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3 (수)

이슈 영화계 소식

[EN:터뷰]'거미집' 김지운 감독 "영화적 자존심 지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핵심요약
영화 '거미집' 김지운 감독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김지운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스포일러 주의

걸작을 꿈꾸는 감독, 그 감독을 담은 영화 그리고 그 감독이 찍고 있는 영화를 담은 영화. '영화'라는 예술에 담긴 근본적인 고민과 질문, 욕망과 좌절, 애정과 광기, 열망과 분투를 오가는 감독의 내면이 '거미집' 안에 고스란히 담겼다. 극 중 김열 감독(송강호)을 통해 김지운 감독은 자신이 고민하고 질문했던, 그리고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꼈던 모든 감정과 경험을 '거미집'에 쏟아부었다.

'거미집'은 스크린 뒤에 숨어 있던 영화 현장 이야기를 스크린 앞으로 끌고 왔다. 감독, 제작자, 스태프, 배우들이 모인 현장이란 공간은 영화 속 영화 <거미집>(*참고: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과 구분하기 위해 영화 속 영화는 <거미집>으로 표기한다)의 표면적인 소재이기도 한 '욕망'이 충돌하는 곳이다. 걸작을 만들고자 하는 김열 감독을 비롯해 각자의 이상, 각자의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영화 현장을 김지운 감독은 '앙상블 코미디'란 이름으로 묶었다.

마치 스크루볼 코미디(빈부나 신분 격차가 큰 남녀 주인공이 나와 재치 있는 대사로 갈등과 애증을 겪는데, 처음에는 갈등의 폭이 커지지만 결국엔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장르)와 같은 대사가 빠르게 오가는 가운데 웃음을 자아내는 '김지운표' 앙상블 코미디는 그의 초기작 '조용한 가족' '반칙왕'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김지운 감독은 한국 영화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지금, 왜 영화에 대한 영화를 만들고자 했는지 그리고 '거미집'을 만들어 가며 '영화'라는 의미를 어떻게 자신 안에 재정립했을까. 김 감독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란 무엇인가'란 질문이 이끈 '거미집'


김지운 감독은 보통 직접 각본을 써왔는데, 이번 작품은 각색과 연출을 맡았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영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 때 찾아온 작품이라 개인적으로도 더 큰 의미가 있었다. 코로나로 세계 영화계가 멈춘 사이 영화인들은 영화에 대한 저마다의 고민에 빠졌다. '바빌론'이나 '파벨만스'와 같이 영화에 대한 영화도 이러한 흐름에서 나왔다.

김 감독은 "나만 영화에 대해 생각하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각자가 자신한테 영화란 무엇이었고, 영화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재정립하고 재정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는 때였다"며 "그러던 차에 그런 소회나 성찰, 상념을 반영할 수 있는 작품이 찾아온 것"이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더군다나 다른 나라에 비해 영화 회복력이 유난히 늦은 한국 영화계에 필요한 영화가 아닐까 생각했다"며 "내가 처음 영화를 알게 됐고, 사랑하게 됐던 때 했던 여러 영화에 대한 질문들, 그리고 영화를 만들면서 현장에서 느꼈던 여러 감정, 이런 걸 영화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가 위기를 맞이한 사이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의 공세는 거세졌고, 많은 영화가 개봉 대신 OTT로 직행하기도 했다. '거미집' 역시 OTT의 유혹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그러나 김지운 감독은 그의 표현대로 하면 '영화적인 자존심'을 지켰다. 그는 "영화판에서 영화를 이야기한다는 게 너무 어려운 상황이고, 그런 의미에서 영화적인 자존심을 지켰다고 말하는 것"이라며 "김열 감독이 만들어 냈듯이 나도 영화로 만들어냈구나 싶다"고 했다.

김 감독은 '거미집'을 각색하면서 원래는 없던 신상호 감독(정우성), '플랑 세캉스'(plan-sequence, 한 신이나 시퀀스가 하나의 쇼트로 이루어지는 것), 영화 속 영화의 후반부 장면들을 새롭게 만들어 냈다. 특히 영화 속 영화의 여성 캐릭터를 욕망의 캐릭터, 즉 순종적이고 고전적인 여성 캐릭터가 아니라 욕망이 넘치는 캐릭터로 바꿔서 여성 서사로 만든 점 역시 두드러지는 부분이다. 영화 후반부의 소동극 역시 대중성 확보를 위해 변화를 준 지점이다.

이 가운데 극 중 김열 감독이 영화 내내 외치는 '플랑 세캉스'는 김 감독이 세 가지 기능을 위해 의도적으로 쓴 장치다. 하나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고안한 맥거핀(MacGuffin effect·영화에서 중요한 것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줄거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극적 장치) 효과다.

그리고 나머지 두 가지 기능에 관해 김 감독은 "감독이 제일 많이 부딪히는 게 '왜 굳이 그걸 하려고 해?'다. 이류 감독에서 탈피하려는 욕구를 가진 김 감독이 예술감독으로서의 비전, 독창성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 밀고 나가는 것"과 "자기 믿음과 자기 혐오를 오가는 김 감독이 스태프, 배우와 함께 혼연일체로 성취해 가는 과정, 즉 우리는 이렇게 영화를 만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현장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배우 송강호에게 맡긴 '김열'


이처럼 '거미집'은 김열 감독의 욕망으로 인해 모인 제작자, 스태프, 배우들이 현장에서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그 중심에 놓인 김열 감독을 연기한 건 다름 아닌 송강호다. 김 감독은 송강호와 '조용한 가족' '반칙왕'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에 이어 다섯 번째 작업을 했다. 그리고 매 작품 송강호의 다른 얼굴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번에는 "감독들이 현장에서 느끼는 진퇴양난, 딜레마, 그런 초상들을 송강호에게 많이 이야기했다"고 했다.

