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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이슬람 과학 유산’의 발견…‘학문적 가난’ 유럽은 지적 욕구 채우다[이은수의 아이겐밸류 - 인간의 고유함을 되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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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낯선 다른 세계와의 조우

경향신문

아바스 왕조 도서관의 학자들(1237). 이슬람 학자들은 지식의 전달자를 넘어 지식의 창조자였다.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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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핵심기술의 수학적 근간을 이루는 선형대수학에서 아이겐밸류는 행렬변환 후에도 변화가 없이 그 자신으로 남는 고유벡터의 고윳값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공지능의 파고가 모든 이들에게 다양하게 다가오겠지만 인공지능이라는 엄청난 변화를 겪고도 여전히 그 자리에 남을 인간의 고유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연재글은 계속해서 ‘발견하다’라는 동사에 축적된 의미를 따라가고 있다. 지난번 우리는 아르키메데스의 헤우레카를 ‘자연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는 희열을 누리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그러나 발견의 대상이 늘 자연세계에 숨어 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거센 파도에 휩쓸려 낯선 땅에 표류해온 한 인간이 그 땅에 남겨진 또 다른 인간의 흔적을 발견하게 됐던 것처럼,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에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인간의 놀라운 흔적들이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헤로도토스(기원전 5세기)부터 스트라본(기원전 63년~기원후 24년)에 이르기까지 역사 서술과 지리 탐구를 시작한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사는 곳(oikos), 즉 스스로 친숙하게 안다고 생각했던 곳 너머의 세계에 관한 여러 보고들을 전해왔다. 이런 지식들이 쌓이면서, 더불어 그 지식들을 검증하고 동시에 도전하기도 했던 정복과 항해의 시대를 맞이하면서, 한 세계가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잦아졌다.

‘그들’이 가진 어떤 것이 ‘우리’가 갖고 싶은 매혹적인 것이 되자 교역로들이 생겨났고, 이를 바탕으로 유명한 중세의 도시들이 성장해 나갔다. 이 친숙한 이야기를 여기에서 반복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다른 세계와의 조우라는 배경 안에서 ‘발견하다’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고 싶을 뿐이다. 특별히 지중해 세계를 중심으로 한 지적 교류를 통해 ‘발견하다’의 의미를 되짚어보자(페르낭 브로델이 파헤쳤던 것처럼 사실 이 지중해만 놓고도 해야 할 이야기가 넘친다).

고대 로마인들이 지중해 패권을 장악한 이후 그들은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Mare Nostrum)’라고 불렀다. 지중해를 장악하는 것은 곧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걸쳐 구축한 로마의 세계(Orbis Romanus)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었기 때문에, 로마 제국 한복판에 놓인 이 바다는 그들에게 있어 ‘우리의 바다’라고 불릴 만했다.

오늘 이야기는 ‘우리의 바다’였던 이 바다의 구석구석을 여러 세력들이 저마다 차지하려고 했던 때부터 시작한다. 그 시기는 로마가 제국의 변방을 치고 들어오는 세력들을 제대로 막아낼 힘을 잃어가던 때이기도 하다. 그래도 팍스 로마나(Pax Romana)부터 시작된 제국의 역량은 하루아침에 무너질 것이 아니긴 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로마가 운영하던 여러 행정제도들은 야만족들에게도 전수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갖고 있는 새로운 지적인 성취와 희열은 점점 더 자취를 감췄다.

로마 제국의 서편이 이런 상황에 놓여 있었을 때, 지적 유산들을 보존하고 전수하는 지식의 전달자 역할은 제국의 동편과 그 너머의 더 동쪽, 오리엔트에서 맡게 되었다. 7~8세기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급격하게 확산돼 가는 동안, 이슬람들은 그들이 정복한 땅에 남아 있던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적 유산들을 마주하게 됐다. 쏟아져 들어오는 이 수많은 지적 유산들을 연구하기 위해 9세기 바그다드에는 지혜의 집(House of Wisdom)이 세워졌다고 한다. 고대 지중해 세계의 지식 발전과 전승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오리엔트에서 부활한 셈인데, 아직은 이 새로운 발견의 중심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성취 흔적을 발견한 이슬람…지식인 활동을 아낌없이 후원한 칼리프들이 있었기에 ‘지식 전달자’ 그 이상의 ‘위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것은 칼리프(Caliph)들이 후원인(Patron)으로서 지식인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로마에는 호라티우스(기원전 1세기)의 문예 활동을 도운 마예케나스(기원전 1세기)가 있었고, 르네상스 피렌체에는 마예케나스의 이름을 따 메세나 활동의 모범을 보인 메디치 가문이 있었다. 그 중간 시기인 이슬람의 세계에서 후원인 역할을 했던 칼리프들의 지원 덕분에 타빗 이븐 쿠라(10세기)가 유클리드를 발견했으며, 이븐 시나(980~1037년·아비센나)가 히포크라테스와 갈레노스를 발견했고, 이븐 루시드(12세기·라틴어 이름인 ‘아베로에스’로도 알려졌다)가 아리스토텔레스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도 서양 고대로부터 중세를 거쳐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지성사와 과학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과학 고전들의 상당수를 잃어버렸다는 점을 애석하게 여긴다. 많은 작품들이 제목만, 혹은 단편적으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예를 들어, 플라톤과 동시대를 살았으며 유클리드에 앞서 탁월한 수학적 능력을 보여줬다고 알려진 아르퀴타스(기원전 4~5세기)의 작품들은 아쉽게도 그 내용을 알 길이 없다. 아르키메데스가 14개의 조각으로 정사각형을 구성하는 방법을 탐구했던 ‘스토마키온(Stomachion)’이라는 작품도 앞부분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이다. 고대에는 보기 드문 경우의 수 조합론을 다룬 작품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후반부 내용을 궁금해하는 이들이 많다.

