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학교폭력·지각·결석 등 증가
환자 폭증…예약해도 내년에나 진료
국영수 보다 정서 치료, 관계맺기 우선
후유중 겪는 아이들 세심한 관찰 필요
작은 학교 재난에 단절없이 등교 가능
상담센터·프로그램·클리닉 운영으로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돌봄 챙겨야
“코로나 대유행 시기, 학교에 오지 말라 했을 때 아이들의 진짜 걱정은 친구를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친구는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제2의 가족이죠. 친구 집단이 없다면 청소년기 건강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연결됐다고 느낄 조직을 주변에 만들어줘야 합니다.” 박해묵 기자/mo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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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깜짝 놀랐어요. 신규 환자가 지금 예약을 하면 내년에나 진료를 받을 수 있대요. 저 뿐 만 아니라 전국의 모든 정신과가 전부 그런 상태에요.”
서울시 코비드19 심리지원단장이자 청소년자살예방센터장을 맡고 있는 김현수(57) 명지병원 정신과 전문의는 한마디로 “청소년 정신 건강은 응급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청소년의 자살, 자살 시도, 자해 모두 늘었다. 학교 폭력, 지각·결석 증가 등 청소년과 학교가 위험하다.
이는 최근 교육부가 전수조사한 학교 폭력 실태에도 나타난다. 9년 만에 학교 폭력이 최고치를 기록했다. 5만3800명이 “학교 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는데 2013년 이후 최고치다.
정상적인 등교가 이뤄지면서 폭력이 크게 증가한 것인데, 코로나가 직·간접적 원인이라는 시각이 있다. 초유의 장기간 등교 금지로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하는 활동을 못하면서 관계 맺기나 사회성 발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다.
그 후유증이 이제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오랫동안 청소년의 상처와 아픔을 들여다보고 치료해온 김현수 전문의로부터 코로나가 청소년에게 미친 영향과 회복을 위한 치유 관리를 사회가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들어봤다.
▲지금 진료를 받으려면 동네 의원도 두세 달 기다려야 한다는데 그렇게 방치해도 되는가? 골든 타임을 놓치는 건 아닌가.
-우리는 현재 코비드 사후 관리 로드맵이 전혀 없어요. 공공적 차원에서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하고, 학교가 우선 담당해야 합니다. 학교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하니까 정신과 센터로 오는 거잖아요. 본인 스스로 진료를 받겠다거나 부모가 아이의 치료가 필요하다며 데려오는 환자가 엄청 늘었어요.
청소년 자살과 자해가 코로나 기간 늘었다는 것 만 봐도 알 수 있어요. 2020년 자살과 자살 시도가 국민 전체적으로는 감소했는데 청소년은 확실히 늘었어요. 2021년 자살 추정치도 늘었고요. 청소년 정신건강이 아주 힘든 상태인 거죠.
이런데 사후 관리와 치유 활동이 이뤄지지 않고 결핍된 경험을 채워주지도 않으면 우리는 이 세대를 놓치게 됩니다.
청소년 롱코비드의 골든 타임은 사실 이런 논의가 시작되기 전에 진행됐어야 하지만, 정부가 지금이라도 시작한다면 많은 새로운 정보와 우리만의 자료를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정부가 그런 근본적이고 중장기적인 돌봄의 관점이 있느냐 하는 것이죠.
▲미국, 유럽에선 청소년 코로나 후유증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영국과 미국의 경우,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되게끔 학교 단위로 이뤄지고 있어요. 롱코비드 클리닉을 세우고, 정서적 어려움을 갖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에서 집단적으로 친구 맺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청소년 상담센터 등을 활용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들을 사회 전체가 하고 있죠.
영국은 롱코비드 어린이 클리닉이 전국에 12개 이상 설립돼 있고, 후유증이 의심되는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지속적으로 추적 관찰합니다.
미국도 바이든 대통령이 롱코비드 어린이 청소년을 위해 수백억대 예산을 편성했어요. 후유증을 겪는 아이들을 등록하고 몸과 마음에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 지속적으로 살펴보자는 거죠.
코로나를 앓고 지나갔지만 어떤 피해를 남기는지에 대한 관찰은 공공적 가치가 있는 정보이기 때문에 사후 관리가 중요합니다.
한국은 이제 감염자가 많은 나라로 바뀌었죠. 인구단위별 가장 많이 감염된 나이가 8~11세에요. 초등학생 접종률이 낮은 게 원인인데 사망한 아이들도 적지 않아요. 이들이 잘 자라는지 살펴보는 게 중요하죠.
▲롱코비드의 어른과 청소년의 차이는 무엇인가.