이번 작품 같은 경우 '앙상블 코미디'를 완성하고 싶었던 만큼 송강호에게 감독으로서의 희로애락뿐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웃음의 뉘앙스를 잘 살려주길 바랐다. 김 감독은 "다른 사람은 그게 웃기냐고 하는데 난 진짜 웃기는 지점이 있다. 그걸 형상화 시켜주는 사람이 송강호란 배우"라며 "'조용한 가족' 때부터 송강호란 배우를 통해 그걸 같이 이뤄냈다"고 말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속 영화 <거미집>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김 감독은 송강호의 연기를 두고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했다. 그는 "송강호가 한국의 대표적인 국민 배우가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무슨 역할을 맡아도 인간적인 모습이 느껴지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그런데 또 익숙하고 낯익고 편하고 친숙한 느낌인데, 어느 순간 순식간에 서늘하게 공기를 바꾸는 장악력이 엄청난 배우"라며 "이런 쥐락펴락하는 걸 한국에서 제일 잘하는 배우 아닐까?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극찬했다.

김 감독은 송강호를 비롯한 배우들을 통해 "정말 선수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협동의 예술이 앙상블의 매력이다. 우리나라도 한 번 제대로 된 앙상블이 이렇게 재밌을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야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송강호뿐 아니라 대사를 감칠맛 있으면서도 유연하게, 또한 능수능란하게 호흡을 조절할 줄 아는 배우들을 캐스팅하고자 했다. 끊임없이 대사를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하는 만큼 깨끗한 딕션(정확성과 유창성을 두루 갖춘 발음) 역시 필수였다. 이러한 김 감독의 까다로운 조건을 갖춘 배우가 바로 임수정, 오정세, 전여빈, 정수정, 박정수, 장영남이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김지운 감독.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화'와 '감독'에 대한 김지운의 정의


영화에 대한 고민과 질문에서 시작한 '거미집'은 그 마무리도 독특하다. 영화가 끝나는 줄 알았다고 여긴 순간, 영화는 다시 시작한다. 마치 그럼에도 영화는 계속된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영화를 찍으면서 큰 엔딩을 생각하지만 또 대안의 엔딩도 항상 생각한다. 왜냐하면 영화는 생물 같아서 흐르다 보면 거기에 맞는 대답이 나올 때가 있다"고 말했다. '거미집'의 엔딩 역시 그런 점에서 최종적인 형태는 어떻게 돼야 할지를 계속 고민하다 내린 결론이다.

김 감독은 "그게 나한텐 일종의 플랑 세캉스 같은 거다. 이런 독특한 흐름이 영화의 매력이지 않을까"라며 "어떤 면에서는 환기도 된다. '이건 영화 속 영화다' '김열이 만든 영화를 보여준 겁니다'라는 거다. 그런데 다시 김열의 상태로 돌아간다는 건 이 영화만의 매력"이라고 이야기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현장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거미집'은 내내 감독으로서 갖는 고뇌와 번뇌, 욕망과 열망, 애정과 광기 사이를 오간다. 태풍처럼 휘몰아치는 내면과 아수라장 같은 현장을 넘고 넘어 결국 김열 감독의 <거미집>도,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도 엔딩에 다다른다. 그렇게 영화 안팎에서 내내 '영화'란 무엇인지 고민한 김 감독에게 도대체 영화란 어떤 의미일까.

그는 "영화감독으로서 영화를 만들어 내면서 최종적으로 듣고 싶은 말, 이뤄내고 싶은 게 뭐였냐면"이라고 말을 꺼낸 뒤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러면서 자기 단련의 시간을 확장했다. 저런 영화를 만들려면 놀고 있으면 안 돼, 더 인내해야 해, 더 혹독한 시간을 겪어내야 해. 이러면서 단련하고 좋아진 부분이 있다. 그런 것처럼 누군가에게 내 영화가 그렇게 작용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마지막 이상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거미집> 상영 후 기립박수를 받는 와중에도 홀로 앉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는 김열 감독의 표정을 보다 보면 '감독이란 과연 무엇을 위해 저렇게까지 자신을 불태워야 하는 건가'란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된다. 김지운 감독은 "감독의 존재란 복잡하다. 현장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라고 정의했다.

노컷뉴스

영화 '거미집' 스틸컷. ㈜바른손이앤에이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고 터지기 전에 버튼은 눌러야 하는데 누를 시간이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런 게 너무 혼란스러운데, 혼자 결정해야 할 때 외로울 때가 있어요. 그렇지만 또 현장의 책임자니까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게 하려면, 나도 모르겠는데도 '어, 괜찮아. 오케이야' 할 때가 있죠. '오케이'를 하면서도 떨릴 때가 있는데, 진짜 힘들어요. 그렇지만 누구한테 물어볼 수도 없어요. 챗GPT(대화형 인공지능)한테 물어볼 수도 없고 말이죠. (웃음)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결국 자기를 믿고 갈 수밖에 없죠. 감독은 현장에서 가장 고독하고 불안한 존재예요."

※CBS노컷뉴스는 여러분의 제보로 함께 세상을 바꿉니다. 각종 비리와 부당대우, 사건사고와 미담 등 모든 얘깃거리를 알려주세요.
  • 이메일 : jebo@cbs.co.kr
  • 카카오톡 : @노컷뉴스
  • 사이트 : https://url.kr/b71afn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