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기도 어려운 고령 자영업자…“탈출구 찾아줘야”
“재취업 등 대안 못 찾아…고령 특화 정책 필요”
서울 한 음식점의 주방에 식자재들이 쌓여 있다. 김광우 기자.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이전처럼 기력이 있으면 배달이라도 하겠지만, 지금은 가게를 닫으면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는 사람이 됐다”
#. 서울 종로구에서 3년째 한우 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권모(66) 씨는 50대 들어서 처음 창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건설업계 중장비 관리·대여업을 하는 중소기업에서 20년 가까이 근무하다가, 10년 전 회사가 어려워지며 한 프랜차이즈 삼겹살집을 열었다.
문제는 창업 3년 후 옆 골목에 같은 업종의 가게가 생기면서다. 손님이 분산되며 매출은 줄었고, 적자가 이어졌다. 이에 인건비를 감당하기 어려워진 권씨는 가게를 정리하고, 더 작은 장소로 옮겨 장사를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매출은 바닥을 기었다.
그는 “코로나19가 한창인 당시에는 퇴근 전후로 배달 일을 하며 생활비를 벌었는데, 심장 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이후에는 그마저도 힘든 상황”이라며 “집에서도 가게를 정리하라고 하지만, 이마저도 없으면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쉽게 결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 대구 수성구에서 전통 과자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모(64) 씨는 되레 팬데믹이 끝난 후부터 더 큰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월세 등 가게 운영비를 충당하려면 오히려 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쳤다. 여기다 올해 배우자의 병원비 부담이 늘어나며, 대출 이자 상환마저 어려워졌다. 주변에서는 가게를 처분해 현금을 마련하라고 조언하지만, 그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지금 가게를 정리하면 언제 다시 장사를 시작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면서 “당장 지금 힘들다고 해서 생업을 포기하면 살길이 열리냐”고 반문했다. 이어 “지금까지 어려운 일이 있어도 가게 문은 한 번도 닫지 않았다”며 “일단은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면서 경기가 나아지기를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 나이엔 취업도 못해…장사가 마지막 보루” 고령 자영업자 부실 급증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27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전년 대비 7만4000명 증가한 207만3000명으로 200만명을 넘어섰다. 60세 이상 자영업자 수는 ▷2019년 171만1000명 ▷2020년 181만명 ▷2021년 188만6000명 ▷2022년 199만9000명 등으로 지속 증가 추세를 이어오고 있다. 아울러 전체 자영업자 중 60세 이상의 비중은 36.4%로 역대 최대 비중을 기록하며, 전 연령대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200만명이 넘는 60대 이상 자영업자들의 부채 부실 현상이 타 연령대에 비해 더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스평가정보에 따르면 60대 이상 채무불이행 자영업자 수는 올 1분기 말 기준 1만4243명으로 지난해 말(1만1758명)과 비교해 2485명(21.1%) 늘었다. 이는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은 증가세다. 이밖에 ▷50대 19.1%(3328명) ▷40대 18.2%(3423명) ▷30대 16.6%(1770명) 등으로 집계됐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지난 2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발표한 ‘자영업자 2023년 상반기 실적 및 전망 설문조사’에 따르면 폐업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자영업자의 53.1%는 ‘대안부재’, ‘대출금 회수 부담’ 등 부정적 이유를 꼽았다. 그중에서도 42%의 응답자가 ‘특별한 대안이 없다’고 답했다. 특히 고령 자영업자들일수록 재취업 등 대안을 탐색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채무 불이행에 빠질 때까지 사업을 놓지 못하는 비중이 높은 이유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재기도 어려운 고령 자영업자…“탈출구 찾아줘야”
서울 시내 한 폐업 상점 모습.[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정부 정책들 또한 큰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추진하고 있는 소상공인 재취업 프로그램에서도 고령 자영업자의 재기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소벤처기업부는 현재 최소한 비용으로 사업을 정리하고 재취업할 수 있게 도와주는 ‘희망리턴패키지’ 정책을 운용 중이다. 하지만 참여자가 적은 데다, 실제 취업률이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며 폐업자들의 ‘용돈 지원수단’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또 정부는 한계에 다다른 자영업 차주들을 위해 채무조정 프로그램 ‘새출발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채무 감면을 받기 위해서는 연체 상황이 한계에 직면해야 한다. 또한 조정 후 채무 상환을 위한 뚜렷한 소득 창출 방안을 창출하지 못할 경우, 다시금 연체가 반복돼 채무 불이행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게티이미지뱅크]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실제 이자 상환과 가게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대부업체 대출을 고민하고 있다는 50대 자영업자 A씨는 “연체가 이어지면 새출발기금 신청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해 상담을 받아봤지만, 결국 신용불량자가 되는 것이고 지금 하는 가게도 정리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면서 “아이들한테 물려줄 수 있는 재산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짐을 얹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 일단 버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김영갑 한양사이버대 외식경영학과 교수는 “국가에서 주력으로 진행하는 새출발기금, 폐업 지원금 등의 경우 결국 이들이 망하는 것을 전제로 한 사업”이라며 “바다 한가운데 들어가서 수영하고 있는 사람에게 튜브를 던져준다고 해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헤엄칠 힘이 없는 사람들은 물에 가라앉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woo@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All Rights Reserved.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