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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2 (금)

    이슈 미술의 세계

    걸작은 천재적 재능의 산물일까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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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가 파헤친 예술의 비밀…신간 '천재와 거장'

    연합뉴스

    로댕 작 '칼레의 시민'
    [삼성문화재단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1899년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던 조각가 로댕은 렘브란트의 최고 작품을 연달아 감상한 후 창작 당시 그의 나이를 미술관 관계자에게 물었다. 모두 렘브란트의 후기작이었다. 로댕은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면 그렇지. 이것은 젊은이의 작품이 아니야. 이때 그는 자유로웠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희생해야 할지 알고 있었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로댕 자신도 그러했지만, 렘브란트처럼 나이가 들수록 예술적 풍미가 무르익어 가는 예술가들이 있다. 반면 어떤 예술가들은 젊은 날에 예술적 정점에 오른다. 데이비드 갤런슨 시카고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자를 '거장', 후자를 '천재'로 분류해서 이들의 특징과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신간 '천재와 거장'(글항아리)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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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카소 '아비뇽의 처녀들'
    [연합뉴스 자료사진]


    책에 따르면 예술 작품은 '계획' '실행' '마침'의 단계를 거친다. 천재 유형인 "개념적 혁신가"는 주로 이중 첫 단계인 계획에 몰입한다. 이들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완성된 작품이나 완성된 작품을 탄생시킬 과정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귀납적이 아니라 연역적으로 작품을 구현한다.

    가령 피카소는 비교적 어린 시절부터 어떻게 작업할지에 관한 명확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었다. 예술적 아이디어를 생각해낸 후 그걸 새로운 방식을 이용해 캔버스에 펼쳤다. 그는 예술에 대한 지향점이 분명했고, 자기 예술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20대부터 대표작을 양산했다. 그가 입체파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아비뇽의 처녀들'을 발표한 건 불과 26세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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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셀 뒤샹의 '샘'
    [연합뉴스 자료사진]


    피카소처럼 천재적인 발상과 아이디어를 옮기는 예술가들은 더러 등장해서 한 시대를 열어젖혔다. 시인 T.S 엘리엇은 서른넷에 '황무지'(1922)를 썼고, 오선 웰스 감독은 26살에 첫 장편영화 '시민 케인'(1941)을 만들며 영화계의 '전설'이 됐다.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도 마흔에 '율리시스'를 써 심리주의라는 독특한 소설 형식을 창조했다.

    저자는 이들 외에도 쇠라·고갱·뒤샹(이상 화가), 파운즈·커밍스·플라스(이상 시인), 피츠제럴드·헤밍웨이·멜빌(이상 소설가), 아이젠슈타인·펠리니·고다르(이상 영화감독) 등을 천재 유형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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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임스 조이스
    [위키미디어 커먼즈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런 조숙한 천재들과는 달리 오랜 노력 끝에 말년 들어 정점에 오르는 예술가들도 있다. "실험적 혁신가"라 불리는 이들의 사고는 주로 귀납적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실험과 지난한 노력을 통해 완숙한 경지에 이른다.

    "피카소는 보기 드문 천재였지만, 세잔은 천재가 아니었다. 세잔에게 예술은 많은 시간을 들여 힘들게 얻은 능력이었다." (데이비드 호크니)

    영국의 현대화가 호크니의 말처럼 세잔은 인생 황혼 무렵에 거장이 된 실험적 혁신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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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세잔 '가르단 마을'
    [아람미술관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세잔에게 예술은 구도(求道)의 과정이었다. 20대 중반에 주목받으며 30대 때 "르네상스 이후 가장 완전하고 급진적인 예술혁명"이라는 입체파를 창조한 피카소와는 달리, 세잔은 30대 중반이 될 때까지 인상주의에 대한 희미한 단서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 그 핵심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기법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꾸준히 노력했고, 생애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역작을 남겼다.

    로댕이 "불행하게도 나는 느리게 일하는 사람이고, 작품에 대한 생각이 천천히 구체화하고, 천천히 성숙하는 예술가 중 한명"이라고 말한 것처럼 세잔도 대기만성형의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런 대기만성형, 소위 거장이라 불릴 수 있는 예술가들로는 모네·르누아르·칸딘스키(이상 화가), 프로스트·윌리엄스·스티븐스(이상 시인), 디킨스·트웨인·도스토옙스키(이상 소설가), 포드·히치콕·호크스(이상 영화감독) 등이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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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
    [EPA=연합뉴스]


    저자는 천재형과 거장형 예술가에 대해 호오(好惡)를 나타내거나 누가 더 나은지에 대해선 평가하지 않는다. 단지 두 유형 모두 인류가 예술을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데 자양분 역할을 했다고 강조한다. 그는 예술 활동의 역사를 들춰보면 "개념적 혁신과 실험적 혁신 모두 심대한 역할을 했다"고 말한다.

    이준호·강은경 옮김. 4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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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항아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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