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2.28 (일)

    과거는 지금의 날 만든 경험… 다시 돌아가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오아시스 전 리더 노엘 갤러거 4년 만에 내한… 단독 인터뷰

    “You and I are gonna live forever(너와 난 영원히 살아갈 거야)~”

    조선일보

    영국 록 스타 노엘 갤러거는 "섹스 피스톨즈처럼 위대한 밴드만이 시대를 뛰어넘을 수 있다 여겼는데, 오아시스 노래도 계속 살아남은 게 참 고맙다"고 했다. /이그니션, EMA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30년.’ 강산이 세 번 변할 시간이다. 그러나 지난달 27~28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 무대에 선 노엘 갤러거(56)와 그가 부른 노래 ‘Live Forever’는 그 시간을 뚫고 2만여 관객의 ‘떼창’ 속 현재를 살아 가고 있었다. 1994년 그가 리더로 참여한 영국 록밴드 오아시스(Oasis)는 ‘비틀스의 후예’로 평가받는다. 밴드의 총 7장 정규 앨범 모두 UK 앨범 차트 1위에 올랐고, 각국에 7200여만 장이 팔려 나갔다. 오아시스는 2009년 노엘 갤러거와 그의 동생이자 프런트맨(밴드 보컬)인 리엄 간의 불화로 해체됐지만 ‘Don’t look back in anger’ ‘Wonderwall’ 등 노엘이 쓴 오아시스의 곡들은 여전히 곳곳에서 ‘록의 송가’로 불린다.

    내한 무대에 오르기 직전인 지난달 25일 9번째 서울을 찾은 노엘을 만났다. 그는 “2006년 첫 내한 때 서울은 사실 ‘일부러 오려던 곳’이 아니었지만 이후부턴 가장 먼저 찾는 곳이 됐다. 관중들이 정말 정말, 항상 대단하다”고 했다. 2019년 내한 때 그는 ‘K팝’에 대해 “시리얼 이름이냐?”고 반문했다. 이번엔 “이제 K팝이 뭔지는 알지만 아직도 들어보진 못 했다. 본래 최신 음악은 관심이 없어 1년에 딱 여섯 곡 정도 듣는다. (K팝은 나처럼 나이든 사람 말고) 젊은 애들(Children) 음악 아니냐”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노엘은 이번 내한에서 솔로 프로젝트 밴드 ‘노엘 갤러거스 하이 플라잉 버즈’ 이름으로 지난 6월에 낸 앨범 ‘Council Skies’의 곡들을 선보였다. 그가 “고립감에 고통받는 대신 작곡에라도 몰두할 수 있으니 예술의 길을 택한게 참 다행”이라 생각한 팬데믹 시기에 쓴 곡들이다. 지난 4월 영국에선 리엄의 목소리와 오아시스의 작곡 스타일을 ‘AI(인공지능)’로 흉내 낸 밴드 ‘아이시스(Alsis)’가 화제를 모았지만 노엘은 “내 음악에는 인공지능이 들어올 구석이 전혀 없다”고 했다. “난 여전히 컴퓨터 없이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옛 방식으로 곡을 씁니다. 라이브 공연장이 중요하죠. 음악 산업에 있어 끔찍한 재앙인 ‘인터넷’과 ‘AI’를 내 세대가 발명한 사실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앨범명과 같은 대표곡 ‘Council Skies’는 “맨체스터에서 살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곡”이다. 영국에서 ‘Council’은 시의회가 저소득층에게 제공하는 ‘공영 주택’이란 뜻이 있다. 1967년 맨체스터의 가난한 노동자 가정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난 노엘 역시 공영 주택 단지에서 자랐다. 그는 “당장 어떤 미래도 보이지 않는 때에 놓이면 과거에 대한 곡을 쓰게 되는 듯하다”며 “그러나 과거로 돌아가도 아무것도 절대 바꾸지 않을 것”이라 했다. “1989년 맨체스터로 돌아가 오아시스의 놀라웠던 첫 5년간을 다시 맞이해 보고 싶어요. 달라졌으면 하는 과거도 물론 있지만 그 역시 지금의 날 만든 경험이기에 바꾸고 싶진 않습니다.” 그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는 국가적 재앙(Disaster)이었다. 재밌는 건 재앙이 될 걸 알면서도 국민들이 투표했다는 점이다. 영국에서 일어난 최악의 일”이라며 웃었다.

    노엘 갤러거가 오아시스로 데뷔한 앨범 ‘Definitely maybe’는 내년 30주년을 맞는다. 보수당 집권기 권력자들을 꼬집거나(수록곡 ‘Up in the Sky’), 로큰롤 전성기에 대한 선망(’Rock ‘N’ Roll Star’)을 담은 이 음반은 한국에서도 수많은 청년들이 기타를 잡게 했다. 노엘은 “영국의 특정 시기를 정의해 쓴 곡들이 오래 살아남는 게 독특하고 놀랍다”며 “오아시스 시절에는 스타디움(대형 공연장)에 서는 밴드이고, 항상 로큰롤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작곡 때마다 고군분투했다”고 했다. “이젠 훨씬 자유로워졌죠. 지나친 계획은 일을 자주 그르칩니다. 오아시스가 매우 영향력 있는 그룹이 된 것 또한 절대 의도한 게 아니었어요. 열린 결말과 그저 다음으로 넘어갈 기회가 있다는 게 이 일(음악)의 매력입니다.”

    [윤수정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