반관리비 항목은 ‘0’의 행진. 급료 0, 제세공과금 0, 접대비 0, 소모품비 0, 광고선전비 0, 여비교통비 0.... 지급수수료 700여만원을 빼고 모두 ‘0’이 찍히다니. 뭔가 잘못됐다. 신간을 출간하며 홍보비도 조금 나갔고 접대비·교통비도 나갔는데 세무사가 몰라서 신고 안 했구나. 의사소통에 실패한 내 잘못이지, 뭐.

페이스북에 ‘건강보험료 30만원 낸다’는 글을 올리고 나는 덧붙였다. ‘더는 제게 가난한 시인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시인·이미출판 대표

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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