-차이가 분명해요. 어른은 인지 장애와 호흡기 장애가 많죠. 청소년은 두통 등 다양한 통증을 호소하고 의욕이 떨어지는 후유증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게을러졌다면, 나태해진 게 아니라 코로나로 인한 후유증을 겪고 있다고 봐야죠. 허무하고 비관적인 생각도 들곤 하는데, 이런 상태인 아이들에게 “그동안 많이 놀았으니 공부 좀 하지”라고 말하면 ‘꼰대다’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라 절망을 느낀다고 해요. 우리 사회가 아동·청소년들에게 공감할 능력이 없는 거죠.
청소년은 사회적 활력인데 청소년이 아프면 좋은 어른으로 성장할 수 없어서 우리의 가까운 미래가 어려워진다고 봐야죠.
▲코로나가 청소년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구체적인 연구결과가 있는가.
2년 넘게 아이들이 집에서 못나오고 친구를 못 만나고 원격 수업을 진행했잖아요. 2년 반 동안 등교일수가 절반 밖에 안된 상태에요. 그 결과 사회성과 인지 능력에 어떤 변화가 있나, 세밀히 측정해야 하는데, 우리는 불안, 우울 같은 터프한 자료만 있어요.
생애주기별 관찰 같은 게 필요하죠. 코로나 대유행 때 태어난 아기,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의 발달적 차이가 있는지 연구가 돼야 하죠.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는 아이들의 IQ가 어떻게 변하는지, 정서나 언어습득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학부모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어요. 가령 코로나 베이비의 경우 언어습득이 떨어지고 IQ도 10~20 정도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고요. 그런 아이들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고 예전 방식으로 가르치면 갈등이 커질 수 밖에 없죠. 관계· 정서 회복이 먼저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학력 떨어진 것만 너무 강조하고 있어요. 더욱이 재난 때문에 장기간 등교금지는 우리는 처음이에요. 다른 나라는 2,3달 씩 학교에 못 나간 경험이 있거든요. 재난에도 아이들의 사회성이나 정서를 걱정하지 않고 국·영·수 실력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라는 한국 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코로나 대유행 시기, 그래도 학교에 나갔어야 한다고 보는가.
국제적인 가이드라인은 학교에 오는 게 좋다는 거에요. 학교에 가야만 좋은 정보를 듣고 지식도 계속 쌓고 점심을 먹고 친구들과 계속 관계를 유지하는 게 발달적 결손이 줄어든다는 거에요. 집단 감염 계몽도 학교가 잘해요. 출석 일수에 따라 아이들의 건강상태가 다르거든요.
문제는 한국처럼 큰 학교가 다른 나라는 별로 없어요. 우리도 300명 이하, 한 학급 당 15~20명인 데는 2020년 5월 이후 계속 등교 했어요. 작은 학교로 운영했다면 학교 단절이 없었을 겁니다.
충남의 한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코로나 기간 동안 애들끼리 더 친해졌고 좋아졌다고요. 평소 나오지 않던 아버지들도 모임에 나오고 더 잘 지낼 수 있었다는 거에요. 작은 학교가 늘어야 재난에도 강해질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아프다는 신호는 어떻게 나타나고 부모나 교사가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아프다는 것을 잘 표현하는 아이들도 있고, 표현하지 않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표현을 간접적으로 하거나 표현하지 않고 자살을 시도하는 비율이 50%에 육박한다는 연구도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의 변화를 민감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한데요. 아이들의 변화는 말 수가 줄어드는 것, 문단속을 더 자주 하는 것, ‘몰실귀짜’ (몰라, 싫어, 귀찮아, 짜증나)와 같은 우울하고 힘들다는 다른 표현의 횟수가 더 늘어나는 것, 작별 인사나 정리의 말을 자주 남기는 것, 평상시 하지 않는 말과 분위기가 아이를 감쌀 때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게 들어주는 대화입니다. 잔소리나 강력한 요구를 담지 않은 들어주는 대화가 중요해요. 그리고 이해하고 도움을 주겠다는 부모의 태도가 중요하죠. 무엇을 크게 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또 아이들에게는 큰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
김 교수는 최근 ‘코로나가 아이에게 남긴 상처들’(해냄출판사)을 펴냈다. 아동 청소년이 정서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를 이해하려는 논의가 없어서 함께 얘기해보자는 생각에서 책을 냈다고 했다. 문명사적 전환으로 일컬어지는 사건을 겪으면서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공동체, 빅 시스템과 스몰 시스템, 로컬 등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고 특히 국가와 학교, 교사의 역할, 정신 건강 문제 등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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