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조은별기자]7일 한국 영화계의 큰 별이 졌다. 1980~90년대 한국 영화계를 풍미한 배우 강수연이 숨을 거뒀다. 향년 55세.
고인은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자택에서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급대원에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평소 지병을 앓던 그는 이날 오전 한차례 두통을 호소하며 119에 신고했지만 출동한 구급대원을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1969년 4세의 나이에 당시 동양방송(TBC) 전속 아역배우로활동을 시작했다. 동명여고 재학 중이던 1983년, 배우 손창민과 함께 드라마 ‘고교생 일기’에 출연, 당대 최고의 청춘스타로 떠올랐다.
하이틴 스타 이미지가 강해 성인이 된 후 이미지 변신을 꾀했다. 1987년 개봉한 임권태 감독의 영화 ‘씨받이’에서 양반가 대를 잇기 위한 씨받이 옥녀로 과감한 연기를 선보였다. 철 없는 소녀에서 사랑에 빠진 씨받이가 된 옥녀 역을 연기한 그는 이 영화로 당시 세계 3대영화제 중 하나인 이탈리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첫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이어 2년 뒤인 1989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 ‘아제아제바라아제’에서 파계한 비구니 순녀 연기로 모스크바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당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영화 속 비구니 연기를 위해 삭발을 강행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강수연의 수상은 당시 변방에 머물던 한국영화가 전 세계에 우수성을 떨친 계기가 됐다.
고인은 작품성 뿐만 아니라 흥행성 역시 최고의 배우였다. 1987년 배우 박중훈과 출연한 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는 그해 한국 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했고 같은 해 개봉한 영화 ‘우리는 지금 제네바로 간다’ 역시 당시로는 많은 관객인 12만 명을 동원했다. 영화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1989), ‘경마장 가는길’, ‘베를린 리포트’(1991), ‘그대 안의 블루’(1992),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1995) 등 80~90년대 인기 영화에는 늘 고인의 흔적이 새겨져 있었다.
당시 강수연의 높은 인기에 힘입어 여배우로서는 드물게 억대 개런티를 받기도 했다. 1992년 영화 ‘그대안의 블루’ 출연료가 2억원, 상업광고 출연료는 4억원에 달했다.
한동안 영화에만 출연했던 고인은 2001년~2002년 방송된 SBS 드라마 ‘여인천하’의 정난정 역으로 브라운관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다. ‘여인천하’는 최고 시청률 35%를 기록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고 강수연은 이 작품으로 SBS연기대상을 수상했다.
이후 문화행정인으로 변신, 2015년부터 2017년까지 부산국제영화제 공동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며 한국영화계 발전을 위해 앞장서기도 했다.
최근 활동이 뜸했던 고인은 올해 연상호 감독이 연출한 넷플릭스 영화 ‘정이’ 공개를 앞두고 숨을 거둬 아쉬움을 더하고 있다. ‘정이’는 원조 한류스타 강수연의 진가를 전세계에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결국 유작으로 남게 됐다.
한국 영화 성장사 곳곳에 배인 고인의 흔적이 너무나 컸기에 영화계는 고인의 너무 이른 죽음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현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을 위원장으로 영화인장 장례위원회를 꾸리기로 했다.
고인의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지하 2층 17호실에 차려졌다. 조문은 8일부터 받으며, 발인은 11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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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스포츠서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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