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봉수 기자] "(수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땐)동료들이 새로 고안한 장난인 줄 알았다." 지난 3일 오후(한국 시간) 스웨덴 출신 고고유전학자 스반테 파보(67)가 202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선정 직후 소감에서 한 말이다. 본인도 놀랄 만큼, 그만큼 '뜻밖의' 수상이었다.
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인 파보는 유전자 분석을 통해 인류의 진화 과정을 밝히는 '고고유전학자(Paleogeneticist)'다. 고대 유물이나 유골 속에 보존된 게놈을 조사하고 이를 통해 과거를 연구하는 분야다. 대중들에게 생소한데다 질병 퇴치 등 이전 생리의학상 수상자들의 연구 업적들과 달리 '실용적'이지 않다.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나 셀(Cell)을 단골로 장식하긴 했어도 노벨상 수상 후보로는 거론된 적이 없었다.
이같은 파보의 수상에 대해선 결정 주체인 스웨덴 카롤린스카야 연구소 심사위원들이 올해도 '완고한' 선택을 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파보는 엄청난 유명세를 탄 데다 사회적 파급효과도 엄청나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코로나19 백신(mRNA) 개발자들을 제쳤다. '실용성'과 이슈화 여부 보다는 '근본 원리 규명', 새 분야 개척 등을 중시해 온 기존 수상자 결정 원칙이 그대로 고수된 것이다. 노벨상은 특히 응용 연구가 아닌 기초 연구를 중요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에도 인간의 촉각ㆍ통각 원리를 분자 수준에서 규명한 데이비드 줄리어스 미 캘리포니아대 교수 등을 수상자로 선정했다. 파보의 수상은 고고유전학자로서는 노벨상 역사상 처음이다. 스웨덴 출신이라 노벨상 주관 기관들의 팔이 안으로 굽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간의 업적을 감안할 때 '받을 만 하다'는 평이 우세하다.
파보는 1980년대 대학원 시절 당시로선 생소했던 유전자 분석 기술을 배운 후 오래된 무덤이나 동굴에서 발견된 뼈의 DNA를 분석해 현대 인류의 게놈과 비교, 인류 진화 과정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뒤바꾼 유전학자로 이름을 떨쳐 왔다. 이 과정에서 오래된 DNA 샘플이 박테리아나 이물질, 발굴자 등에 의해 오염된 것을 분리해내는 신기술들을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2010년 논문에서 네안데르탈인과 현생 인류간 이종 교배가 이뤄졌으며, 특히 유럽인ㆍ동아시아인은 유전자의 1~4%가 네안데르탈인에서 유래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2008년 시베리아 남부 한 동굴에서 발견된 4만년전 고대인의 손가락 뼈가 전혀 새로운 고대 종족인 데니소바인이라는 사실을 밝혀 내기도 했다.
파보의 이같은 연구 결과를 토대로 과학자들은 비만, 당뇨, 심혈관 질환 등 현대 인류가 갖고 있는 만성 질환들이 상당 부분 네안데르탈인ㆍ데미소바인 등 고대 멸종 종족으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확인했다. 파보는 또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유럽인들이 특히 감염자ㆍ중증 환자 수가 많은 이유에 대해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의 영향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파보는 1965년 스웨덴 스톡홀롬에서 출생한 후 웁살라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에서 활동하다 1990년 독일 뮌헨대 교수로 임용됐으며, 1999년부터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그는 사상 7번째 부자 노벨상 수상자이기도 하다. 파보는 2015년 국내에도 출간된 '잃어버린 게놈을 찾아서'라는 저서를 통해 부친이 1982년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수네 베리스트룀이며, 에스토니아 출신 어머니가 낳은 혼외자라는 사실을 밝혔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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