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6월 말까지 국내 증시 전체 종목에 대해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6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대표가 공매도 상환기간 90~120일 통일, 무차입공매도 적발시스템 가동,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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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 시장에서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지 사흘째입니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팔았다가 주가가 떨어지면 이를 싸게 사서 갚으면서 이익을 내는 투자 기법입니다. 주가 하락에 베팅해 돈을 버는 기법으로 볼 수 있죠.
공매도 제도의 장단점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하지만 최근 증시 하락장에서 공매도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절대 악으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공매도가 하락장에서 이익을 보는 만큼, 이들 세력이 주가 하락을 유도하기 위해 부정적인 소문이나 평가를 퍼뜨리는 방식으로 주식 시장을 교란한다는 인식때문이죠.
특히 지난달 증시가 올해 상승분을 모두 반납할 정도로 급락하면서 공매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공매도 개선 관련 국민 청원에는 5만 명 이상이 동의했습니다.
증시 불확실성이 커진 데다가 글로벌 투자은행의 관행적인 불법 공매도까지 적발되면서 당국은 공매도 전면 금지 카드를 꺼내들었습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결정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지금이 과거 공매도 금지 사례 때처럼 거대한 경제 위기 상황이냐는 겁니다.
공매도 전면 금지 이틀째인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이날 코스피가 전장보다 2% 넘게 하락해 2,440대로 내려섰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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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5일) 금융당국이 발표한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에 따라 6일부터 모든 종목의 공매도가 전면 금지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코스피200, 코스닥150에 속한 대형주 350개를 제외한 종목에 대해서만 공매도가 금지됐었습니다.
당국은 그간 공매도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개인 투자자들은 국내 증시가 외국인과 기관들의 ‘공매도 놀이터’가 됐다고 성토해왔으나, 당국은 충분한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며 글로벌 추세에 맞춰 공매도를 전면 재개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공매도 금지 국가는 한국과 튀르키예뿐입니다.
이랬던 당국이 공매도 전면 금지라는 ‘강수’를 꺼내든 건 최근 홍콩계 BNP파리바와 HSBC 등 글로벌투자은행 등 글로벌 IB에서 관행화된 대규모 무차입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근본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빗발쳤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당국은 공매도 전면 금지와 함께 대대적인 제도 개선도 예고했는데요. 외국인과 기관, 개인 투자자들 사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비판이 지속되는 만큼 이를 해소할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방침입니다. 외국인과 기관의 담보 비율은 105%이고 대차 기한이 없지만, 개인은 담보 비율이 120%이고 상환 기간이 90일로 차이가 나죠.
또 불법 무차입 공매도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불법 공매도 실시간 차단 시스템을 구축하고, 글로벌 IB를 전수조사해 불법 공매도를 강력히 처벌하기로 했습니다.
이에 개인 투자자들은 쾌재를 불렀습니다. 주식 커뮤니티 각지에서는 “내 주식에도 볕이 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왔는데요. 공매도 금지 첫날인 6일 코스닥 지수가 급등하면서 프로그램매수 호가 일시 효력 정지, 이른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되면서 기대는 현실이 되는 듯했습니다. 이날 코스닥150 선물 가격이 전일 종가 대비 6.02% 급등했고, 코스닥150 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7.30% 치솟은 데 따른 조치였는데요. 코스닥에서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2020년 6월16일 이후 약 3년5개월 만이었습니다. 코스닥에서는 이날을 포함해 현재까지 총 12번의 사이드카가 발동된 바 있죠.
그러나 이는 ‘1일 천하’로 막을 내리게 됐습니다. 다음날인 7일 국내 증시가 급락세로 반전, 코스닥 지수 하락 폭이 커지면서 장중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겁니다. 전날 증시 폭등으로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된 지 단 하루 만에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 거죠.
이 반전은 공매도 금지 첫날 국내 주식을 폭풍 매수했던 외국인이 다시 ‘팔자’로 돌아선 데 따른 겁니다. 전날 7000억 원 넘게 주식을 사들인 외국인들은 이날 1000억 원 넘게 팔면서 하락세를 주도했는데요. 개인 투자자들이 쏟아지는 매물을 받아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죠.
