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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이슈 대한민국 저출산 문제

저출산에 나랏돈 15.4조 써도, '워킹맘' A팀장 '육아휴직' 못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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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년 저출산 예산으로 15.4조 편성

육아휴직 기간 늘리고 급여도 200만원대로 인상 검토

제도 못 따라가는 현실...中企 육아휴직자 열에 셋 '퇴사'

"육아휴직자에 대한 '불리한 처우' 구체적 명문화 필요"

헤럴드경제

[헤럴드경제=김용훈 기자] #. 2002년 남양유업에 입사한 A씨는 6년 만에 최연소 여성팀장을 맡았다. 팀장을 맡은 지 2년 만인 42살에 임신했다. 아이가 5세 되던 해 육아휴직 사용을 결심, 2015년 12월 24일 1년 간의 육아휴직을 신청해 상급자로부터 승인을 받고 그 해 12월 30일부터 1년간 휴직했다. 휴직 후 직장에 복귀했지만, 복직 후 1주일간 업무를 부여받지 못하고 권고 사직을 권유 받았다. A씨가 응하지 않자 광고팀원으로 발령을 냈고, 2019년 1월에는 원당 물류센터, 2019년도 8월엔 천안 공장으로 발령을 냈다. A씨는 팀원 발령에 대해 부당인사발령구제신청을 했지만, 사측은 A씨의 인사평가 결과가 좋지 않아 광고팀장에서 해임한 것인데, 그 시점에 육아휴직을 사용한 것이라 주장했다.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에서는 사측의 의견을 수용해 부당 전보가 아니라 판정한다. A씨는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갔지만, A씨는 결국 패소했고 1200만원 가량의 소송비용까지 떠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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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남양유업 육아휴직 사용 근로자 보복성 인사조치’라고 불리는 이 사건은, 대한민국이 어째서 전세계에서 가장 낮은 합계출산율(0.778명)을 기록하고 있는 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정부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 출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정작 우리나라 적지 않은 ‘일터’에선 여전히 육아휴직에 대해 불이익을 주고 있다.

정부, 저출산에 나랏돈 15.4조 쓴다28일 정부에 따르면 돌봄·교육, 일·육아 병행, 주거, 양육비용 부담 경감,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 등 5대 핵심 분야로 선정해 내년 관련 예산으로 15조4000억원을 편성했다. 분야별로 보면 ▷돌봄과 교육 1조3000억원 ▷일·육아 병행 지원 2조2000억원 ▷주거지원 9조원 ▷양육비용 부담 경감 2조9000억원 ▷건강한 임신·출산 지원 504억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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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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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0세 아동을 둔 가정에 부모급여를 현행 70만원에서 100만원으로, 1세 기준 50만원으로 확대해 양육비용 부담을 경감한다. 돌봄과 교육 부담을 덜기 위해 아이돌봄 서비스는 두 자녀 이상 가구에 대해 본인 부담금 10%를 정부가 추가로 지원하며 지원가구도 8만5000가구에서 11만가구로 확대한다. 시간제 보육 기관도 기존의 2배 이상 늘린다.

부모 모두 3개월 이상 육아휴직을 사용할 경우, 육아 휴직 급여 기간도 현행 12개월에서 18개월로 확대해 일과 육아의 병행을 지원한다. 부모가 공동 휴직 시 급여 인센티브를 최대 월 450만원까지 지급할 예정이다. 일하는 부모가 경력 단절 없이 자녀를 돌볼 수 있도록 근로시간 단축이 적용되는 자녀 연령도 만 8세에서 만 12세로 확대하고 기간도 최대 36개월까지 가능하게 한다.

주택 공급은 공공분양 3만호, 임대 3만호, 민간분양 1만호를 포함해 총 연 7만호를 공급한다. 혼인 여부와 무관하게 출산 가구에 대해 주택구매 자금 대출 소득 기준을 현행 7000만원 이하에서 1억3000만원까지 대폭 완화한다.

육아휴직 기간 늘리고 급여 올려도 ‘그림의 떡’그러나 정부의 이런 훌륭한 제도와 지원은 현실에선 ‘그림의 떡’이 되는 경우가 많다.

육아휴직 제도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육아휴직자에게 한 달에 최고 150만원까지 주는 육아휴직급여의 상한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육아휴직급여를 최저임금 수준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올해 월 최저임금(209시간 기준)은 201만580원이며 내년엔 206만740원이다. 최고 급여액이 최저임금 수준으로 높아지면 육아휴직급여의 월 수급액이 지금보다 50만원 이상 많아지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급여액을 올려도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을 쓸 수 있는 근로자는 적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가 지난 3월 여론조사 전문기관 엠브레인 퍼블릭에 의뢰해 남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45.2%가 육아휴직을 자유롭게 쓰지 못한다고 답했다. 남성의 육아휴직은 더 어렵다. 한국은 2022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가장 긴 육아휴직(54주)을 쓸 수 있지만, 실제 남성의 육아휴직 사용률은 국제적으로도 하위권에 머물고 있다.

국내 유수의 언론사에 다니는 정모(40)씨는 “우리 회사에서 남자가 육아휴직을 떠난 사례는 전무하다”며 “육아휴직을 할 경우에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5인 미만, 30인 미만 사업장 등 규모가 작은 회사의 경우 더 열악하다.

중소기업 육아휴직자 10명 중 3명은 퇴사실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받은 ‘기업 규모별 육아휴직 고용 유지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기준 중소기업(300인 미만) 육아휴직 종료자의 1년 내 고용유지율은 71.1% 수준이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10명 중 3명은 직장을 퇴사한다는 의미다. 관계 당국은 육아휴직자의 퇴사 원인 통계는 따로 산출하지 않고 있지만, 남양유업 같은 불이익을 견디기 어려웠기 때문이란 분석이 높다. 실제 육아휴직에서 복귀한 근로자가 임금 삭감·해고·동일업무 복귀 위반 등 불리한 처우를 받은 건수는 2018년 137건에서 지난해 223건으로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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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입법조사처 제공]


이 때문에 육아휴직 사용 후 불이익 조치로부터 근로자를 보호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행 ‘남녀고용평등법’은 육아휴직을 이유로 해고하거나 그 밖의 불리한 처우를 하거나, 사업상의 사유가 없음에도 육아휴직기간 해당 근로자를 해고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불리한 처우’에 대한 구체적 규정이 없어 남양유업과 같이 같은 조항을 기준으로 다른 내용의 판결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우리나라 법률에는 ‘불리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명문화한 입법례가 있는 만큼 이를 참고해 ‘남녀고용평등법’에 ‘불리한 처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fact0514@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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