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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유석재의 돌발史전] ‘진보’ 성향 학자들의 일갈 “좌파들은 왜 반성 없이 내로남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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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보는 ‘우리 안의 파시즘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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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우리 안의 파시즘 2.0의 저자 임지현, 우찬제 교수가 2022년 3월 3일 오후 서울 서강대 김대건관에서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박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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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라는 사람들이 정작 인권과 정의(正義)에는 무심한 채 여전히 진영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反)혁명주의자를 ‘인민의 적’으로 규정하고 비판자를 억압한 옛 소련의 스탈린식 행태가 비치고 있다.”

약 1년 전, 제20대 대통령선거 직전에 이런 말을 했던 사람은 우파 진영이 아니었습니다. 이른바 ‘진보’ 계열의 역사학자로 꼽히는 임지현 서강대 교수였습니다. 좌와 우를 막론하고 모든 독재정부는 대중의 합의로 이뤄진다는 ‘대중독재(mass dictatorship)’ 개념을 제시했던 국내 대표적인 서양사학자죠.

그는 당시 뜻을 같이하는 학자들과 함께 이런 책을 냈습니다. ‘우리 안의 파시즘 2.0′(휴머니스트).

이 책에 대해서는 조금 설명이 필요합니다. 왜 2.0이란 말을 썼을까요? ‘원전’이 23년 전으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김대중 정부 집권 다음 해인 1999년에 임지현 교수는 계간 ‘당대비평’에 ‘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논쟁적인 글을 썼습니다.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일부 좌파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와 결을 같이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른바 ‘진보’ 진영 안에서는 “이런 글을 쓰다니 이적 행위 아니냐”는 반발이 일었죠.

그러나 세월이 한 세대 가깝게 흘렀어도 달라진 것은 없었고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임 교수의 당시 지적이 세상을 미리 내다본 ‘혜안’이었다고 생각될 정도였습니다. 새로 출간된 ‘우리 안의 파시즘 2.0′은 9명의 학자가 나눠 집필했고, 임지현(사학과), 우찬제(국문과), 이욱연(중국문화학과)까지 세 서강대 교수가 편집을 맡았습니다. 과거 민주화 운동의 주축이었던 586세대가 지금은 오히려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세력이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성찰한 책입니다.

‘2.0′ 출간으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지금, 당시 진행했던 인터뷰와 출판물 속 이 세 학자들의 말을 되돌아 짚어보면 여전한 여소야대 정국 속에서 쉽게 바뀌지 않는 본질적인 문제들을 짚어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비단 야당(당시 여당)에게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닐 것입니다.

◇임지현 “일상의 오징어 게임이 펼쳐지고 있다”

“23년 전에 제대로 성찰했더라면 지금 정치가 이 꼴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옳다’는 생각에 ‘조국 수호’ 같은 내로남불 사태가 벌어졌다. 냉전적 사고를 탈피하지 못한 채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니 ‘친미 국가가 되려 하는 우크라이나를 러시아가 혼내주는 것’이란 시각으로 보는 일이 생겨났다.”

“좌파가 집권한 뒤에도 전체를 아우르려 하기보다 ‘토착왜구’ 같은 배제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라. ‘너와 나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을 펼치는 것이다.”

“새 정부(당시는 아직 누가 대선에서 승리할지 모를 때였음)가 또다시 ‘우리 편만 옳다’는 독선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민 갈라치기에 나선다면, 이른바 ‘K민주주의’는 더욱 퇴보하고 말 것이다.”

“박정희 시대에도 국민투표로 국민 의사를 묻는 절차는 있었고, 1990년대만 해도 영수회담을 통한 협치가 이뤄졌지만, 지금은 그런 것조차 없이 상대를 적으로 몰아가기 일쑤다.”

“개인의 도덕성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진짜 문제가 아니다. 반대파에게 툭 하면 ‘친일파’ ‘민족 반역자’ 등의 프레임을 씌우는 색깔론이 문제인 것이다. ‘토착 왜구’나 ‘빨갱이’는 박멸과 척결의 대상일 뿐 정치적 대화 상대가 될 수 없다.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빨갱이 사냥에 나섰던 군사독재의 ‘국가’보안법과 민족정기의 이름으로 토착 왜구 사냥에 나선 586세대의 ‘민족’보안법은 자기와 생각을 달리하는 사람들에게 반역의 프레임을 씌운다는 점에서 같은 정치적 문법을 구사한다.”

◇우찬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스크를 써야 했을까”

“한국 사회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엄청나게 줄어든 지금, 일상에 스며든 작은 권력을 성찰해야 한다. 나는 코로나 사태 이후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마스크 착용’이란 안내문을 보고 경악했다. 인간의 사고와 감정구조를 단순화시켜야 ‘묻지도 따지지도 않게’ 순종시키는 것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이것은 사고가 관료화·매뉴얼화된 것을 보여주는 우리 시대의 징표라고 생각했다.”

“(문재인 정부의 코로나 대처에서) 내일의 행복을 위해 무조건 현재를 희생시켜야 한다는 잘못된 목적 지향적 사고방식은 군부독재 때와 똑같은 패턴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우리 편은 옳다’는 프레임까지 씌워지면 반성과 성찰 없이 무비판적으로 자기 편을 감싸는 행태로 이어지는 것이다.”

“지금 정말 필요한 것은 파시즘적인 배제의 언어가 아니라 서로 소통이 가능한 대화의 언어다. …무엇보다 강조부사나 최상급 표현 그리고 대조의 수사를 아무런 반성 없이 사용한다면 더욱 의심해야 한다. 일방향적 파시즘의 언어는 결코 먼 곳에 또는 과거에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반성적 파시즘의 언어는 모방력이나 파급력도 상당한 편이어서, 코로나 19 변이 바이러스처럼 쉽게 확산된다.”

◇이욱연 “586은 권위주의의 산물임을 스스로 자각해야”

“586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낸 선구자라는 자의식을 갖고 있지만, 여전히 수직적이고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안고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80년대 학번 세대는 이제 새 시대를 여는 첫 세대가 아니라 과거를 닫는 마지막 세대가 돼야 한다.”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문화적인 비(非)민주화가 심각한 불균형을 이룬 세대가 바로 586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가 유신 시대에 교육을 받아 권위주의적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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