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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동상이목(同想異目)]내돈내산, 내팔내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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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더벨 이진우 국장


저녁약속을 잡는데 요즘 '핫한' 맛집이라 예약이 안 되고 웨이팅은 필수라며 괜찮으냐고 묻는다. 먼저 가서 자리를 잡는 것도 안 된단다. 누군가 먼저 가서 줄을 서야 하는데 식사인원이 모두 와야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다. 뭐 그래도 맛집이라니 한번 가보자고 의기투합해 한둘씩 도착해 줄을 선다. 노포임에도 주변을 보니 20대 커플부터 40~50대 직장인, 60~70대 '청춘노인' 등 다양한 부류가 뒤섞여 차례를 기다린다.

예전에 어떤 바이오신약 개발회사 대표가 젊은 직원들과 '공정'을 논하는데 다수가 '맛집 줄서기'를 대표적 케이스로 꼽아 놀랐다고 얘기한 게 문득 떠올랐다. 그렇다. 나이도 직업도 돈도 지위도 필요 없이 먼저 오는 사람이 먼저 들어간다. 남들도 줄 서서 기다리는 집에 '부지런한' 내가 먼저 들어가 먹고 사진을 찍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샷을 올리는 즐거움이 있다. 커피 한 잔 마시기 위해 한두 시간을 기다려도 짜증 내지 않는다.

'먼저 온 사람이 우선'이라는 선착순 원칙이 정말 공정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적어도 이 원칙이 깨지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본능이다. '새치기'가 비난받는 것도 마찬가지다. 수요가 공급을 크게 초과해 벌어지는 이런 현상이 경제적으로는 효용성이 높지 않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심리적 만족감을 높이기 위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비효율이 생긴다는 논리다. '줄서기'를 마케팅 기법으로 활용하는데 동원된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내 돈으로 내가 샀다는 '내돈내산'도 비슷한 맥락이다.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는 경제적으로 부담이 큰 사치품을 구매하는 플렉스를 하며 때로는 이를 통해 돈을 벌 궁리도 같이한다. 인기 유튜버들이 교묘한 뒷광고를 하는 행태를 비난하며 "내돈내산이니 나는 떳떳하다"고 외치는 이들은 묘한 공정의 자부심을 느낀다. 내돈내산이니 나를 신뢰하고 내 경험을 공정하게 소통하자는 적극성이다.

신뢰할 수 있는 경험과 공정이라는 시대적 키워드를 떠올리는데 불쾌하게도 한 국회의원의 코인거래와 선거관리위원회의 '아빠찬스' 자녀채용 등 공적 영역에서 연이은 '공정 일탈'이 오버랩되면서 입맛이 씁쓸해진다. 불법, 편법, 탈법 여부를 떠나 신뢰와 경험, 공정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치기 어린 군사정권 시절 무용담에도 끼지 못하는 창피하고 허무한 일탈이 난무한다. 아무리 공정 어쩌고 하면서 '내돈내산'이라고 우겨도 내 팔자 내가 꼰다는 '내팔내꼰'으로 결론이 나야 그나마 소심한 '의문의 복수'란 느낌으로 좀 위안이 될까.

이런 부류의 '불공정' 정치권, 관료라인의 눈치를 보며 행여 공정의 잣대에서 어긋나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경영자들이 차라리 애처롭다. 젊은 대학생, 젊은 직원들과의 소맥파티, 토크콘서트 등 신뢰와 소통으로 다가가려는 재계 3~4세대 총수들은 정치권과 여론을 가장 무서워한다.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엄청 많았으면 좋겠다"고 한 어떤 배우의 말이 '내팔내꼰'도 아닌 이들에겐 깊은 공감을 느끼는 '불편한 진실'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이진우 더벨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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