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0 (토)

탐색 끝낸 中 본색 드러냈다…中대사 이례적 '말폭탄' 메시지

댓글 2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싱하이밍 대사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베팅"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선택을 압박했다. 이 표현은 미국이 미중 경쟁에서의 우위를 드러낼 때 사용해 왔다. 사진은 2013년 12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을 만나 손을 잡고 인사 나누는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말폭탄'이 한·중 외교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싱 대사가 지난 8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외교 결례 및 내정 개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한국 외교부가 고강도 대응에 나서면서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일 오전 싱 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불러 들여 강력 유감을 표명했다. 싱 대사를 초치한 장 차관은 전날 이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온 싱 대사의 공개 발언을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으로 규정했다. 싱 대사는 민주당 유튜브 채널로 생중계 된 이 면담의 모두 발언에서 “중·한 관계가 어려움에 부딪힌 책임은 중국에 있지 않다”며 책임을 한국에 전가하고,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정책을 노골적으로 왜곡·비판했다.



선 넘은 싱하이밍…"국내 정치 개입" 경고




싱 대사는 특히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며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나중에 반드시 후회한다”고 경고했다. 한국을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사실상 윤석열 정부의 한·미 동맹 강화 기조를 비판하려는 의도로 해석됐다. 한·중 우호 관계 강화에 나서야 할 외교 사절이 오히려 상대국과의 갈등을 유발하는 메시지를 발신한 셈이다.

중앙일보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9일 싱하이밍 주한 중국대사를 초치해 외교 결례에 해당하는 발언을 쏟아낸 데 대해 강도 높은 경고에 나섰다.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싱 대사가 사용한 ‘베팅’이라는 표현은 미국이 중국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강조할 때 사용해 온 표현이다. 2013년 12월 당시 부통령이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미국의 반대편에 베팅하는 것은 절대 좋은 베팅이 될 수 없다”고 말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보도된 월스트리트저널 기고글에서도 “절대 미국 경제에 맞서 베팅하지 말라”는 제목을 썼다. 결국 싱 대사가 야당 대표를 면전에 둔 자리에서 미국식 표현을 차용해 한국의 선택을 압박한 셈이 됐다.

장 차관은 이날 싱 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관련 발언을 언급하며 “금번 언행은 한·중 우호의 정신에 역행하고 양국 간 오해와 불신을 조장하는 무책임한 태도”라는 점을 지적했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장 차관은 또 “사실과 다른 내용과 묵과할 수 없는 표현으로 우리 정부 정책을 비판한 것은 국내 정치에 개입하는 내정간섭에 해당될 수 있다”고도 했다.



장호진 "모든 결과는 본인 책임 될 것"



중앙일보

사진은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한 한중 정상회담 당시 인사를 나누는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외교적 마찰이 발생할 경우 외교부가 해당국의 대사를 초치하는 것은 일반적인 관행이다. 하지만 이날 외교부가 야당 대표와의 대화와 관련해 싱 대사를 초치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다. 특히 초치 사실을 발표한 자료엔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날 선 표현이 담겼다.

외교부가 공개한 자료엔 싱 대사의 발언에 대해 “외교 관례에 어긋나는 비상식적이고 도발적인 언행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강력한 유감을 표명했다”며 “(싱 대사는) 외교사절의 본분에 벗어나지 않도록 처신해야 할 것이며, 모든 결과는 본인의 책임이 될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외교 소식통은 “싱 대사의 발언이 알려진 이후 외교부는 이를 '도를 넘은 외교 결례'로 받아들였고, 대통령실 역시 강도 높은 대응이 필요하다고 봤다”며 “특히 정부에선 싱 대사가 최근 언론 인터뷰와 공식 석상 발언 등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이어가는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고, 이재명 대표와의 면담 발언은 용인할 수 있는 선을 넘어선 행동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



탐색 끝낸 中, '전랑 모드' 나서나



중앙일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실제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지난 1년간 한국의 가치 외교 기조를 지켜보던 중국은 탐색기를 끝내고 최근 본격적인 전랑(戰狼·늑대 전사) 외교 색채를 드러내고 있다. 문제가 된 싱 대사의 발언 역시 ‘한·미 동맹 강화→한·일 관계 개선→한·미·일 공조 본격화→국제사회 역할 확대’로 이어지는 한국의 외교 노선에 제동을 걸기 위해 의도적으로 갈등을 유발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주한중국대사관은 전날 이 대표와 싱 대사의 면담 직후 싱 대사의 발언 내용을 보도자료 형태로 배포했다. 대사관이 특정 정치권 인사와의 면담에서 공세적 발언을 쏟아내고 해당 발언을 전문 형태로 공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싱 대사의 발언이 주한중국대사관을 넘어 중국 공산당과 외교부의 공식 입장이며, 싱 대사는 이 대표와의 면담 기회를 활용해 이같은 메시지를 강하게 발신하는 것 등을 본국과 사전에 치밀하게 조율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싱 대사의 발언은 야당 대표와의 면담에서 나왔지만 정치권에 보내는 메시지라기보단 한국 정부를 향한 불만 성토 목적으로 보인다”며 “특히 미·중 경쟁 속 미국에 베팅할 경우 후회한다고 경고하고, 중국과 협력할 경우 ‘경제 성장의 보너스’를 누린다고 언급한 것은 한국이 추구하는 외교 정책에 대한 중국의 시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