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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이슈 [연재] 아시아경제 '과학을읽다'

[과학을읽다]인류, '비만 정복' 얼마 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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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만 치료제 게임체인저 속속 등장

韓 연구진, 지방 대사 촉진 신약 개발 '희소식'

비만은 인류 건강의 10대 적(敵)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움과 장수·건강을 위해 다이어트를 새해 희망·약속 1위로 꼽는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을 포기하기도, 힘든 운동을 감당하기도 힘들다. 운동·식이요법에 약물·수술까지 동원되지만 부작용에 시달리거나 요요 현상을 경험하기 일쑤다. 최근 비만 치료제들이 개발되고 있지만 효과가 제한적이거나 값이 비싸다. 우울증·내성·식욕감퇴·구토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정말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전 세계 10억명의 비만 환자들에게 희소식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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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컷 먹고도 살 뺀다"
식욕을 포기 못 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음식을 즐기고도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은 너무나도 달콤한 유혹이다. 온갖 부작용이 심한 기존 다이어트 약물들의 광고 문구인 이유다. 공인된 치료제들조차 감히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식이요법을 동반해야 효과가 좋다"는 설명을 늘 붙여야 했다. 그런데 정말 이 같은 ‘꿈의 약물’이 개발돼 본격적인 임상에 들어가 관심을 끌고 있다. 그것도 우리나라 연구진에 의해서다. 좀 더 싸고 구입도 손쉬울 수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이 1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 메타볼리즘(Nature Metabolism))에 발표해 전 세계가 놀란 신약 ‘KDS 2010’이 그 주인공이다. IBS의 이창준 인지 및 사회성 연구단장 연구팀은 치매 치료 약물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뜻밖에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타깃을 발견했다. 뇌 속 별 모양의 비신경세포 ‘별세포’에서 지방 대사 조절 원리를 찾아낸 것이다. 그동안에도 공복감과 체내 에너지 균형을 뇌의 측시상하부가 관장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었다. 측시상하부 신경세포들이 지방 조직으로 연결돼 지방 대사에 관여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한 기전은 밝혀져 있지 않았다. 연구팀은 측시상하부에서 억제성 신경물질인 ‘가바(GABA)’의 수용체를 특이적으로 발현하는 신경세포 군집 GABRA5를 발견했다. 이어 비만 쥐 모델에서 GABRA5 신경세포의 주기적 발화가 현저히 감소함을 확인했다. 화학유전학적 방법으로 GABRA5 신경세포의 활성을 억제하니 지방 조직의 열 발생(에너지 소진)이 감소하고 지방이 축적돼 체중이 증가했다. 반대로 측시상하부의 GABRA5 신경세포가 활성화되면 체중이 감소했다. GABRA5 신경세포가 체중 조절 스위치인 셈이다.

연구팀은 특히 측시상하부의 별세포가 GABRA5 신경세포의 활성을 조절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별세포의 수와 크기가 증가한 반응성 별세포(Reactive Astrocyte)는 마오비(MAO-B) 효소를 발현해 지속성 가바를 다량 생성함으로써 주변의 GABRA5 신경세포를 억제했다. 반응성 별세포의 마오비 유전자 발현을 억제하면 가바 분비가 줄어 GABRA5 신경세포가 활성화되고, 지방 소비를 촉진해 식사량 조절 없이 체중이 감소했다. 반응성 별세포의 마오비 효소가 비만 치료의 효과적 표적임을 실험으로 증명한 것이다. 앞서 연구팀은 이미 2019년 뉴로바이오젠으로 기술 이전해 현재 임상 1상 시험 중이며 2024년 임상 2상 예정인 선택적·가역적 마오비 억제제 ‘KDS2010’을 비만 쥐 모델에 투여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이 역시 식사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도 지방 축적 및 체중을 크게 감소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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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S가 개발한 '실컷 먹어도 살 빠지는' 신약 모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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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발견했나?

