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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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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매달린 말-운석 맞은 교황… 미술관 가득 ‘독한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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伊현대미술가 카텔란 첫 국내展

벽에 바나나 붙인 작품으로 화제… 불편하고 꺼리는 주제 전면으로

2011년 美전시회 이후 최대 규모… 7월 16일까지 리움미술관, 무료

동아일보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출신 작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개인전 ‘WE’에 말을 박제한 작품 ‘노베첸토’(1997년)가 전시돼 있다. 뒤편의 비둘기도 박제 작품인 ‘유령’(2001년)이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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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꾼(prankster).’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늘 따라붙는 수식어다. 그는 미술관에 18K 금 103kg으로 만든 변기 작품(‘아메리카’)을 설치하고,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작품(‘코미디언’)을 내놓아 화제가 됐다. 특히 ‘코미디언’은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치운 것이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톡톡 튀는 작품으로 사랑받는 작가 카텔란이 한국을 찾았다.

●죽음, 냉소가 가득한 전시장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에서도 작가 특유의 농담꾼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전시장을 들어서는 순간 관객을 맞이하는 것은 노숙자와 비둘기다. 실제 사람 크기로 만든 설치 작품 ‘동훈과 준호’와 비둘기를 박제한 작품 ‘유령’이 바로 그것.

주 전시장인 M2관으로 입장하면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시선을 잡아끈다. 바로크 양식 건물인 이탈리아 토리노 리볼리성 미술관에 처음 전시됐던 ‘노베첸토’(1997년)다. 당시 고풍스러운 건축물 천장에 매달린 말의 모습은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내 유명해졌다. 그 말은 리움미술관으로 이동해 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퍼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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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을 맞은 교황을 표현한 ‘아홉 번째 시간’(1999년·위쪽)과 기도하는 히틀러를 나타낸 ‘그’(2001년·아래쪽)도 눈길을 끈다. 리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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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위기는 전시장 2층에서 극대화된다.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가 줄지어 누워 있다. 그 옆에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을 축소해 모형으로 제작한 ‘무제’와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 ‘아홉 번째 시간’이 전시됐다. 카텔란의 조각 설치 벽화와 사진 등 총 38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2011년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 회고전 이후 최대 규모다. 유명한 바나나 작품 ‘코미디언’은 이번 전시의 핵심이 아니라는 듯 2층 뒤편의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전시됐다. 다만 늘 그렇듯 바나나가 전시됐기에, 갈변될 때마다 미술관에서 새 바나나로 교체한다.

●도발, 장난으로 풀어낸 신선한 자극

작가의 30년 작업에서 선별한 주요 작품을 통해, 사람들이 불편해하고 꺼리는 주제를 전면으로 끄집어낸 카텔란의 예술 세계를 볼 수 있다. 교황을 소재로 한 작품이나, 미국 성조기에 총을 쏴서 구멍을 낸 작품 ‘밤’(2021년), 히틀러를 소재로 한 ‘그’(2001년)에서 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런 이력의 출발이 되는 작품은 미술관 로비에 있다. 티켓 부스 왼쪽에 설치된 벽 광고판은 사실 그의 작품 ‘일하는 것은 나쁜 일이다’이다. 19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은 전시에 초청된 카텔란이 작품을 걸지 않고 대신 그 공간을 광고용으로 판매하면서 만들어졌다. 당시에는 향수 브랜드의 광고가 걸렸다.

미술관에서 흔히 기대할 수 없는 도발과 장난을 일삼는 카텔란을 보면, 남성용 소변기를 전시해 충격을 준 마르셀 뒤샹(1887∼1968)을 떠올리게 된다. 100여 년 전 작품인 뒤샹의 ‘샘’(1917년)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허무를 담았다. 카텔란의 냉소와 농담이 시대, 역사와 어떤 연결고리를 맺을지는 생존 작가인 만큼 아직 물음표로 남아있다.

김성원 리움미술관 부관장은 “카텔란은 유머의 힘으로 진지한 소재를 자유자재로 비틀며 신선한 자극을 던져온 작가”라며 “카텔란의 희극적 장치가 담긴 작품을 통해 토론이 펼쳐지는 무대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6일까지. 무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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