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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

홍콩 ELS 불완전판매 인정 가능성은?… DLF·라임사태 사례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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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사옥 전경. /각 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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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콜 통화 내용에 비추어 투자자가 펀드의 원금손실 가능성에 관해 일정 부분 인식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해 보이나, 그와 같은 사정만으로 투자자가 펀드의 위험에 대해 구체적으로 인식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중략) 단순히 투자자의 서명·날인이 있다는 사정만으로 투자자 정보 확인서가 투자자의 진정한 의사에 맞게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

서울고법 민사12-3부(박형준 부장판사)는 라임펀드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A씨가 펀드를 판매했던 우리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렇게 말하며 우리은행이 A씨에게 2억7784만원을 지급하라고 지난 6일 판결했다.

A씨는 2019년 4월 라임 펀드에 가입했으나 모펀드 부실로 환매가 중단되자 우리은행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A씨는 펀드 가입 당시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 전혀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우리은행은 A씨가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거래신청서에 직접 ‘설명을 듣고 이해했음’이라고 자필로 기재하고, 이러한 설명을 들었는지 확인하는 해피콜 전화를 받았다는 점 등을 근거로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맞섰다.

재판부는 A씨 손을 들어줬다. A씨가 평소 5등급(낮은 위험) 펀드에만 투자해 왔다는 점, 은행 직원이 해당 펀드를 소개할 때 “기존 상품과 유사한 상품이다. 안정적인 상품이다”라고 설명한 점, A씨의 투자 성향 분석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A씨가 위험성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봤다. 자필 서명보다 원금손실 가능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한 설명이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홍콩H지수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했던 은행들이 불완전판매 의혹을 부인하고 있다. 판매 과정을 녹취하고 자필 서명을 받은 데다 해피콜 등을 통해 추가 확인 절차를 거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사 사건을 살펴보면 불완전판매의 핵심은 절차 이행이 아니었다. 법원은 자필 서명이 있더라도 일부 중요한 내용을 설명하지 않았다면 불완전판매로 인정했다. 반면 해피콜 등 일부 절차가 생략되더라도 설명의무에 충실했다면 불완전판매가 아니라고 봤다. 이번 홍콩H지수 ELS 사태도 은행의 절차 이행보다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했는지가 핵심이 될 전망이다.

22일 금융권에 따르면, 홍콩H지수 ELS 가입자 다수는 은행으로부터 원금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40대 가입자는 “은행 직원이 주식·펀드랑 완전히 다른 것이고 안전하다고 했다”며 “(직원이) 본사에서 전화가 오면 ‘네’라고 대답하라 했다”라고 했다.

ELS 판매 과정을 녹음하는 은행들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은행들은 가입 후에도 2영업일 이후 가입의사를 재확인하고, 은행 본점은 가입자에게 해피콜을 실시해 상품 가입 의사부터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한 설명을 들었는지 여부를 재확인해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작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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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손민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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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법조계에선 불완전판매의 핵심은 투자자가 상품의 구조와 위험성 등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설명이 있었는지 여부라고 보고 있다.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는 투자자의 대답이 있는 녹취만 가지고 완전판매라고 보기는 어려운 셈이다.

앞서 투자자 B씨와 C씨는 미국·영국의 이자율 스와프(CMS)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펀드(DLF)에 투자한 뒤 원금손실을 보자 펀드를 판매한 하나은행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승소해 3억4800만원을 돌려받았다. B씨 등은 미국·영국 CMS 금리 하락세가 지속되자 84~85%의 원금손실을 봤는데, 하나은행이 원금손실 가능성을 숨기고 위험성에 대해 아무런 설명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건을 심리한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B씨가 과거 수십차례에 걸쳐 금융상품에 가입했던 점을 고려하면 아무런 내용도 모르는 상태에서 은행 직원 지시에 따라 상품에 가입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B씨는 해피콜 전화에서 “DLF에 대해 원금손실 위험이 있는 상품으로 안내받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다만 재판부는 하나은행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봤다. 재판부는 “DLF 투자의 수익과 위험을 정확하게 이해한 후에 투자자들이 거래의 구조와 위험성을 평가해 합리적인 투자판단을 할 수 있도록 균형을 갖춘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안정적 투자수익 발생 여부가 불확실함에도 마치 정기예금과 유사한 안정적인 상품이라고 왜곡해 설명하거나 단정적인 판단을 제공해 설명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특히 “구조화된 파생금융상품은 전문적인 지식 능력이 요구되는 금융거래로 개인투자자들이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며 “단순히 원금이 보장되지 않는 상품이라는 점을 고지했다거나 투자설명서를 교부했다는 사정만으로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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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동 법원 전경.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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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해피콜 등 일부 절차가 이어지지 않더라도 판매 과정에서 자세한 상품 설명이 이뤄졌다면 불완전판매로 보지 않은 경우도 있다. 투자자 D씨는 영국 금·은 고시가격과 브렌트유 월물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결합증권(DLS)에 투자했다 손실을 보자 신한금융투자를 상대로 8368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으나 패소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신한금융투자 직원이 “만기에 원금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수령한 이자가 있다면 해당 금액만큼 손실액이 줄겠지만, 최악의 경우 이자 지급조차 없이 원금손실만 남을 수 있다”고 설명한 점 등을 들어 설명의무를 다했다고 봤다. 해피콜을 받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선 “앞선 사정을 종합하면 이를 이유로 상품의 가입과 관련해 신한금융투자의 배상책임을 인정해야 할 불완전판매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홍콩H지수 ELS 관련 소송도 핵심은 원금손실 가능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이뤄졌는지 여부가 핵심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법무법인 청의 곽준호 변호사는 “법에서 설명의무를 부여하는 것은 투자자들에게 상품에 대한 설명을 명확히 해서 판단을 내리게 하게 하고, 이를 위해 자필 서명을 받으라는 것”이라며 “서명을 받았다고 강조하는 것은 법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했다.

라임사태 당시 집단소송을 제기했던 법무법인 광화의 정민규 변호사도 “자필서명을 하더라도 중요한 정보인 위험도 등을 설명에서 누락하면 설명의무 위반이 된다”며 “내용이 중요한 것이지 형식적인 서명·녹취는 중요한 게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학준 기자(hakjun@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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