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황창규 회장 당시 ‘비전문가 대표’ 막기 위해 만든 조치에
‘기업 경영 경험 없는’ 윤진식·김성태 등 정·관계 출신 발목 잡혀
사상 초유 직무대행 체제 돌입 “개정 논의”…외부수혈 악용 우려
29일 KT에 따르면 KT는 2018년 3월 대표이사 심사 기준에 후보의 ‘기업경영 경험’을 명시한 지배구조 개편안을 마련한 바 있다. 정관 제32조 4항은 ‘기업경영 경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과거 경영실적, 경영기간 등’을 주요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당시 연임에 성공한 황창규 전 회장이 대표 자리가 외풍에 취약하다는 안팎의 지적을 반영해 비전문가가 ‘낙하산 인사’로 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든 조치였다. 이전에는 해당 조항에 ‘경영 경험’이라고만 돼 있어, ‘정부기관’ 등을 경영해본 정·관계 인사가 대표가 되는 데 제어장치가 없었다.
윤경림 사장을 후보로 뽑은 이번 KT 대표 선출 때도 해당 정관이 위력을 발휘했다. 친여 인사인 윤진식 전 산업자원부 장관이나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기업경영 경험이 없어 최종 압축된 4인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3년여 전 구현모 대표가 뽑혔을 때도 노준형 전 정보통신부 장관과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이 출사표를 던졌지만 이 정관에 발목이 잡혀 고배를 마셨다.
또 해당 정관에는 ‘정보통신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평가할 수 있는 요소 등’도 대표 심사 기준으로 들어가 있다. 이 역시 여권 시각에서는 마뜩잖다. 대표적으로 윤 전 장관의 경우 재정경제부 고위간부 출신으로 경제 전반에 해박하지만,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KT는 전날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하면서 향후 정관 개정을 논의하겠다고 밝혀 제32조 등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 사내 비상경영위원회 산하 뉴거버넌스 구축 태스크포스(TF)에서 내놓은 지배구조 개선안을 바탕으로 사외이사 선임을 추진하고, 이들이 중심이 돼 변경된 정관에 따라 대표 선임 절차를 추진하겠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관 개정을 위해서는 주총 표 대결을 통과해야 한다. 낙하산 인사 선발을 정당화하는 퇴행적 조치를 두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들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고, 주주들이 주총장에서 집단적으로 반대표를 던지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만약 주총에서 정관 변경 안건이 부결된다면 여권이 선호하는 인물을 KT 수장으로 입성시키기 어렵게 된다.
대표 직무대행인 박종욱 경영기획부문장(사장)은 29일 임직원에게 보낸 글에서 “대표이사 유고라는 초유의 상황에 저 또한 당혹스럽기 그지없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넘어서는 지배구조체계를 조속히 정립하겠다”고 밝혔다.
구교형 기자 wassup0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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