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대통령 "거부권 적극 활용" 뜻 밝혀
'거부권 행사' 감소 추세…남용 방지 장치 필요성도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이후 10번째 거부권 행사가 예상된다. /대통령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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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채해병 특검법(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법)'에 대해 21일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예정이다. 야당은 "전면전을 부추긴 것"이라며 장외투쟁까지 예고했다. 야권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반복되고 있어,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의 필요성도 대두된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21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리는 국무회의에서 '채해병 특검법' 재의요구안을 심의·의결하고,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은 헌법상 법안의 정부 이송 15일 이내에 거부권 행사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데, 검토 기한(22일) 전날까지 최대한 시간을 두고 결단을 내리는 셈이다.
앞서 지난 2일 더불어민주당은 여당 반발 속에 '채해병 특검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후 약 2시간 만에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이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시사했다. 대통령실은 해당 사안에 대해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서 관련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므로 수사가 완료된 후 특검 도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윤 대통령도 지난 9일 기자회견에서 부실 수사 우려를 일축하면서 "그걸(수사 결과를) 보고 만약 국민들께서 '이건 봐주기 의혹이 있다', '납득 안 된다'고 하시면 그때는 제가 특검을 하자고 먼저 주장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거부권 행사의 후폭풍은 '김건희 여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의혹 특검법' 때만큼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윤 대통령과 주변 인사의 관여 의혹이 제기된 사안이기 때문이다.
채 해병 사망사고는 지난해 7월 경북 지역 수해 현장에서 상관 지시로 무리하게 실종자 수색 작전을 진행하던 중 채 해병이 순직한 사건이다. 이후 해병대 수사를 대통령실과 정부가 방해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윗선 외압 의혹'으로 사건이 전환됐다. 특히 윤 대통령이 국방부 수사 결과에 대해 격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여기에 윤 대통령이 핵심 피의자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주호주대사로 임명하면서 논란이 증폭됐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의 측근으로 알려진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과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지난해 8월 수차례 통화한 사실까지 드러나며 대통령실 관여 의혹이 짙어졌다. 공수처는 21일 이른바 'VIP 격노설'을 두고 김계환 해병대 사령관과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대질 조사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 기자회견에서 '질책했느냐'는 물음에 다른 내용으로 답했다.
야당은 대통령실 외압 의혹이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이라고 보고, 검찰과 공수처가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실을 대상으로 독립성을 갖고 수사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한다. 또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특검을 도입한 사례도 6건 있다고 반박한다.
야권은 '채해병 특검법' 거부권 행사에 장외투쟁까지 예고했다. 강대강 대립을 완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민주당·조국혁신당·정의당·진보당·기본소득당·새로운미래·개혁신당 등 범야권 의원들이 20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채상병 특검법 수용 촉구 공동 기자회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장윤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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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예고에 어렵게 물꼬를 튼 야당과의 협치도 퇴색되는 모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민의힘 당선인과의 만찬에서 "여당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대통령이 가진 권한인 거부권이나 예산 편성권을 적극 활용하면 좋겠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야당과의 전면전을 부추긴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등 야 7당 의원들은 이날 용산에 집결해 '채해병 특검법' 수용을 압박했다. 장외 투쟁도 예고했다.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 특검법은 오는 28일 본회의에서 재의결될 예정인데, 야권은 그 전인 오는 25일 시민단체 등과 서울 도심에서 대규모 장외 집회를 연다는 계획이다.
이슈 장기화로 여당 내부와 국민 피로감이 증폭되는 것도 정치적으로 부담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임기 내에 재의결이 안 되더라도 22대 국회에서 재추진한다고 예고한 상태다. 22대 국회에선 국민의힘 의원 중 7명만 이탈표가 나와도 재의결 요건(200석)이 충족돼 거부권이 무력화된다.
'채해병 특검법'까지 포함하면 윤 대통령은 집권3년차 만에 10번째 거부권을 행사하게 된다. 거부권은 제도 도입 이후 현재까지 총 66차례 행사됐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45건)을 제외하고 윤 대통령이 두 번째로 많은 횟수다. 전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전 대통령 때는 거부권 행사 횟수가 각각 1건, 2건, 0건이었다. 대통령제인 미국도 현저히 줄어드는 추세다.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2023년 3월 기준 미국의 경우 레이건 대통령이 78건의 거부권을 행사했지만 이후 조지 W. 부시와 버락오바마 전 대통령 각각 12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10건, 조 바이든 대통령 1건 등이다.
야당은 특히 대통령 가족이나 측근 관련 특검에 대해선 거부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일반 법률안과 달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을 경우 자신이나 측근이 수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노태우 정부 이후 특검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이전 정권에선 2차례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때 △남북정상회담관련 대북비밀송금의혹사건과 북한핵개발자금 전용의혹사건 및 관련 비자금비리의혹사건 특검법 △최도술·이광재·양길승관련 권력형비리의혹사건 특검법 등이다. 여당은 노 전 대통령도 측근비리 특검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고 지적하지만, 야당은 당시와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과 검찰의 관계는 다르다고 반박한다.
야당의 입법 강행과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되풀이되면서 관련 제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거부권 행사 요건을 구체화하는 규정을 마련하거나 사면권처럼 국무회의 의결에 앞서 국민 여론과 전문가 평가가 반영될 수 있는 절차를 추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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