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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저출산 예산, 17년간 332조 썼다는데…"과대계산된 착시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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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토론회서 집행내역 분석…"가족지원 미흡에 경제적 불확실성 더해져"

GDP 대비 가족예산 OECD 평균 미달…"융자 등 주거지원이 규모 부풀려"

"육아휴직 등 보장범위 여전히 낮아" "노동시간 단축, 모든 해결책의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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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이미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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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합계출산율(가임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출생아 수)은 2018년 '1 미만'으로 떨어진 이후 매년 내리막이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이 제정된 이후 17년간 출산율 반등을 위해 쓴 돈은 332조 원에 이르지만, 작년 기준 0.78명까지 하락한 합계출산율은 '낙제점'에 가깝다.

'소아과 오픈런', 교사 감축 등 '인구 절벽'을 피부로 느끼는 이들이 늘면서 그간의 저출산 정책방향이 잘못됐다는 문제의식도 커지고 있다. '해왔던 대로' 해서는 도저히 재앙에 가까운 초저출산 국면을 타개할 수 없다는 인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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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국회의장과 정춘숙 보건복지위원장, 보건복지부 이기일 1차관 등 25일 국회 '저출산 대응 정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토론회에 참석한 인사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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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회에서는 '저출산 대응 정책: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 주제로 국가현안 대토론회가 열렸다. 인구 문제를 풀기 위해 써온 시간과 예산의 면면을 뜯어보고, 개선점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마련된 자리다.

첫 발제자로 나선 강대훈 국회입법조사처 사회문화조사실장은 2008년 미국 월가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출산 양상이 과거와는 달라졌다고 짚었다. 전통적인 고(高)출산 국가와 저출산 국가의 양분이 무의해졌다는 것이다.

노르웨이와 핀란드는 2010~2011년경부터 출산율이 급락세를 보인 반면 기존에 '초저출산 국가'에 들어갔던 독일과 헝가리는 유럽연합(EU) 평균을 넘어서서 OECD 평균인 수준에 거의 근접했다고 평가했다. 상대적으로 경제 위기를 약하게 겪은 나라도 있지만, 가족 관련 지원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상으로 크게 확대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의 경우, 출산·양육과 직접적으로 관계된 가족지원(육아휴직·보육지원·아동수당 등)이 미흡했던 동시에 나날이 커진 경제적 불확실성이 출산율 급락을 야기했다는 분석이다. 강 실장은 "출산·양육, 일-가정 양립에 대한 지원이 부족했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심화하고 있는 주거·고용 문제 등 2가지 요인을 저출산 국가들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아동가구 및 청년 주거지원(출자·융자)은 24조 6천억을 웃도는 수준으로 전체 저출산 대응 예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작년 기준 저출산 대응 예산을 분야별로 분석한 결과, △주택구입 △전세자금융자 △공공임대 융자(출자) △청년월세지원 등 주거 관련 지원(46%)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육·돌봄(23%), 수당(11%) 등은 후순위였다. 가족지원 해당 예산은 18조 2975억 원 정도인데, 2021년 기준 GDP(2057조 4478억)의 1%도 채 안 되는 비율이다. '융자' 등이 적잖은 비중으로 잡히다 보니 저출산 예산이 과대 계상되는 주요 요인이 됐다.

최병권 국회예산정책처 예산분석실장도 비슷한 지점을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가족예산 비율은 GDP 대비 1.56%로 OECD 평균(2.29%)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물론 저출산 문제에서 비교적 선방한 것으로 평가되는 주요 3개국(프랑스·독일·스웨덴)의 절반 이하 수준이다.

합계출산율이 1.5명을 상회하는 이들 국가는 총생산의 평균 3.37%를 가족예산으로 쓴다.