이번 연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연구진과 함께 IBS의 세계적인 수준의 첨단 장비를 활용해 오랜 시간을 들인 끝에 결실을 보았다. 전기생리학, 조직화학 염색, 화학유전자적 억제, 유전자적 발현 감소, 대사 측정, 헤마톡실린과 에오신 염색 등의 실험을 통해 비만과 관련된 뇌 영역에서 신경세포와 별세포의 관계를 다각도로 연구했다. 그 결과 반응성 별세포에 과발현된 마오비가 지속성 가바를 과도하게 분비해 GABRA5 신경세포를 억제하여 비만을 유발하고 악화시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특히 연구팀은 마무리 과정에서 사전 논문 게재 사이트 ‘바이오아카이브(bioRxiv)’에 논문을 게재했는데, 대사 분야 세계적 권위지 네이처 메타볼리즘 측에서 이를 보고 정식 게재를 먼저 제안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만큼 연구의 중요성·영향력이 컸다는 의미다.

고비도 있었다. 고지방을 먹이고 있는 생쥐를 대상으로 약물을 주입해 마오비의 발현을 줄였을 때였다. 먹이 양이 변하지 않았지만 살이 빠졌다. 당연히 전체 에너지 대사량이 늘었을 것이라고 가설을 세웠으나 결과는 차이가 없었다. 좌절했던 연구팀은 숙의 끝에 결국 에너지 대사량은 차이가 없었지만, 지방의 대사가 증가했다는 사실을 확인해 결실을 보게 됐다.

이창준 단장은 "지금까지 비만에 대한 연구는 비만의 원인을 지방 세포를 포함한 주변 조직(peripheral tissue)에서 찾았으나, 이번 연구는 비만의 원인이 뇌에 있음을 명쾌하게 밝힌 최초의 연구"라며 "기존에 신경세포에 집중되었던 비만 치료제의 관점에서 벗어나 식욕을 억제할 필요 없이 비만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치료 타깃을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연구에서 고지방 식이를 한 생쥐들의 시상하부 별세포가 비대해짐을 관찰하였는데, 고지방 식이가 별세포를 어떻게 비대하게 만들고 GABA를 생성하게 하는지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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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한계 극복한 게임체인저들

최근 해외에선 더 효과가 강력하고 복용도 쉬우며 값싼 비만 치료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난 6월 네이처가 임상 2상 성공 소식을 전한 비만 치료제 오포글리프론(Orforglipron)과 리타트루타이드(Retatrutide)가 그 사례다. 기존 트리제파타이드(trizepatide·상품명 마운자로)나 세마글루타이드(Semaglutide·상품명 위고비 또는 오젬픽)라는 약물도 있지만 주사제여서 복용이 까다롭고 비싸다. 월 1000달러 이상이며 공급이 부족해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4월 허가를 받았지만 시판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도 지난 24일 뉴욕타임스가 "부자 동네에서만 많이 팔린다"고 보도하는 등 ‘부자의 약’이 됐다.

반면 오포글리프론·리타트루타이드는 이 같은 한계를 깨고 있다. 우선 오포글리프론은 알약으로 복용할 수 있고 재료가 싸 가격이 저렴할 전망이다. 리타트루타이드는 더 강력한 효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임상 2상에서 최대 24.2%의 체중 감량 효과를 보여 기존 치료제(15~20%)를 훨씬 뛰어넘었다. 또 기존 치료제들이 약 10%는 전혀 효과를 보지 못하는 반면 리타트루타이드는 모든 환자들이 체중 감량에 성공했다. 부작용 문제에서도 더 자유로울 것으로 보인다. 위고비와 마운자로는 복용자 일부가 메스꺼움·구토 등을 호소한다. 오포글리프론이나 리타트루타이드도 임상 2상에서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임상 3상을 통해 복용법을 개선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장담하고 있다.



김봉수 기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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