특히 공매도 잔고가 많은 2차전지주 주가가 크게 출렁였는데요. 6일 에코프로, 에코프로비엠, 포스코퓨처엠은 일제히 상한가를 찍었지만, 7일엔 하락세로 돌아섰습니다.
(게티이미지뱅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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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공매도는 주가 하락의 주범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공매도는 매수·매도 가격 균형을 맞추는 순기능도 수행합니다. 거품 낀 가격을 적정선으로 내리면서 주가 조작 방지 등 효과도 얻을 수 있다는 거죠. 정부가 공매도 정상화를 추진해온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였습니다. 대다수 국가에서 공매도를 허용하는 추세에 발맞추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까지 목표로 두고 있었죠.
그러나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은 당분간 요원해지게 됐는데요. 로이터 통신은 “MSCI는 한국을 선진시장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로, 공매도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을 지목해 왔다”며 “이번 조치로 한국의 선진시장 진입이 늦어질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블룸버그도 “공매도 금지는 1조7000억 달러(약 2210조 원) 규모의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외국 자본 투자를 억제하고, MSCI 지수에서 선진시장 지위를 얻으려는 한국의 노력을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게리 두간 달마캐피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공매도 금지는 한국이 선진시장으로 올라서는 데 분명히 방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죠.
일부 전문가들은 공매도 금지가 급격한 주가 하락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죠. 김준석·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원은 8월 ‘공매도 규제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공매도 금지는 가격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변동성을 확대해 시장거래를 위축시킨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최근 적발된 주가 조작은 대부분이 공매도 금지 종목에서 이뤄지기도 했죠.
벨코 포탁 버펄로대 교수는 2014년 논문에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공매도가 가격 왜곡이나 금융회사 파산을 초래했다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면서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에서 불법으로 규정한 무차입 공매도(주식을 빌리지 않고 공매도)가 오히려 시장 유동성을 늘리고 가격 효율성을 높인다고 짚었습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간사가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장동혁 의원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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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이번 공매도 전면 금지가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의석 확보를 위해 내놓은 급조 대책이 아니냐고 지적합니다. 이달 3일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송언석 의원이 당내 의원에게 ‘이번에 김포, 다음 공매도로 포커싱하려고 한다’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장면이 포착돼 한 차례 논란이 되기도 했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7일 서울금융복지상담센터 등을 방문해 청년·취약계층의 불법금융 피해 등을 청취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 같은 지적이 나오자 “주요 외국기관의 공매도가 거의 관행적이라는 의심이 들었고, 공정 가격 형성이 어렵다고 판단해 조치한 것”이라며 “보는 분들에 따라 시기적 문제를 제기할 수 있지만, 법적 요건이 안됐는데 정치용으로, 여론 무마용으로 할 수 있는 조치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는데요.
그러나 공매도 금지 발표가 휴일인 5일 부랴부랴 나왔다는 것, 금지 기간이 내년 상반기까지라는 점 등으로 ‘총선용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공매도 재개를 추진해온 금융위원회가 돌연 공매도 금지 조치를 발표하면서 여당 등 압박에 굴복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죠.
전문가들은 당국의 이번 조치로 초기 주가 급등 분위기가 형성되겠지만, 전체적인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가 정치 논리에 따라 자본시장 관련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다는 걸 방증한 셈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매력이 떨어지면서 외국 자본도 줄줄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죠.
현 공매도 제도에 허점이 많은 건 사실입니다. 공매도 거래자가 주식을 진짜 빌렸는지 확인할 길은 없고, 외국인·기관과 개인 투자자의 담보 비율·상환 기간 차별도 크고, 불법 공매도에 대한 처벌도 과징금이나 과태료에 그쳐 솜방망이 수준입니다.
이미 공매도를 금지한 만큼, 개인 투자자 권익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 마련과 개선에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공매도 전산화 구축, 담보 비율·상환 기간 조정,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등 후속 조치를 모색할 필요도 있겠습니다.
[이투데이/장유진 기자 (yxxj@e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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