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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단독]‘빌라왕’ 김씨, 사망 직전까지 압류걸린 빌라 ‘웃돈’ 붙여 팔았다··· 정부는 묵인·방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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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본 갭투자’ 방식으로 수도권에만 최소 1137채를 매입하며 전세사기 행각을 벌여온 ‘빌라왕’ 김씨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증보험 미가입 피해자들에게 주택 소유권을 넘기는 조건으로 웃돈을 챙겨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같은 사기 행각은 김씨가 숨지기 직전까지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김씨가 전세사기범인 사실을 알면서도 보증금의 일부라도 회수하기 위해 ‘울며 겨자먹기’로 김씨 요구에 응했다.

 “압류 하나에 2000만원, 두개에 4000만원이 ‘국룰’이었어요.”

피해자 박모씨(28)는 김씨 사망 며칠 전까지 빌라 소유권 이전 계약을 체결하기 위해 연락을 했다. 박씨가 보증금 2억7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은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엔 집엔 이미 압류 2건이 걸려있었다. 1건은 김씨가 체납한 국세·지방세를 받아야 하는 포천세무서의 압류건이고, 나머지 1건은 보증금을 대위 변제한 HUG가 건 압류였다.

당시 김씨는 ‘압류 1건이 걸린 주택은 2000만원, 2건이 걸린 주택은 4000만원’을 받고 피해자들에게 팔았다. 여기에 전세보증금에 더한 가격이 사실상 ‘시세’가 됐다. 예컨대 2억원 보증금이 걸려있는 세입자가 압류 1건인 주택을 매입했다면 2억4000만원이 사실상 매입가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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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등지에 주택 1139채를 보유하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일명 ‘빌라왕’ 김모씨 사건 피해 임차인들이 지난달 27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국토교통부 앞에서 피해 상황을 호소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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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싸니 그냥 돈 주라”


피해자들이 압류로 넘어간 집을 떠안으려 한 이유는 보증금을 받아낼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피해자 박씨에게 해당 빌라를 중개해 준 중개업소는 “임대사업자인 김씨는 임대인 보증보험 의무가입 대상이라 문제가 생겨도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서구 내 김씨 소유 주택 71가구 중 51가구는 보증보험 미가입 상태였다. 강서구는 김씨에게 단 1건의 과태료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김씨에게 세금 체납 이력이 없다”는 중개업소 말도 사실과 달랐다. 박씨가 HUG 전세보증금반환보험을 가입하려 했을때 김씨는 이미 각종 세금을 체납했고, 이로 인해 박씨가 세든 주택도 압류가 걸려있었다.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한 전력이 있어 HUG 블랙리스트에도 올라있던 상태였다.

정부는 그러나 김씨의 사기 행각을 오히려 묵인·방조했다. 박씨는 “포천세무서에 ‘김씨가 전세사기를 쳐놓고도 4000만원이라는 웃돈을 또 요구한다. 제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냐’고 묻자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세금 체납액은 계속해서 늘어날테니 그냥 지금 사는게 나을 수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이어 “포천세무서에서는 김씨 피해자들의 문의 전화가 몰려 들어 김씨 사건을 전담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였다. 담당 직원은 본인 차원에서 해줄 수 있는 조치가 없다며 미안하다고 했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대답이 굉장히 무책임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실제로 박씨와 함께 ‘김XX 피해자 대책위원회’에서 활동하던 피해자 상당수는 김씨에게 수 천만원의 ‘프리미엄’까지 붙여 그 집을 샀다. “하루 빨리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박씨는 “또다른 직원은 ‘김씨가 세금을 조금씩이라도 내고 있으니 의지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했지만, 그 세금은 피해자들이 대신 갚아준 것”이라며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랏밥 먹는 사람들은 이 피해를 10년 20년 뒤에도 막을 수 없겠다’ 생각했다”고 말했다.

“돈 없어요” 문자 남기고 사망한 김씨, 이젠 정말 방법이 없다


체념한 박씨는 결국 김씨에게 매매 계약을 체결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를 위해 체납 세금을 납부해 포천세무서와 HUG가 걸어둔 압류를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자 김씨는 ‘세무서와 HUG에 직접 돈을 내고 압류를 푼 뒤, 910만원을 현금으로 보내라’는 조건을 일방 통보했다. 박씨가 거부하자 김씨는 “돈 없어요”라는 말을 남기고 연락을 끊었다.

박씨는 “그 와중에도 자기 몫을 챙기겠다며 장사를 한 것”이라며 “선순위 채권자인 HUG에게 매매계약서를 보내면 대금 전액을 정부가 가져가니 현금(910만원)은 수표로 인출해 넘기고 다운계약서를 작성하자고도 제안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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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와 매매 계약을 체결하려던 박씨는 주택에 걸린 압류를 풀어달라고 요구하자 연락이 끊겼다. 김씨는 마지막 문자를 남기고 5일 뒤 사망했다. 심윤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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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김씨가 마지막 문자를 보내고 5일 뒤 돌연 사망해버리면서, 그마저도 불가능해졌다. 김씨 유족들이 상속 포기를 해주지 않는데다, 우여곡절 끝에 박씨가 주택 소유권을 얻는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현행 국세징수법과 지방세징수법상 정부의 조세 채권은 민간의 일반 채권에 우선한다. 보증금보다 더 큰 규모의 조세 채권이 잡혀있으면 경매 신청을 해도 ‘무잉여 기각’ 처리가 된다. 정부가 김씨의 체납세금을 우선징수하고 나면 피해자들에게 돌아갈 돈이 없어 경매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9월 ‘전세사기 피해 방지 방안’을 발표하고 경매·공매로 집이 넘어갔을때 임차인 보증금을 전입신고 확정일자 이후 당해세(종합부동산세·재산세 등 매년 세법에 따라 확정되는 세금)보다 먼저 변제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박씨처럼 김씨의 세금 체납 이후 임대차 계약을 체결한 경우엔 해당 사항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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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재 국토부 제1차관이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허그 보증보험 미가입자 대상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서 인사말을 마치고 고개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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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들은 “경매를 해서 보증금 일부라도 돌려받기 위해, 김씨가 체납한 세금 수십억원을 대신 갚으라는 것이냐”며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국토부는 지난달 HUG 미가입자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상대로 별도의 간담회를 가졌으나,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국토부는 오는 2일 전세사기 피해방지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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