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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업을 떠나고 월급이 150만 원 늘었습니다. 제가 돌아갈 일은 없을 것입니다"
2000년대 중반부터 15년간 조선업에서 '파워공'(선박 페인트칠을 하기 전 철판의 녹이나 이물질을 제거하는 역할)으로 일했던 A 씨는 3년 전 석유화학 협력업체로 이직했습니다. 하청 노동자로 좀처럼 늘지 않는 임금에도 묵묵히 일했지만 불황이 길어지면서 임금체불과 4대 보험 체납 등에 시달리자 결국 조선업을 떠났습니다. 높은 곳에 올라 온몸을 긴장한 채 작업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이직한 업체에서는 주로 실내에서 기계 장치들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비단 A 씨뿐만이 아닙니다. 용접, 도장 등 필수 인력들이 조선업계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A 씨는 오히려 자신이 너무 늦게 업계를 떠났다며 남은 동료들이 많지 않다고 말합니다. 약 2년 전부터 조선업계에서는 LNG선, 컨테이너선 등을 수주했다는 뉴스가 쏟아지고 있는데 왜 노동자들은 오히려 조선사를 바라보지 않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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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쏟아지지만
지난 22일 찾은 울산의 한 조선소에는 비어 있는 도크(선박 제작하는 공간)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대부분 최근 선박 가격이 치솟은 LNG 선박이었습니다. 선박을 구성하는 블록을 도로에 잠시 쌓아둬야 할 정도로 일감이 넘쳤고 자재를 실은 장비들은 바쁘게 움직였습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물류량이 늘어나는데다 친환경 규제까지 생기면서 최근 선박 수요와 가격은 올라갔습니다. 기술력만큼은 '월드 클래스'였던 국내 조선사들에게 자연스레 주문이 몰렸습니다. 2020년 195억 달러였던 조선업 수주액은 지난해 462억 달러까지 2배나 늘었고 지난해 전체 선박 발주 중 38%를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하기도 했습니다. 한 척 당 3천억이 넘는 LNG 선은 국내 조선사가 전체 수주량의 70%를 쓸어갈 정도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작 업체들은 일할 사람이 없다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지자체와 힘을 합쳐 연일 대학생들을 모시고 기업 설명회를 여는 것도 모자라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러브콜을 보내고 있습니다. 울산의 한 협력사 대표는 "공정 순서를 바꿔서 운용할 정도로 사람이 부족하다"라며 "휴일이면 설명회를 열심히 다니고 있지만 아직 채용으로 이어지는 것은 극소수"라고 설명했습니다. A 씨 같은 숙련된 노동자도 젊은 구직자들에게도 지금의 조선사는 매력이 떨어지는 직장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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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떠난 하청노동자들
이유는 지난 10년의 불황에 있습니다. 조선업의 발전 뒤에는 하청 노동자가 있었습니다. 우수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원청 조선사는 성장을 거듭해 왔지만 급변하는 거시 경제 앞에선 속수무책이었습니다. 불황에 줄어드는 선박 주문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으로 인력을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 하청 노동자가 늘었습니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생산직 중 하청 노동자의 비율은 1990년 21%에서 2021년 69%로 급증했습니다. 여기에 하청을 받은 업체가 재하청을 하는 구조까지 고착화되면서 하청 노동자는 점점 늘어나는데 임금 증가는 더디기만 했습니다.
그래도 호황 국면에서는 일한 만큼 임금을 받을 수 있었지만 2010년대 찾아온 불황 앞에선 이런 원칙이 조금씩 무너졌습니다. 원청 일감이 줄자 하청업체들은 줄줄이 폐업했습니다. 하청 노동자들의 작업은 달라지지 않는데 회사를 옮겨가며 계약서를 새로 써야 했습니다. 임금은 제자리였고 이마저도 체불되는 일이 늘어나자 미련 없이 떠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빈자리가 커지면서 2014년 20만 3천여 명이던 조선업 종사자는 지난해 9만 5천여 명으로 줄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위험한 작업 환경도 이탈을 가속화했습니다. 용접과 절단, 도장 등 야외 작업에 거대한 장비와 자재가 수시로 이동하는 환경이라 다른 제조업 대비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높습니다. 한국산업안전공단에 따르면 조선업(선박건조및수리업)의 산업재해 발생비율(재해자 수/ 근로자 수)은 2.61%로 전체 제조업(0.79%)의 3배 이상 높게 나타났습니다. 하청노동자 A 씨는 "한 단이 허리 높이인데 로프 하나 가지고 11단을 올라가서 작업한다"라며 "같이 일하던 노동자가 떨어지는 것을 직접 보기도 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업을 떠난 노동자들이 발전사 등 육체노동의 강도가 낮은 곳을 선호합니다.