잃어버린 작품들에 대한 아쉬움을 곱씹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남은 고전들이 어떤 이들의 손에 빚을 졌는지 헤아려보는 일이기도 하다. 이 채무관계는 비교적 명확한데, 만약 이슬람의 지식인들과 그들을 아낌없이 지원했던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소실된 작품들의 목록에서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고전들의 수를 세고 있었을 것이다. 이 지식의 전승 과정을 연구했던 과거 서구권의 학자들과 이슬람 세계 사이의 보이지 않는 단절 때문에, 이슬람의 학자들이 어떻게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것들이 많다. 그래도 연구가 꾸준히 쌓여감에 따라, 이제 누구라도 과학사를 새로 서술하려 한다면 이슬람 과학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고자 할 것이다. 그만큼 이슬람의 과학을 빼놓고 고대와 중세 후기의 간극을 메우기는 어렵다.

유클리드 기하학과 디오판토스 수론을 대수학으로 발전시킨 비잔틴 제국…그들의 기여는 ‘알고리즘’ 같은 용어로 이어져

12세기 유럽, 이슬람 수학·과학을 옮길 라틴어 용어가 없을 만큼 빈약했지만 …다른 세계로부터의 자극이 ‘새 지식’ 욕구를 견인했을 것

그러나 이슬람 과학자들을 훌륭한 ‘지식의 전달자’로만 설명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성취에 대한 이슬람의 발견이 수동적 수용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였다는 증거들이 무수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들은 유클리드 기하학과 디오판토스의 수론에 대한 발견을 자신들만의 새로운 대수학으로 발전시켰다. 잘 알려진 대로 알제브라와 알고리즘이란 용어에 그들의 기여가 남아 있다.

12세기 스페인의 톨레도는 이슬람의 과학 문헌들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중심지였다. 초기의 라틴어 번역가들은 이슬람의 수학·과학 용어들을 옮길 마땅한 라틴어가 없어 소리 나는 그대로 아랍어를 라틴어로 옮기기도 했다. 라틴어는 그만큼 과학의 지식을 창조하고 전달하는 데 있어 가난한 언어였다. 어떤 이들이 12세기 르네상스라고 칭송했던 이 시기조차 아직은 유럽이 그 학문적 가난을 벗어날 때는 아니었다.

번역으로 대표되는 한 지적 세계가 다른 지적 세계와 만나는 과정은 낯섦을 마주하는 욕구를 채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것을 굳이 번역해 재확인할 이유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해하고 소화하는 데 많은 수고가 필요한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대중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감각을 통해 즉각적으로 새로운 자극을 얻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먼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를 견인해 갔을 것이다. 시각에서 시작해 후각을 거쳐 미각에 이르는 짜릿한 경험을 선사할 향신료처럼 매력적인 것들이 교역로를 만들기 시작했고, 지식의 교류는 그 길을 뒤이어 따라간 셈이다.

하나의 지적 세계가 다른 세계의 지적 유산을 발견하는 과정은 발견의 지평을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것에 타자가 마찬가지로 그럴 수 있다. 또 동시에 타자를 통해서만 발견하게 되는 특별한 대상들도 있다. 그만큼 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하늘의 같은 별을 함께 보고도 서로 다른 지적 문화를 창조해온 존재이다. 따라서 모두에게 그렇지는 않겠지만 새로운 통찰을 발견하는 데 목마른 이들에게는 다른 세계의 지적 전통을 마주하는 욕구가 있었을 것이다.

물론 다른 세계의 낯섦을 마주하는 욕구를 채우는 발견이 늘 이슬람의 과학처럼 아름다운 결말에 이른 것은 아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다루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리스어를 쓰는 장점을 살려 고대 그리스의 지적 유산들을 전폭적으로 보존하려 했던 비잔틴 제국이 어떻게 막을 내렸는가 생각해보라. 많은 사람들이 비잔틴 제국의 멸망을 1453년으로 알고 있지만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비잔틴 제국이 맡았던 ‘지식의 전달자’라는 영광스러운 위업은 1204년에 종국을 맞았다. 십자군 전쟁에 참여한 이들이 예루살렘에서 보상을 받지 못하자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함으로써 욕구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내가 속한 자연세계의 비밀을 풀어내는 희열을 누리다’라는 의미에 ‘다른 세계의 낯섦을 마주하는 욕구를 채우다’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2주 뒤에 우리는 갈릴레이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볼 수 없는 세계를 보게 된 데 대한 경외를 느끼다’라는 의미까지 확장해 나가려고 한다. 그때까지 독자 여러분이 읽고 계신 책 속에 펼쳐지는 낯선 세계 속에서 인간의 흔적을 찾는 기쁨과 설렘이 넘치기를….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경향신문

서울대학교와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수학, 서양고전, 과학사를 공부하였다. 카이스트에서 수행했던 인문학과 기술의 상호 발전에 대한 연구 및 강의를 바탕으로 서울대에서 디지털인문학이란 이름으로 인문학의 미래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서양 고대로부터 과학혁명 시기에 이르기까지 수학 및 과학적 지식의 생성과 발전 및 혁신 과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이은수 서울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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