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3층 라운지 ‘다락’에서 LG전자 젠Z 직원 커뮤니티 ‘엠지트’가 회의를 하고 있다. 이들은 계급장·나이·이름표를 떼고 '닉네임'으로만 서로를 호칭하며 자유로운 의견개진을 한다. 맨 왼쪽부터 문선애(헛개수)씨, 김서연(비유)씨, 김수빈(뚜비블루)씨, 안수민(숨숨)씨, 주소미(동글이)씨, 김선태(아이디어)씨, 박형윤(영자)씨. 고석현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조명이 제품 상단에 있으면 실제로 사용할 때 너무 눈부셔요. ‘젠Z’들은 간접등처럼 아늑한 느낌을 좋아하거든요. 조명 위치를 바꿔서 은은한 분위기를 냈으면 좋겠습니다.”
이달 초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 33층 라운지 ‘다락’. LG전자 직원 커뮤니티 ‘엠지트’가 테이블형 공기청정기 ‘에어로퍼니처’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지난해 만들어진 엠지트는 이 회사 생활가전(H&A)사업본부 소속의 젊은 직원이 자발적으로 모인 커뮤니티다. 현재 40명이 활동하고 있으며, 평균 나이가 28.7세다.
직원들은 계급장·나이·이름표를 떼고, 닉네임만으로 소통한다. 집중하는 분야는 또래인 20대 ‘젠Z(Z세대)’다. ‘영자’란 닉네임으로 활동하는 박형윤 CX전략팀 선임은 “젠Z를 위한 제품과 마케팅 아이디어를 정말 리얼한 목소리로 전달한다”며 “이 세대 특징 중 하나가 ‘불필요한 눈치를 보지 않는다’인데, 익명으로 활동하니 더 과감하게 의견을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젠Z들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제품·마케팅 전략도 바꿔놓았다. 이른바 ‘방방컨’이라고 불리는 창문형 에어컨의 경우 “요즘 세대는 바람이 직분사되는 걸 싫어한다”는 의견을 반영해 ‘집중 회전’ 기능을 추가했다. 이들은 젠Z의 가전 사업의 비전으로 ‘가전엄빠’라는 키워드도 만들었는데, 엄마·아빠처럼 밀착 케어해 주는 제품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LG전자는 향후 젠Z 대상 제품 마케팅에서 이 키워드를 활용할 예정이다.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
코로나19 기간 ‘MZ세대 마케팅’에 집중해왔던 기업들이 바뀌고 있다. 1980~2000년대 초반 출생까지 아우르는 ‘MZ세대’ 꼬리표가 너무 폭넓고, “이미 M세대도 나이가 들었다”는 지적 때문이다. 최근엔 1990년대 중반에서 2000년대 초반 출생한 순수 20대 ‘젠Z’에만 타깃을 맞춘다. 주로 소비재 기업에서 ‘젠Z 열공’이 시작된 이유다.
M·Z세대는 디지털 문화에 익숙하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세대별 뚜렷한 차이가 있다. M세대는 컴퓨터와 인터넷→스마트폰을 순차적으로 접하며 디지털 문화를 형성해왔다. 1995년 이후 태어난 젠Z는 태어나면서부터 모바일·디지털 환경에 노출된 ‘디지털 네이티브’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M은 ‘컴퓨터’, Z는 ‘모바일’ 세대다.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며 “실제로 M세대가 이해 못할 정도로 ‘젠Z’ 특유의 개성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업무를 대하는 자세도 다소 차이가 있다. M세대가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점심은 부서원과 먹고 ▶개인 시간을 조금 희생하더라도 업무를 중시한다면, 젠Z는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시하는 걸 넘어 직접 실천하며 ▶업무보다는 개인 시간 활용에 가치를 느낀다.〈그래픽 참조〉
기업들은 M·Z세대를 분리하고, 요즘은 젠Z의 근무·생활·쇼핑 스타일을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글로벌마케팅실 산하에 ‘퓨처제너레이션랩’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전 세계 70여 명 규모다. 직원 구성도 특이하다. 정보기술(IT)·테크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으로 한 분야에 몰입하는 사람을 의미)부터 디자이너·인플루언서 등 개성이 강한 사원들을 모았다.
이들이 젠Z 타깃의 마케팅 방향을 제시한다. 젠Z 시각에서 새로운 방식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활동도 진행 중인데, 최근엔 재활용 소재를 적용한 친환경 액세서리 라인업 ‘에코-프렌즈’를 출시하기도 했다.
기아는 주니어급 매니저 20여 명을 모아 ‘영이노베이터’라는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제품부터 조직문화 혁신까지 창의적 아이디어를 발굴해 경영진에게 직접 발표한다. 현대백화점도 스트릿 패션 편집숍 브랜드 ‘피어’를 젠Z 타깃으로 운영한다. 부서원의 평균 나이가 29세로, 상품본부에서 가장 어린 조직이다. 통상적으로 상품본부의 바이어는 경력 10년 이상인 경우가 60%를 넘는데, ‘새파랗게 젊은’ 직원들만 모아둔 것이다.
기업들의 ‘젠Z 열공’이 확대되다 보니 일부에선 “기존 세대는 소외감을 느낀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젠Z 연구’가 제품·브랜드의 영향력을 글로벌 시장까지 확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채호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젠Z’는 삼성·BTS·블랙핑크 등 한국 제품과 브랜드가 세계 1등을 하는 것에 익숙한 세대”라며 “당장 구매력이 없다는 평가도 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젠Z는 소비자임과 동시에 남들의 소비에 영향을 미치는 특징이 있다. 이들이 만족하게 하면 전 세계 모든 세대에 파급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