깊은 불황과 산업재해 뉴스는 최근의 호황 소식에도 젊은 인재들을 머뭇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울산 폴리텍 대학에서 만난 20대 초반 교육생들은 "위험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작업 환경이 개선 돼야 취업을 고민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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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노동자 투입한다지만
당장 일손이 급해지자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외국인 노동자였습니다. 용접, 도장공 등 전문적 기능을 갖춘 인력(E-7-3 비자)은 들어올 수 있는 조건을 최대한 완화하고 비교적 단순 업무를 할 수 있는 비전문 인력(E-9 비자)은 조선업에 매년 5천 명을 할당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22일 찾은 울산의 한 조선소 기술교육장 E-9 비자로 입국한 베트남 노동자 18명이 난생처음 작업복에 안전장구 등을 착용하고 배관 절단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4주 간의 단기 교육을 거친 후 이들은 조선소에 투입됩니다.
조선사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한 통역, 숙소, 교육 프로그램들을 정비하면서 가급적 오래 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도 큽니다. 국내에 연고가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임금과 작업환경에서 불만이 생기면 금세 마음이 변할 수 있다고 조선소 노동자들은 입을 모읍니다. 실제 지난달에는 조선소 태국인 노동자 9명이 잠적했고 지난 2월에도 4명이 숙소를 무단 이탈했습니다. 울산 조선소 하청 노동자 B 씨는 "외국인 노동자 커뮤니티에선 임금이 높고 일이 편하다는 사업장이 나오면 불법체류를 감수하고서도 직장을 옮기려고 한다"라며 "이들의 업무 숙련도와 국내 노동자들과의 융합 등을 고려하면 선박 품질까지도 영향을 줄 수 있다"라고 지적했습니다.
노동자의 마음 돌리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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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숙련공과 젊은 신규 인력에게 더 매력적인 직장으로 거듭나야 하는데 기업들은 아직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제 막 조선업이 살아나고 있는데 누적된 적자가 커 급격한 개선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난 1분기 주요 3사의 실적을 살펴보면 삼성중공업은 5년 6개월 만에 간신히 흑자(영업이익 196억 원)를 냈고 HD한국조선해양은 적자(영업손실 190억 원),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은 10분기 연속 적자(영업손실 628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수년간 저가 수주 여파를 올해 본격적으로 털어내고 있어 아직 체력이 완전한 상태는 아니긴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중국의 추격이 무섭습니다. 고부가 선박 점유율에서 2020년 한국과 중국의 격차는 42%p(한국 65%, 중국 23%) 였지만 지난해에는 18%p(한국 57%, 중국 39%)까지 줄었습니다. 특히, 압도적이었던 대형 LNG운반선의 수주 비중은 4년 전 92%p(한국 96%, 중국 4%)에서 지난해 40%p(한국 70%, 중국 30%)까지 좁혀졌습니다. 거대 자본을 투자해 맹추격하는 중국 앞에 가까스로 찾아온 호황이 금방이라도 떠나갈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지금 원하청 격차 해소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필요할 때 낮은 임금으로 고용하고 불황일 때 외면했던 저임금 노동자들의 기억을 씻어낼 수 있는 수준으로 말입니다. 하청노동자 B 씨는 "불황 시기 임금체불을 당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라며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한 원청 업체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지난 2월 정부는 조선 5개사와 함께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의안을 마련했습니다. 시작부터 노조를 배제하면서 논란이 됐는데 아직 하청노동자들 사이에서 "달라진 것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정부와 조선업계가 이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실질적인 해법을 만들어낼 때입니다.
정준호 기자 junhoj@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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