가족예산 중 아동수당·육아휴직급여 등은 2019년 기준 GDP 대비 0.32%로 OECD 평균(1.12%)의 30% 정도에 그쳤다. 현금성 지원 역시 금액은 인상돼 왔지만, 청년 세대가 출산을 기피하는 최대 원인인 '양육비·교육비 등의 경제적 부담(57%)'을 상쇄하기엔 턱없이 모자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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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국회 '저출산 대응 정책'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최슬기 교수.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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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양극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5개년 기본계획의 지나친 포괄성이 문제의 심각성을 더 키웠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연구 등에 따르면, 1998~2016년 미혼남녀의 결혼 가능성은 부모의 가구소득 및 금융자산이 많을수록 높았고, 분만 건수도 고소득층에서 더 확대되는 경향을 나타냈다.

저출산 정책이 결혼·출산 적령기의 청년들에게 불균등하게 배분되는 자원 격차를 완화하는 데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현재 진행 중인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2021~2025)에서는 모든 세대의 '삶의 질 제고'를 목표로 설정해 서로 다른 정책대상 관련 세부과제를 '원칙 없이 망라'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은 "사실 4차 기본계획을 만들 때도 '백화점식 정책은 하지 말자'는 얘기부터 시작했었다. 그런데 '고령화'가 제목에 있다 보니 노인 정책이 한 파트 들어갔고 청년의 생애주기 관련 정책도 같이 들어왔다"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이 (이 이름으로) 있는 한 매번 똑같은 일(지적)이 반복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 저출산의 이유로 '만혼(晩婚)'을 짚는 부분에 대해선 "이는 원인이 아닌 동일한 현상을 보여주는 다른 측면이라 봐야 한다"고 일축했다.

김 본부장은 커플 중 '한 명은 벌고, 한 명은 아이를 돌보는' 성(性)역할 분담 모델은 이미 쇠퇴했다며, 이같은 인식은 젠더 갈등의 영역이 아니라 남녀 공히 '합의된 상식'이라고 못박았다.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자녀가 없는 2030 청년층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한 결과, 성별을 떠나 응답자 대부분은 '남녀 모두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김 본부장은 한쪽 성의 '전업 돌봄'을 전제로 한 정책은 10% 안팎의 지지밖에 받지 못했다며 "남녀 동등 역할모델에 맞는 정책이 나와야 당사자의 눈높이에 맞는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아울러 육아휴직은 대기업의 정규직 근로자나 여성 등에 국한된 특혜라는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적용을 일반화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비정규직·중소기업 근로자·남성 등이 사용할 수 있도록 근로감독 강화와 지원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김 본부장은 아동수당 또한 선진국에서 '미취학 아동'에 지원이 몰리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며, 금액 상향보다 0~17세 등 연령 대상을 확대하는 게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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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지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기획조정본부장의 발표 자료 중 일부. 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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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출산을 주저하게 하는 경력단절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시간 단축'이 가장 근본적인 전제조건이라는 목소리도 나왔다.

토론자로 참여한 임아영 경향신문 소통·젠더데스크 기자는 "제가 아이를 낳고 양육환경에 제일 도움이 된 것은 '주52시간제 도입'"이라고 말했다. 임 기자는 "52시간제가 도입되고 나서야 야근을 맘대로 할 수 없었고 저의 생활을 좀 더 계획할 수 있도록 (환경이) 바뀌었다"고 부연했다.

그는 "'남성이 야근하는 모델'로 노동 모델을 짜는 게 경단(경력단절)의 원인"이라며 "대학진학률은 이미 여성이 (남성을) 앞섰는데 사회에서 성차별적 구조를 맞닥뜨리며 난감해 하고, 노동시간은 계속 증가하게 되면 어떻게 돌봄시간을 마련하겠다는 건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별을 갈라 생각할 부분이 아니다. 유럽 등에선 가족을 돌보는 노동자가 (일터에서) 차별당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있다"며 "임신·출산 등을 이유로 해고하는 것, 육아부담을 이유로 여성의 승진을 거부하거나 남성들의 육아휴직을 허락하지 않는 것 등"에 적용 가능하다고 했다. 또 "항목별 예산을 증액하는 정도로는 미약하다는 것"이라며 "청년들에게 노동·돌봄시장이 성평등하게 바뀐다는 신호를 주는 게 급선무다. 정부가 철학을 갖고 드라이브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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